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방해/뇌물 · 금융
피고인은 인터넷 구인 사이트에서 알게 된 성명불상자로부터 법인 계좌 개설을 대리해주면 통장 1개당 10만원을 주겠다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이에 피고인은 성명불상자로부터 주식회사 B라는 유령법인의 서류를 받아 마치 자신이 해당 법인의 정상적인 관리부장인 것처럼 은행을 속여 총 5개의 법인 명의 계좌를 개설하고, 그 통장, 현금카드, OTP카드를 성명불상자에게 교부하였습니다. 법원은 피고인의 이러한 행위를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로 판단하여 유죄를 선고했으나,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접근매체 양도)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피고인 A는 2017년 3월 22일경 인터넷 구인 사이트 광고를 보고 성명불상자로부터 '법인 대리인 행세로 법인 계좌를 개설해주면 통장 1개당 10만원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피고인은 성명불상자로부터 주식회사 B의 사업자등록증 등 서류를 받아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D은행 여의도지점에서, 실제로는 유령법인이고 피고인은 관리부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치 주식회사 B가 정상적인 사업을 하는 회사이고 피고인이 관리부장으로서 사업상 필요에 의해 계좌를 개설하는 것처럼 은행을 속였습니다. 피고인은 이러한 방법으로 총 3회에 걸쳐 5개의 주식회사 B 명의 계좌를 개설하고, 각 계좌와 연결된 통장, 현금카드, OTP카드를 발급받아 성명불상자에게 교부함으로써 은행의 계좌 개설 업무를 방해했습니다. 이로 인해 피고인은 업무방해 및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타인의 지시를 받아 유령법인 명의로 계좌를 개설한 행위가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에 해당하는지 여부와, 개설된 계좌의 통장, 현금카드, OTP카드 등을 성명불상자에게 교부한 행위가 전자금융거래법상 접근매체 양도에 해당하는지 여부입니다.
법원은 피고인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하되, 이 판결 확정일부터 1년간 형의 집행을 유예하고 8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했습니다. 이는 피고인의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한 것이며,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피고인이 유령법인의 관리부장인 것처럼 행세하여 은행을 속여 계좌를 개설한 행위는 은행의 계좌 개설 업무를 방해한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에 해당한다고 보아 유죄가 인정되었습니다. 그러나 피고인이 개설한 계좌의 통장, 현금카드, OTP카드를 성명불상자에게 교부한 행위는 접근매체의 소유권 또는 처분권을 확정적으로 이전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전자금융거래법상 접근매체 양도죄에 대해서는 무죄가 선고되었습니다. 이는 피고인이 접근매체를 개설하고 전달했을 뿐 그에 대한 최종적인 소유권이나 처분권이 피고인에게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입니다.
이 사건에는 여러 법률 조항이 적용되었습니다.
형법 제314조 제1항(업무방해) 및 제313조(위계)는 사람을 속이거나 오인하게 하여 타인의 업무를 방해하는 경우에 적용됩니다. 피고인이 유령법인의 관리부장인 것처럼 거짓 서류를 제출하여 은행을 기망하고 계좌를 개설한 행위는 은행의 정상적인 계좌 개설 업무를 방해한 것이므로,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가 성립하게 됩니다.
형법 제40조(상상적 경합) 및 제50조(형의 양정)는 하나의 행위가 동시에 여러 개의 죄에 해당하는 경우 가장 중한 죄에 정한 형으로 처벌하는 원칙입니다. 이 판례에서는 피고인이 여러 차례에 걸쳐 같은 피해자(은행)에 대해 계좌를 개설하며 업무를 방해한 행위가 상상적 경합으로 처리되었습니다.
전자금융거래법 제49조 제4항 제1호 및 제6조 제3항 제1호는 전자금융거래에 필요한 접근매체(통장, 현금카드, OTP카드 등)를 타인에게 양도하거나 양수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처벌하는 규정입니다. 그러나 법원은 이 사건에서 '양도'의 의미를 '접근매체의 소유권 또는 처분권을 확정적으로 이전하는 것'으로 엄격하게 해석했습니다. 피고인은 성명불상자의 지시를 받아 단순히 계좌를 개설하고 발급받은 접근매체를 전달했을 뿐, 그 접근매체에 대한 소유권이나 처분권을 가지고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즉, 단순히 접근매체를 물리적으로 넘겨준 것만으로는 이 법에서 정한 '양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것입니다.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때에는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는 원칙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의 경우, 피고인이 접근매체에 대한 소유권 또는 처분권을 가졌다는 증거가 충분하지 않아 이 규정에 따라 무죄가 선고되었습니다.
인터넷 구인 광고 등에서 법인 명의 계좌 개설 대행을 제의받는 경우, 이는 보이스피싱이나 대포통장 개설 등 범죄에 연루될 가능성이 매우 높으므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의 지시를 받아 법인 계좌를 개설하거나, 개설된 통장, 카드 등을 타인에게 넘겨주는 행위는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 등 다른 법률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정상적인 법인처럼 보이는 서류를 받았다 하더라도, 해당 법인의 실제 사업 영위 여부나 본인의 직위 등을 확인하지 않고 계좌를 개설하는 행위는 은행을 기망하는 행위로 간주되어 업무방해죄의 책임이 따를 수 있습니다. 전자금융거래법상 접근매체 양도죄는 접근매체에 대한 소유권 또는 처분권이 확정적으로 이전되어야 성립하는 특성이 있으므로, 단순히 타인의 지시로 계좌를 개설하고 통장 등을 전달하는 행위만으로는 해당 죄가 성립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다른 심각한 범죄에 해당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