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매매/소유권 · 계약금
우리나라 아파트 분양은 대부분 선분양입니다. 현란한 조감도와 모델하우스의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그리고 각종 커뮤니티 시설이 들어선 3D 건축모형을 통해 실제 아파트를 가늠할 수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직 삽도 안 뜬 허허벌판일 뿐입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청약에 당첨되어 어쨌든 분양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계약금을 보냈다면, ‘내 집 마련’의 꿈을 품고 모델하우스에서 본 그대로 공사가 잘되기를 바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분양계약부터 실제 입주 시까지는 2~3년은 족히 소요됩니다. 그 동안의 기억이 희미해지기도 합니다. 광고나 모델하우스에서의 기억과 실제가 크게 달라 실망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광고의 속성상 다소 과장은 있을 수 있지만, 그 정도가 심하면 법적 분쟁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법은 기본적으로 분양광고를 ‘청약의 유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계약은 청약과 승낙의 의사표시를 통해 구체적으로 확정되는 것이므로, ‘청약의 유인’은 청약이 아닙니다. 따라서 청약이 아닌 ‘청약의 유인’인 광고에서 아무리 감언이설을 했다고 해도, 실제 계약서에 그러한 내용이 적혀 있지 않으면 계약에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 원칙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파트 분양계약에서는 동·호수·평형·입주예정일·대금 지급 방법과 시기 정도만 기재되어 있습니다. 즉, 분양계약서에 아파트와 부대시설의 외형·재질·구조 및 실내장식 등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은 없습니다. 따라서 분양계약서 그 자체가 완결된 계약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판례는 선분양의 특성상 아파트의 외형·재질 등이 제대로 특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분양광고의 내용, 모델하우스의 조건, 또는 분양회사가 수분양자에게 행한 설명이 묵시적으로 계약의 내용을 봅니다.
파주의 A 아파트 분양 사례를 보겠습니다. 시행사는 분양광고에서 ‘고품격 마감재’를 사용한다고 홍보했으며, 분양안내 책자에는 ‘단풍나무 원목 바닥재’를 사용한다고 기재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원목이 아닌 합판 위에 0.4~0.6㎜ 두께의 원목판을 덧붙인 합판마루로만 시공된 것이 드러나 문제가 되었습니다.
시공사는 '바닥이 모두 원목은 아니지만, 원목이 사용된 것은 사실이므로 ‘고품격 마감재’나 ‘단풍나무 원목 바닥재’라는 표현은 허위가 아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모델하우스에도 합판마루로 시공되어 있었음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통상적으로 ‘원목 바닥재’라고 표현하려면 바닥재의 목재 전부가 원목으로 되어 있거나 적어도 상당 부분이 원목이어야 한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었습니다. 0.4~0.6㎜ 두께의 원목판으로 된 합판을 원목으로 볼 수는 없다는 겁니다.[1]
한편, 아파트 자체의 외형·재질과 관련된 사항이 아니더라도, 주변 입지 조건도 계약 내용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부산의 B 아파트 분양 당시, 시행사는 ‘세계적인 해양공원 아파트’라는 이미지를 내세웠습니다. 광고에서는 ‘미국 플로리다의 마이애미’, ‘호주의 멜버른 사우스뱅크’, ‘프랑스의 니스’와 함께 ‘대한민국의 B’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고급 이미지를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광고와 홍보를 통해 부산에서는 꽤 높은 분양가에도 불구하고 완판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입주 전까지 해양공원은 착공조차 되지 않았고, 수분양자 1,859명은 시행사와 시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습니다.
시행사와 시공사는 자신은 해양공원을 건설할 책임이 없고 분양계약서에도 해양공원을 완공하겠다는 내용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해양공원은 계획 수립 중이며, 계획이 변경될 수 있다는 점을 광고에 명시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수분양자가 분양광고의 내용과 모델하우스의 조건을 신뢰했으며, 분양 당시 ‘해양공원 아파트’라는 이미지를 형성했다고 보았습니다. 시행사의 광고를 통해 단순히 거주지가 아니라, ‘휴양지와 거주지가 결합된 형태의 새로운 유형의 아파트’라는 인식을 갖게 했다고 본 겁니다. 그러한 희소성과 고품격 이미지 형성이 분양 성공의 이유라고 판결했습니다.[2] 결국 시행사와 시공사는 소송을 유지한 수분양자들에게 분양가의 3~5%에 해당하는 위자료를 지급해야 했습니다.
근래에는 지불 조건과 관련한 과장광고가 문제됐습니다. 세종의 C 아파트에서는 시공사가 ‘계약금 10%, 중도금 60%, 잔금 30%/중도금 전액 무이자 융자’라고 광고하며 안내문을 배포했습니다. 수분양자들은 ‘중도금 전액 무이자 융자’라는 표현을 중도금에 대한 이자를 내지 않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중도금 무이자’라고 기재되어 있었기 때문이죠. 건설사는 중도금 이자의 금융비용을 분양원가에 포함시켰습니다. 그러자 수분양자 494명들은 허위·과장광고라며, 중도금 이자와 위자료를 포함해 수분양자 1인당 1,000만 원씩 보상을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건설사는 '‘중도금 전액 무이자 융자’라는 표현은 중도금 무이자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뒤에 '융자'가 들어갔으니 중도금 이자를 대출해 준다는 의미라고 해명했습니다.
그리고 법원은 고심 끝에 건설사의 손을 들었습니다. 물론 분양광고에 사용된 표현이 다소 기만적일 여지는 있지만, 평균적인 소비자라면 ‘건설사가 중도금 대출 이자를 대신 납부하지만, 해당 비용은 결국 분양 가격에 반영된다는 점’을 예견할 수 있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었습니다.[3] 결론적으로, 법원은 수분양자들이 분양계약서를 꼼꼼히 봤었어야 한하고, 자세히 보면 소비자라면 중도금 대출 이자가 ‘공짜’가 아님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수분양자들이 이 사건에 승소하려면 분양업체 홍보대원들이 분양계약서와 다르게 ‘중도금 무이자‘라고 말했음을 밝혀야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자료는 제출되지 못한 겁니다. 그리고 위 사건에서 수분양자들은 1인당 1,000만 원의 손해를 주장하였지만, 실제로는 50만 원만 시행사에게 청구했습니다. 실제로 승소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인지대를 다 내지 않았던 걸로 보이긴 합니다. 하지만 법원에서는 청구에 따른 인지대도 다 내지 않은 수분양자의 진정성을 믿기는 어려웠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