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시대나 경영자의 의지로 시작된 기업이 삼대 이상 지속되는 경우는 드문 일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부자는 삼대 못 간다"거나 "셔츠 바람으로 시작해 다시 셔츠 바람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이를 증명합니다. 하지만 독일은 예외적인 사례를 많이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가족기업인 머크는 1668년부터 이어져 온 역사를 자랑하며, 보쉬 역시 139년 동안 계속 성장해온 기업입니다. 이들은 창업주의 신념을 반영해 지분을 공익재단에 귀속시키면서 사회적 존경을 받는 상징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독일이 이렇게 수백 년 기업을 유지할 수 있는 배경에는 상속세의 유연한 제도와 사회적 인식이 큰 역할을 합니다. 독일은 상속세 최고 세율이 30% 내외로, 한국의 50% 또는 60%에 달하는 할증 가산세보다 훨씬 낮습니다. 심지어 2016년부터는 일정 자산을 승계받아 5년 또는 7년 이상 경영한다면 상속세를 공제하거나 면제 받는 정책을 시행 중입니다.
또한 독일은 승계 후 기업의 규모나 업종을 제한하지 않고, 고용 유지 요건도 지급한 급여 총액 기준으로 적용하여 기업이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반면 한국은 업종 변경 시 상속세 추징과 엄격한 고용 유지 요건으로 기업승계에 큰 제약이 있어 사례 수와 지원 금액 모두 독일에 현저히 미치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독일 사회는 가업승계를 단순한 부의 대물림이 아닌 기업 경쟁력과 노하우의 이전으로 인식합니다. 이에 따라 승계받은 기업인은 고용 안정을 도모하고 지역사회에 부를 환원하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 관례화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공감대와 제도가 함께 어우러져 원·하청 갑을관계와 노동시장 양극화와 같은 문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중장기적 안목에서 볼 때, 상속세 및 승계 제도의 유연화는 기업의 '암묵지'와 핵심 기술이 끊임없이 전수되도록 하여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합니다. 이것이 세계적인 장수기업 탄생의 비결이자 양질의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는 뿌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기업 승계에 따른 세금 부담과 제도적 제약은 단순히 개인이나 가문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제 전체의 경쟁력에 직결된다는 점에서 이를 개선하기 위한 현실적이고 과감한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