회사정리중인 기업 주식 거래 정지 및 상장 폐지 금지 판결

회사정리절차 중인 주식회사 국제상사가 한국증권선물거래소를 상대로 제기한 주식 매매거래정지처분 무효 확인 및 상장폐지 절차 이행 금지 소송에서, 법원은 한국증권선물거래소의 '회사정리절차 개시 신청 시 상장 폐지' 조항 및 그 경과규정이 비례의 원칙, 형평의 원칙, 회사정리법상 권리 제약에 위배되어 무효라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따라 해당 조항에 근거한 매매거래정지 처분도 무효라고 판결하며 원고의 청구를 인용했습니다.

관련 당사자

• 원고(소송을 제기한 회사): 정리 절차를 밟고 있던 주식회사 국제상사 (김해시 안동 360-1, 1999년 회사정리절차 개시 결정, 2007년 1월 31일 정리 절차 종결)
• 피고(처분을 내린 기관): 주식회사 한국증권선물거래소 (부산 중구 중앙동5가 50 하버뷰타워빌딩, 유가증권시장의 개설·운영 및 상장 관리를 담당)

분쟁 상황

정리 절차를 진행 중이던 주식회사 국제상사는 1999년 1월 30일 회사정리절차 개시 결정을 받고 경영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증권선물거래소는 2003년 1월 1일부터 시행된 유가증권상장규정(일명 '이 사건 상장폐지조항')을 통해 '회사정리법에 따라 정리 절차 개시 신청을 한 경우 해당 주권의 상장을 폐지한다'고 규정했습니다. 또한, 이 규정의 부칙 조항은 2004년 사업보고서를 기준으로 재상장 심사 요건(특히 자본잠식 없을 것)을 갖추지 못하고 2005년 3월 31일까지 회사정리절차가 종결되지 않을 경우 상장 폐지하도록 정했습니다.

주식회사 국제상사는 2004년 사업보고서 기준 자본총계/자본금 비율이 약 57.5%로 자본잠식 상태였고, 2005년 3월 31일까지도 회사정리절차가 종결되지 않았습니다. 이에 한국증권선물거래소는 2005년 3월 24일, 국제상사의 주권에 대해 같은 날 오후 3시 51분부터 매매거래를 정지하는 처분을 내렸고, 상장 폐지 절차에 들어가려 했습니다. 주식회사 국제상사는 이러한 한국증권선물거래소의 처분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며 매매거래정지처분의 무효 확인 및 상장폐지 절차의 이행 금지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핵심 쟁점

한국증권선물거래소의 유가증권상장규정 중 '회사정리법의 규정에 의하여 정리 절차 개시의 신청을 한 경우 거래소는 당해 주권의 상장을 폐지한다'는 조항(이 사건 상장폐지조항) 및 그 경과규정의 유효성 여부와, 해당 조항에 근거하여 이루어진 주식 매매거래정지 처분의 적법성 여부가 주된 쟁점이었습니다. 회사의 회생 가능성과 투자자 보호라는 공익적 목적 사이의 균형 문제가 중요하게 다루어졌습니다.

법원의 판단

1. 피고(주식회사 한국증권선물거래소)가 2005년 3월 24일 원고(주식회사 국제상사) 발행의 주권에 관하여 내린 매매거래정지처분은 무효임을 확인한다.
2. 피고는 원고 발행의 주권에 대한 상장폐지절차를 이행하여서는 아니 된다.
3. 피고의 항소를 기각한다.
4. 소송 총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결론

법원은 한국증권선물거래소의 '회사정리절차 개시 신청 시 상장 폐지' 조항 및 그 경과규정이 다음과 같은 이유로 무효라고 판단했습니다.

첫째, 이 조항이 '비례의 원칙'에 반한다고 보았습니다. 회사정리절차 개시 신청만으로 해당 기업이 유가증권시장에서 즉시 퇴출되어야 할 정도로 부실이 심화되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오히려 조기에 부실을 정리하여 회생할 기회를 박탈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다른 구체적인 부실 사유에 대한 상장폐지 규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정리절차 개시 신청만을 이유로 재무 상태 심사 없이 상장 폐지하는 것은 목적(부실기업 조기 퇴출 및 투자자 보호)과 수단 간의 균형을 잃은 과도한 조치라고 판단했습니다.

