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재개발 · 공무방해/뇌물
정비사업에서 이주와 철거가 마무리되어야 본격적으로 공사가 시작됩니다. 따라서 정비구역이 지정되더라도 착공에 이르기까지 조합 설립, 사업 시행 및 관리처분인가 등의 복잡한 행정 절차를 거쳐야 하며, 10년 이상 걸리는 경우가 흔합니다.
이처럼 착공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소요되지만, 시공자는 초기 단계에서 선정됩니다. 최근 서울시는 사업시행인가 후에 시공사를 선정하던 것을 조합설립인가 후에 선정될 수 있도록 조례를 개정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조합이 운영되기 위해 필요한 사업비를 시공자로부터 조달받고 정비사업 추진에 필요한 실무적인 조언을 들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정비사업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조합 임원들은 시공자에게 초기단계부터 의존할 수밖에 없고, 이는 조합에 대한 주요 불만이자 시공자와의 유착 관계에 관한 의심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요 정비사업 부지에 예비안전진단만 통과해도 메이저 건설사와 신탁사의 '성공적인 사업 추진을 기원합니다'라는 건설사의 각종 플래카드가 빼곡히 걸립니다. 정비구역이 지정되고 조합이 설립되면 본격적인 치열한 수주 경쟁이 시작됩니다. 조합이 정한 2회 이상의 합동설명회를 거치면서 조합원도 어떤 시공자의 브랜드를 선택할 것인지는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해당 정비사업의 성패를 좌우할 수도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계산기를 두드려 정비사업이 수익성이 있다고 판단한 시공자는 조합원들에게 다양한 혜택을 약속하며 수주경쟁에 뛰어듭니다. 시공자는 보유한 하이엔드 브랜드 아파트 제공이나 이주비 중 상당 부분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강남의 재건축 조합에서는 건설사 직원들이 조합 임원들에게 현금, 상품권, 명품백 등 고가의 선물을 제공하며 시공자로 선정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가 형사처벌을 받은 사례도 있었습니다.
도시정비법상 조합장을 비롯한 조합 임원은 공무원으로 의제됩니다(도시정비법 제134조). 따라서 이들이 시공자 선정 과정에서 금품, 향응 또는 재산상의 이익 제공을 승낙하기만 해도(실제로 제공받지 않더라도), 도시정비법 위반과 뇌물죄로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도시정비법 제132조 제1항, 형법 제129조, 제130조, 제132조). 특히 특정범죄가중법이 적용되면 수뢰액이 3천만 원을 넘을 경우 상당히 높은 가능성으로 실형이 선고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조합 임원이 대범하게 직접 금품을 받을 가능성은 낮습니다.
물론 도시정비법령에 따라 시공자 및 홍보 용역업체의 임직원 등이 조합원을 개별적으로 홍보할 수 없고, 금품 제공을 약속할 경우 건설사도 형사처벌 대상입니다. 하지만 법정형이 상대적으로 낮습니다(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 벌금). 실질적인 규제 효과가 낮은 이유입니다. 설령 홍보나 약속이 금지되더라도 조합원 지원 자체가 금지되는 것은 아니어서, 수주 경쟁은 조합원 대상 이주비 등 지원 경쟁으로 격화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건설사들은 처벌 규정에도 불구하고 '일단 따고 보자'는 식으로 대응했습니다. 그렇게 시공자가 선정되면 이에 불만을 품은 다른 조합원들이 법원에 시공자 선정 결의가 무효라며 소송을 제기해서 혼란이 야기된 경우가 있니다. 과거 사례로 살펴 보겠습니다.
