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매매/소유권 · 손해배상
2024년을 기준으로 전국에는 약 65,000가구(수도권 기준으로는 약 12,000가구)의 미분양 물량이 쌓여 있다고 합니다. 선분양 후에도 실제로 준공 후 입주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므로 청약 단계에서 분양이 되지 않아도, 준공 시까지 3~4년 내에만 분양자를 구하면 됩니다. 하지만 준공 후에도 판매가 되지 않으면 ‘악성 미분양’으로 분류됩니다. 그러면 사업 주체인 시행사뿐만 아니라 PF 대출 원리금을 회수해야 하는 대주단, 그리고 선투입한 공사비를 정산받아야 하는 시공사까지 시름이 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시행사는 악성 미분양 해소를 위해 분양대행사를 통한 고액의 판촉 비용을 지출합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미분양 특별 수수료로 10억 원 분양가인 경우 1%의 1,000만 원의 인센티브가 판매한 판매직원에게 지급된다고 합니다. 이를 노린 홍보대행사 직원의 허위·과장 광고나 비윤리적인 판매 행태로 또 다른 분쟁이 재점화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미분양이 늘어나면, 부동산 시장은 침체되고, 투자 심리는 더욱 위축됩니다. 건설사와 시행사의 재정 악화 및 도산 등 연쇄적인 신용위기와 금융권의 부실 증가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이어집니다. 장기적으로는 부동산 공급 부족으로 이어져 부동산 가격을 자극하는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악성 미분양의 증가는 비단 해당 사업 실패 문제가 아니라, 부동산 경기전반에 영향을 끼치므로 정부(국토교통부)도 미분양의 수를 예의주시하면서 해소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2023년 하반기에 전국 미분양 주택 수가 7만 호를 넘어서자 정부는 미분양 해소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2024년 지방의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을 최초로 구입하는 경우, 해당 주택을 주택 수 산정 시 제외하는 내용의 지방세법과 소득세법 시행령을 개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악성 미분양이 계속 해소되지 않으면 방법은 결국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계속 기다리거나 아니면 싸게 파는 겁니다. 살 사람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은 한계가 있고, 결국 싸게 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자금을 빌려준 금융권에서 자금을 조달한 ‘할인분양’을 결정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할인분양을 염두에 두고, 일단 분양가를 높게 책정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자금을 빌려준 금융권이 일부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더 큰 손해를 막기 위한 ‘손절매’인 할인분양을 최종 결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처음부터 대출약정서에 할인율 한도, 할인분양 시행의 기준을 포함하고 최종적으로는 대주단 회의에서 할인분양을 결정합니다. 결국 돈을 가장 많이 빌려준 대주 쪽의 입김이 가장 클 겁니다. 그 외에도 시공사 또한 선투입한 공사대금 회수하기 위해서 할인분양을 제안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할인분양은 후폭풍이 적지 않습니다. 기존의 수분양자들과의 형평이 당장 문제가 됩니다. 기존 수분양자들로서는 적지 않은 돈을 내고 분양을 받았는데, 같은 매물을 누군가 20~30% 저렴하게 분양받았다고 하면, 당장이라도 나도 깎아달라며 항의하는 것이 불보듯 뻔합니다. 서울의 성북구의 한 아파트에서는 미분양 아파트 등에 대하여 최초 분양대금의 15%를 초과하여 할인분양을 하는 경우 15%를 초과하는 할인분양 비율만큼 추가 보상하기로 약정하고, 결국 20%를 초과 분양하자 초과 금액을 물어준 경우도 있었습니다. 전남 광양의 아파트에서는 시행사가 미분양 100세대를 기존 분양가보다 최대 8,000만 원 할인된 가격으로 분양을 진행했습니다. 기존 입주민들은 형평성 문제와 집값 하락 우려로 반발하였고, 할인분양으로 입주하는 주민들의 이사 차량 진입까지 막고, 심지어 주차요금을 50배 적용하겠다고 했습니다. 격해진 갈등은 결국 시행사가 관리비 지원이나 단지 내 편의시설 개선을 약속하면서 점차 갈증이 사그러지긴 했습니다.
매수자로서는 한번만 할인을 한다는 보장이 없기에 망설일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A는 수원의 한 아파트를 분양받은 49평의 미분양 아파트를 6억 1,000만 원에 분양받았습니다. 당시 분양팀장은 A에게 ‘마지막 최저 가격이고 추가 할인분양은 없다’라고 말했고, 이 사건 분양계약 체결 전 다시 한 번 전화를 걸어 가격이 더 할인되지 않는지 물어보자 ‘가격이 더 할인되지 않고 이것이 마지노선입니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2달 만에 분양가에서 1억 5천만 원을 대폭 할인하여 다시 분양했습니다. 분노한 A는 시행사와 시공사를 상대로 추가 할인된 분양대금과 위자료를 포함해 5,0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기각했습니다.[1]
법원은 택 분양자로서는 이에 대응하여 사업 수익을 확보하고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편으로 분양 가격을 사후에 변경할 현실적 필요성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분양대금의 결정은 원칙적으로 사적 자치의 영역에 속한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할인분양이 되었다고 기존 분양자들이 추가적인 보상을 받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최근 대구의 한 아파트의 경우는 상황이 좀 달랐습니다. 해당 아파트는 하이엔드 주거를 표방한 고급 아파트로서 후분양 아파트 단지로, 총 146가구 중 25가구만이 초기 분양되었습니다. 결국 시행사는 기존 분양가보다 최소 3억 원 이상 할인된 가격으로 분양을 진행했고, 기존 분양자 34명은 분양 가격이 변경될 경우 기존 계약자에게도 유리하게 소급 적용한다는 특약 조건을 근거로, 할인분양으로 인한 손해를 주장하며 시행사와 신탁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해당 특약에는 '분양가가 변경될 경우, 기존 계약자들에게도 그 유리한 조건을 소급하여 적용한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시행사는 할인분양을 한 것이 아니라 공매(공개매각)을 한 것이고, 공매는 미분양 물량을 처분하기 위한 법적 절차이며, 할인분양은 분양 촉진을 위한 마케팅 전략으로, 두 절차는 목적과 방식에서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인정하지 않고, 시행사가 기존 분양자들에게 할인분양으로 발생한 차액 약 68억 9천만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했습니다. 시행사 주장대로 공매 절차의 법적 성격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분양가 변동에 해당한다고 본 겁니다.
일반적인 분양계약에서 그렇게까지 특약 조항을 넣지 않습니다. 시행사는 대구의 분양 침체 상황을 감안해 어떻게든 초기 분양률을 높이기 위해 시행사가 무리한 특약을 했습니다. 결국 시행사가 스스로 발목을 잡은 셈입니다.
[1] 서울중앙지방법원 2016. 10. 21. 선고 2015가단5329022 판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