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부동산 · 계약금
부동산 거래는 시작부터 끝까지 공인중개사(‘중개사’)가 함께 합니다. 포털에 중개사가 올린 매물을 검색해 손품을 팔고, 중개사 사무소에 방문하여 발품을 팝니다. 중개사의 입회 하에 물건을 보고. 중개사를 통해 상대방과 계약 조건을 협상하며 거래를 합니다.
중개사가 받는 수수료도 부동산 거래 금액에 비례합니다. 수도권의 괜찮은 아파트의 호가가 십수억을 초과하는 것이 예삿일이 된 지 오래입니다. 한 건만 성사해도 수천만 원의 수수료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해마다 폐업률이 늘어난다 하지만, 부동산이 폭등하는 시절에 중개업체도 우후죽순 늘어나 벌써 12만 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중개사 시험 응시자만 20만 명에 달할 때도 있었습니다. 상가가 아무리 공실이어도 부동산은 공실이 나지 않는 것도 그 이유일 겁니다. 그러다 거래가 끊기게 되면 한 달에 한 건 거래를 못 한다는 중개사의 한숨이 더해진다는 뉴스도 이제는 낯설지 않습니다.
부동산 거래를 하면서 중개사와 갈등을 빚을 일은 많지 않습니다. 중개사가 정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중개사를 찾아가면 될 일입니다. 중개사도 거래를 마쳐야 약속된 수수료를 받을 수 있기에 끝까지 고객의 눈치를 봐야 합니다. 그런데, 부동산 거래가 끝나고 거액의 수수료까지 지급되었는데, 알고 보니 원하는 조건이 아닌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거래의 속성 상 약간의 과장은 있을 수 있지만, 그 정도가 치명적인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 중개사고로 이어집니다.
중개사고가 터지면, 일단 상대방과 협상을 시도합니다. 매수인이라면 매도인에게, 임차인이라면 임대인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화도 내봅니다. 하지만 이미 끝난 거래에서 상대방이 요구를 들어줄 리 없습니다. 거래는 각 당사자의 대립되는 이해관계를 전제로 합니다. 따라서 굳이 불리한 사항까지 먼저 알릴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각자 책임하에 잘 알아봐야 합니다.
부동산 거래에서 중요한 것은 ‘계약서’입니다. 법률상 ‘처분문서’라고 하고, 민사소송에서 증거의 왕으로 불릴 정도로 강력합니다. 분쟁이 생기면 계약서부터 살펴봐야 하고, 계약서에 불리하게 되어 있다면 일단 단념하는 편이 좋습니다. 그런데 부동산 계약서의 초안을 작성하는 것도 중개사입니다. 계약의 중요한 문구나 특약 사항을 거래 당사자가 직접 작성하는 경우는 많지 않고, 당사자가 중개사에게 설명하면 중개사가 특약으로 반영합니다. 그러다 중개사고가 터지면 계약서에 불리한 특약 사항이 잘못 반영되거나 누락된 것을 뒤늦게야 알게 되고, 비난의 화살은 거래상대방에서 중개사로 자연스럽게 향하게 됩니다.
물론 중개사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중개는 민법상 위임관계와 같습니다. 선량한 관리자로서 주의의무를 다 해야 하고, 이를 위반하면 손해배상 책임은 집니다. 공인중개사법에도 신의와 성실 중개하고 위반할 경우 손해를 배상해야 합니다(공인중개사법 제29조 제1항, 제30조 제1항).
경기도 안양에 사무실을 둔 중개사인 A는 B의 9층 아파트 매수를 중개했습니다. 그런데 아파트를 매수한 지 1년 만에 B는 안양시장으로부터 건축법 위반으로 인한 원상복구 명령과 약 270만 원의 이행강제금을 통지받았습니다.
아파트는 원래 8층과 9층을 연결하는 복층 구조로 되어 있었습니다. 내부 계단이 철거되고 9층에도 별도의 출입구가 설치되어 별개로 사용되었는데, B는 그 중 9층을 매수했던 겁니다. 과거 9층의 출입구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내력벽을 해체했는데, 그것이 건축법을 위반한 것이지요. 매수인은 중개사 A를 상대로 소송을 냈습니다. 중개사가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의 '건축물대장상 위반건축물 여부'와 '위반 내용'에 ‘없음’이라고 기재해 자신을 속였다는 겁니다. 반면, A는 억울하다 했습니다. 건축물대장에 위반건축물로 기재되지도 않았고, 자신도 몰랐다는 겁니다.
하지만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재판을 통해 아파트는 내력벽을 해체하고, 9층에 별도의 출입문을 설치한 것으로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점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렇다면 A로서는 건축물대장만 볼 게 아니라, 현황도와 현황을 면밀히 대조해 건축법령 등을 위반한 부분의 존부를 확인해야 한다는 겁니다. 결국 A는 B에게 2,300만 원을 배상해야 했습니다.[1]
그런데 중개사가 확인해야 하는 현황, 즉 사실관계와 법은 다릅니다. 중개사는 법을 다루는 전문가가 아닙니다. 물론 공인중개사 시험에는 법 과목이 포함되고 실무에서 습득한 법률 지식으로 변호사 못지않은 실력을 갖춘 중개사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중개의 속성은 ‘중개대상물에 대하여 거래 당사자 간의 매매ㆍ교환ㆍ임대차 그 밖의 권리의 득실변경에 관한 행위를 알선하는 것’입니다(공인중개사법 제2조 제1호). 즉, 중개는 매매나 임대차 등의 법률행위가 용이하게 되도록 주선하는 것이지, 법률사무 자체를 수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법을 잘못 해석해서 중개사고가 발생했다고 해도 중개사가 이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중개사가 법률 판단에 있어서 그릇된 정보를 제공한 경우는 예외입니다.
영등포구에서 사무실을 둔 중개사 C는 다세대 주택을 D에게 임차하는 거래를 중개했습니다. 등기부에는 18억 원으로 근저당권이 설정되어 있었고,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의의 ‘소유권 외의 권리 사항’란에는 ‘근저당권설정 채권최고액 18억 원’으로, 실제 권리 관계 또는 공시되지 않은 물건의 권리 사항은 공란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세대 주택이 경매에 넘어가고 약 20억 원에 낙찰되었습니다. 그런데 남은 2억 원(20억-18억)이 임차인인 D가 아니라 다른 최우선 소액 변제인들에게 배당되었습니다. 보증금을 날리게 된 D는 C가 자신을 속였다며 소송을 냈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는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임차인이 경매 절차에서 보증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것은 공동담보 제도 일반에 존재하는 위험이라고 보았습니다. 여러 경우의 수를 고려하여 D가 배당받을 가능성을 분석하고 설명하는 것은 법률 사무이고, 변호사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중개인의 업무 밖에서 발생한 손해에 대해서는 중개사가 책임을 질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2]
대법원도 최근 그러한 취지를 분명히 했습니다.[3] 이처럼 중개사는 법 설명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중개사고가 나도 중개사가 가입한 공제나 보증보험으로도 커버되지 않습니다. 만약 모든 책임을 중개사가 질 거라 철썩같이 믿고 거래하면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진료는 의사’가, ‘약은 약사’가 하듯이 ‘법은 변호사’가 합니다. 계약서는 변호사의 손길을 거치는 편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