사례 1: 서초구 A 재건축 조합
서초구의 A 재건축 조합에서도 시공자 선정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B 건설사는 자신을 시공자로 선정해 달라며 홍보대행사 직원 등을 통해 에코백 등 각종 생활용품을 조합원에게 선물로 제공했습니다. 또한 세대당 무상 7천만 원의 이사비를 지급하거나 5억 원을 무이자로 대여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결국, B 건설사는 이러한 조건을 내세워 시공자로 선정되었습니다. 일부 조합원들은 B 건설사가 이러한 금품 제공 및 약속으로 도시정비법을 위반했다며, B를 시공자로 선정한 총회 결의는 무효라고 주장했습니다.
법원은 B 건설사의 금품 제공 및 약속 사실은 인정했지만, 이를 시공자 선정 무효 사유로 보지는 않았습니다. 제공된 금품은 총 1억 4천여만 원(1인당 30만~200만 원)으로, 경쟁사와의 표 차이가 409표였던 점을 고려하면 금품 제공이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서울중앙지법 2021. 8. 19. 선고 2018가합544602 판결, 해당 판결은 항소되지 않아 확정되었습니다).
사례 2: 송파구 C 재건축 조합
송파구 C 재건축 조합에서는 D 건설사가 시공자로 선정되었습니다. 그러나 D 건설사와 계약한 홍보업체가 조합원들에게 호텔 숙박 등 총 224회에 걸쳐 약 4천 3백만 원 상당의 혜택을 제공한 것이 문제 되었습니다.
D 건설사는 조합원들이 부산 모델하우스를 방문하도록 기차표를 제공했을 뿐이며, 홍보사의 행위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일부 조합원들이 소송을 제기하자, 1심은 제공된 금품이 소액이고, D 건설사의 사업 조건이 경쟁사보다 월등히 유리했기 때문에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보았습니다. 반면, 2심에서는 이러한 금품 제공이 부정행위에 해당하며, 시공자 선정 결의는 무효라고 판단했습니다(서울고등법원 2023. 4. 13. 선고 2022나2041233 판결, 해당 판결은 대법원에서 확정되었습니다).
A 조합과 C 조합 사례에서 결론이 달라진 이유는 금품 제공이 실제로 시공자 선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A 조합에서는 경쟁사와의 표 차이가 400표 이상으로 컸던 반면, C 조합에서는 130표 차이로, 실제로 금품 제공이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되었습니다. 법원의 입장에서도 이미 상당한 비용을 들여 총회를 개최해 시공자를 선정하였기에 금품이 제공되었다고 해서 절차를 무로 돌리는 건 무척 부담스러웠을 겁니다. 물론 D 건설사는 재입찰에서 다시 시공자로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도시정비법은 2022년 말부터 시공자가 이사비, 이주비, 이주 촉진비 및 그 밖에 시공과 관련 없는 금전이나 재산상의 이익을 무상으로 제공하거나, 은행 대출금리보다 낮은 금리로 대여하거나, 재건축 부담금을 대납하겠다는 제안을 금지하도록 규정했습니다(도시정비법 제132조 제2항).
문제는 단순히 형사처벌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시공자로 선정되었더라도 추후 도시정비법 위반 사실이 드러나면 시공자 선정이 취소되거나 전체 공사비의 20% 이내에서 과징금이 부과되거나 최대 2년간 입찰 참가 제한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도시정비법 제113조의2, 제113조의3). 예를 들어 공사비가 500억 원이라면 100억 원의 과징금을 납부해야 한다면 시공자 입장에서는 사실상 마진을 포기해야 하고, 사업 자체를 포기할 상황이 됩니다. 나아가 다른 정비사업의 시공자로서의 입찰 참가 자격 자체가 제한될 수 있어서 실로 막대한 손해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개정된 도시정비법 하에서는 시공자들이 당장 눈앞의 실적만을 위해 무리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도시정비법 법령이 강화되었으므로 철저히 준수하고, 수주 과정에서 불법 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합니다. 자칫 에코백 하나만 잘못 주더라도 수백억 원대의 과징금을 부담하거나 향후 주요 정비사업의 입찰 참가가 제한될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국토교통부가 마련한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을 통해 상세한 기준을 두고 있어서 이를 숙지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