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눈앞에 두자 금융당국은 긴급 회의를 열고 ‘서학개미’들의 해외 주식 매수 행태가 환율 상승의 주범이라는 논리를 펼쳤어요. 그런데 이게 과연 타당할까요?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올해만 개인 투자자들의 해외 주식 순매수액이 무려 68억 달러가 넘었고, 연초부터 11월까지 누적액이 43조 원에 달했다는데 이게 다일까요?
전문가들은 한발 더 들어가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합니다. 대외 금융 자산이 이미 2조 7천억 달러에 달하고, 증권 투자 잔액이 큰 폭으로 불어나면서 해외 투자 양상이 바뀌고 있어요. 게다가 10월부터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에서 신속히 자금을 빼가면서, 그동안 개인들의 달러 수요를 보완해주던 외국인 자금은 오히려 빠져나가 환율 상승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은행이 달러를 구하기 어렵고, 기업들도 해외 투자 패턴을 바꾸면서 금융 시장은 복잡해졌는데, 이걸 무작정 ‘서학개미들 탓’으로만 돌리는 건 좀 심하지 않나요?
투자자들이 해외 주식에 눈을 돌린 이유가 뭘까요? 국내 증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저평가에 시달리며 뭉그적거리는 반면, 미국 증시는 사상 최고가 행진 중이니까요. 당연히 수익률 좋은 곳을 찾아가는 게 ‘현명한’ 투자입니다. 이를 두고 투자자 책임으로만 돌리면 투자자 입장에선 우롱당하는 기분일 거예요.
문제는 정부가 이런 구조적 문제에 대해선 눈을 감고 ‘서학개미들이 환율을 흔든다’는 프레임에 갇혀 있다는 점입니다. 외국인 자금 유입 확대나 외환 시장의 근본적인 약점을 보완할 장기 계획은 어디 갔나요? 1997년 외환위기 때처럼 ‘국민 탓 하기’ 수법이 28년이 지난 오늘에도 반복되는 건 비극 아닐까요?
한국 경제가 복잡한 숲속에 있는데, 단지 ‘서학개미’만 활엿불처럼 몰아가면 진짜 문제는 숨겨진 채 국민들만 지치게 됩니다. 정부가 책임 있는 모습으로 제대로 된 정책을 내놓기 전까지 ‘환율 급등=서학개미 탓’이라는 단순 공식은 재고돼야 할 듯해요. 그렇게 해야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해법도 찾을 수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