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기 · 금융
피고인 A는 수만 개의 가상계좌를 개설하고 유통하여 불법 스포츠 도박사이트 운영을 방조하고, 나아가 일부 계좌가 보이스피싱 및 중고 물품 사기 등에도 이용되어 사기 방조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원심 법원은 피고인에게 징역 6년을 선고했으며, 피고인은 이에 대해 사기 방조 고의가 없었고 국민체육진흥법 위반 방조의 공소 사실이 특정되지 않았으며 양형이 부당하다는 이유로 항소했습니다. 항소심 법원은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의 판단과 형량을 유지했습니다.
피고인 A는 공범들과 함께 48,401개에 이르는 불법 가상계좌를 개설하여 유통하는 사업을 벌였습니다. 이 계좌들은 주로 불법 스포츠 도박사이트의 운영자들에게 제공되어 도박 자금 입출금에 사용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피고인 등은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취했습니다. 그러나 이 가상계좌 중 367건 정도가 사고 계좌로 확인되었고, 특히 보이스피싱이나 중고 물품 사기와 같은 다른 사기 범행에도 21개 이상의 계좌가 이용되었습니다. 전국 각지의 수사기관으로부터 가상계좌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이 집행되고 금융기관의 민원이 발생하는 등 문제 상황이 반복되자, 피고인 등은 가맹점(도박사이트)에 통보하여 환불 조치하거나, 회사의 자금으로 먼저 환불한 후 사후 정산하는 방식으로 수사를 회피하며 사업을 지속했습니다. 피고인은 이러한 상황에서 사기 방조의 고의가 없었으며, 불법 도박 개장 방조 혐의의 공소사실이 불특정하다고 주장하며 원심의 징역 6년형에 불복하여 항소했습니다.
피고인은 자신이 유통한 가상계좌가 불법 도박에만 이용될 것이라 생각했고 사기 범행에 이용될 고의는 없었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수사기관 및 금융기관의 지속적인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사업을 지속하며 이익을 취한 정황 등을 들어 사기 방조의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국민체육진흥법 위반 방조 혐의에 대해 정범의 도박사이트 운영 장소, 시기, 규모 등이 특정되지 않아 공소사실이 불특정하다는 주장에 대해, 법원은 도박사이트 명칭, 주소, 피고인이 계좌를 제공한 시기, 가맹점과의 연결 관계 등 범죄의 특성을 고려할 때 충분히 특정되었다고 보았습니다. 양형 부당 주장에 대해서는 피고인의 범행 죄질 불량, 계획적·조직적 범행 주도, 범행 부인 및 책임 전가 태도, 누범 기간 중 범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원심의 징역 6년형이 합리적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의 징역 6년형을 유지한다.
항소심 법원은 피고인에게 사기 방조의 고의가 충분히 인정되고, 국민체육진흥법 위반 방조의 공소 사실 또한 합당하게 특정되었다고 판단했습니다. 아울러 피고인의 죄질, 범행 가담 정도, 반성 없는 태도, 누범 기간 중 범행 등 불리한 양형 요소를 고려할 때 원심의 징역 6년형이 과도하지 않다고 보아 피고인의 항소를 모두 기각하고 원심 판결을 확정했습니다.
형법상 방조범은 정범이 범행을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 그 실행행위를 돕는 직접·간접의 행위를 말하며, 이때 정범의 범죄 구체적 내용을 정확히 인식할 필요는 없고 미필적 인식 또는 예견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피고인이 고의를 부정할 경우, 고의와 관련된 간접사실들을 증명하여 입증할 수 있습니다(대법원 2005. 4. 29. 선고 2003도6056 판결). 본 사건에서 법원은 가상계좌 유통 사업의 특성, 수사기관 및 금융기관의 지속적인 문제 제기, 피고인의 진술 등을 통해 사기 방조의 미필적 고의를 인정했습니다. 형사소송법 제254조 제4항은 공소사실을 범죄의 일시, 장소, 방법을 명시하여 특정할 것을 요구하지만, 이는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를 보장하기 위함이므로 범죄의 성격상 구체적 특정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개괄적 표시가 부득이하고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 지장이 없다면 공소사실이 불특정되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대법원 2009. 1. 30. 선고 2008도6950 판결). 본 사건에서 법원은 불법 도박사이트의 특성을 고려하여 공소사실이 충분히 특정되었다고 판단했습니다. 형법 제51조는 양형의 조건을 규정하고 있으며, 법정형 범위 내에서 선고형을 정할 때 범인의 연령, 성행, 지능, 환경, 범행의 동기, 수단, 결과, 범행 후의 정황 등을 종합적으로 참작합니다. 본 사건에서는 피고인의 주도적 역할, 범행 부인 태도, 누범 전과 등이 불리한 양형 요소로 고려되었습니다.
본인의 명의로 개설된 계좌나 가상계좌가 타인의 범죄에 이용될 수 있음을 충분히 인지해야 합니다. 단순히 '불법 도박에만 쓰일 것'이라는 생각도 법적으로는 범죄를 방조하는 고의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특히 가상계좌가 사기 등 다른 중대 범죄에 전용될 가능성을 알면서도 제공했다면 더욱 무거운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범죄에 이용될 가능성이 있는 활동을 통해 얻는 막대한 경제적 이익은 법원에서 불리한 양형 요소로 작용할 수 있으며, 문제가 발생할 경우 피해액을 환불하는 조치도 사업 지속을 위한 수단으로 보이면 방조 고의를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공소사실은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만 특정되면 되므로, 인터넷을 통한 범죄와 같이 물리적 장소 특정이나 정확한 범행 규모 파악이 어려운 경우에도 범죄의 성격과 공소 사실의 개괄적 표시가 합리적이라면 충분히 특정된 것으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유사한 범죄에 연루될 경우, 범행의 계획성, 조직성, 주도적 역할 여부, 피해 규모, 범행 후의 태도(반성 여부), 동종 전과 유무 등이 양형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칩니다. 누범 기간 중 범행은 가중 처벌의 요인이 됩니다. 수사기관의 영장 집행, 금융기관의 민원, 내부 관계자의 진술 등은 범죄 고의를 입증하는 강력한 간접 사실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