둘째, 이 조항이 '형평의 원칙'에 반한다고 보았습니다. 기업구조조정촉진법에 따른 공동관리절차를 선택한 기업과 회사정리절차를 선택한 기업의 부실 정도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볼 수 없는데도, 회사정리절차를 선택한 기업만을 곧바로 상장 폐지하는 것은 합리적인 근거 없는 차별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셋째, 이 조항이 '회사정리법(현재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에서 보장된 권리'를 지나치게 제약한다고 보았습니다. 회사정리절차는 회생 가치 있는 기업의 정리 재건을 도모하는 강행규정인데, 상장 폐지로 인해 기업의 회생 기회를 현저히 제한하는 것은 회사정리법의 취지에 어긋난다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무효인 상장폐지 조항에 근거하여 이루어진 매매거래정지처분 또한 무효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연관 법령 및 법리

1. 한국증권선물거래소법 및 증권거래법: 한국증권선물거래소(현재 한국거래소)는 증권시장을 개설·운영하며 유가증권의 상장 및 관리를 위해 상장규정을 제정할 권한이 있습니다(한국증권선물거래소법 제4조, 증권거래법 제88조 제2항, 제115조 등). 이 상장규정은 법률의 위임을 받아 제정되지만, 법원은 이를 단순한 행정법규가 아닌 한국증권선물거래소의 자치적 규정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공익적 성격과 상장법인에 대한 절대적 우월적 지위를 고려하여, 상장규정은 비례의 원칙, 형평의 원칙, 신의성실의 원칙 등을 준수해야 한다고 해석했습니다.
2. 회사정리법(현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의 목적: 회사정리절차는 재정적 궁핍으로 파탄에 직면했으나 경제적으로 갱생 가치가 있는 주식회사가 채권자, 주주 등 이해관계인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업의 정리 재건을 도모하는 절차입니다. 이 판결은 회사정리법이 기업이 파산에 이르기 전 조기에 부실을 정리하여 회사를 정상화하도록 돕는 취지를 가지고 있으므로, 회사정리절차 개시 신청만으로 곧바로 상장 폐지하는 것은 이러한 권리를 현저히 제약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3. 비례의 원칙: 공익을 목적으로 하는 행정 작용이나 공적 역할을 하는 기관의 규제는 그 목적 달성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이로 인해 침해되는 개인의 이익과 달성되는 공익 사이에 적절한 균형이 있어야 합니다. 법원은 '회사정리절차 개시 신청 시 상장 폐지' 조항이 부실기업 조기 퇴출 및 투자자 보호라는 목적에 비해, 회생 가능한 기업과 기존 주주들이 상실할 이익이 지나치게 커 비례의 원칙에 현저히 어긋난다고 판단했습니다. 즉, 다른 상장폐지 사유로도 충분히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데, 단순히 회사정리절차 신청만을 이유로 재무 상태 심사 없이 상장 폐지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것입니다.
4. 형평의 원칙(평등의 원칙)​: 법적 상황에서 합리적 이유 없이 동일하거나 유사한 대상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입니다. 법원은 기업구조조정촉진법상 공동관리절차를 선택한 기업과 회사정리절차를 선택한 기업의 부실 정도가 반드시 다르다고 볼 수 없고 단지 관리 방식의 차이일 뿐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정리절차를 선택한 기업만을 상장 폐지하는 것은 합리적 근거 없는 차별로서 형평의 원칙에 반한다고 판단했습니다.
5. 신의성실의 원칙: 법률 관계의 당사자는 사회 공동 생활의 일원으로서 상대방의 신뢰를 헛되이 하지 않도록 성의를 다하여 행동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법원은 상장 규정이 비례의 원칙이나 형평의 원칙에 현저히 반하거나 다른 법률에 의해 보장된 권리를 지나치게 제약하는 경우, 이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공정을 잃은 조항으로서 무효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참고 사항

1. 회사가 재정적 어려움으로 인해 회사정리절차(현재의 회생절차)에 돌입했다고 해서 해당 기업의 주식이 무조건 상장 폐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상장 폐지 여부는 해당 규정의 법적 정당성, 회사의 구체적인 재무 상태, 그리고 회생 가능성 등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될 수 있습니다.
2. 증권시장의 상장 규정은 시장의 건전성 유지와 투자자 보호를 목적으로 하지만, 기업의 회생 기회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등 과도한 규정은 법적 다툼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이는 신의성실의 원칙, 비례의 원칙, 평등의 원칙 등 법의 일반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3. 기업이 재정적 어려움에 처했을 때, 회사정리절차와 같은 법적 회생 절차를 통해 경영을 정상화하려는 노력은 기업의 생존권 및 법적 권리로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회생절차를 신청하는 행위 자체가 기업의 부실을 증명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4. 특정 상장 규정이 다른 유사한 상황의 기업들을 불합리하게 차별하는 경우, 이는 평등의 원칙에 위배될 수 있으므로 해당 규정의 합리성과 형평성을 다툴 수 있습니다.
5. 회사정리법(현재는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의 취지는 기업이 파산에 이르기 전 조기에 부실을 정리하여 회생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와 상충되어 기업의 회생 기회를 박탈하는 규정은 무효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