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차 · 손해배상
2020년 7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으로 임차인은 임대인에게 2년의 갱신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임대인이 이를 거절하기 위해서는 임차인이 차임액을 2기 이상 연체하거나, 임대인의 동의 없이 주택을 전대하거나, 주택을 파손하는 등의 임차인에게 귀책사유가 있어야 합니다(주택임대차보호법 제6조의3 제1항).
임차인의 갱신요구권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경우 임대인이 갱신을 거절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임대인의 재산에 대한 과도한 제한을 방지하고,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 한해 계약 갱신을 거절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임차인과 임대인의 이익 사이에 적절한 조화를 도모하기 위함입니다.
갱신 거절 사유 중 월세를 연체했다거나, 무단 전대나 파손과 같은 사정은 이미 발생한 일들이므로 임차인으로서도 수긍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하지만 법은 임대인(직계존속ㆍ직계비속 포함)이 해당 주택에 실제로 거주하려는, ‘실거주’도 갱신 거절 사유에 포함시켰습니다(주택임대차보호법 제6조의3 제1항 제8호).
하지만 임대인이 실거주를 이유로 갱신 거절을 하면 임차인 입장에서는 의심이 들기 마련이지만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임대인이나 그 가족이 직접 들어와 살겠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이사가야 하는 마당에 굳이 임대인이 실제로 들어와 사는 것인지, 아니면 단지 다른 세입자를 받기 위해 말만 그렇게 하는 것인지 뒤로 알아보기도 뭣합니다. 그래서 임대인이 들어와 살겠다고 하면 임차인으로서는 거부할 수 없고, 새로 살 집을 알아봐야 합니다.
이처럼 임대인은 ‘실거주’를 이유로 임차인의 갱신 요구를 거절할 수 있으며, 그러면 갱신요구권이 무력화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거주할 의사가 없으면서 더 좋은 세를 놓기 위해 ‘실거주’를 핑계로 갱신을 거절하는 사례가 악용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았습니다. 물론 ‘실거주’의 이유로 갱신을 거절당한 임차인으로서는 찜찜하기는 하나 이미 떠난 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들이기 쉽지 않습니다. 직접 임차인이 소송에 직접 매달리기도 어렵고, 변호사를 선임하려면 수백만 원의 선임비를 부담해야 한다는 점도 상당한 부담입니다.
하지만 임차인이 집주인의 갱신 거절을 인정하지 않고 계속 거주하면서 인도 분쟁이 발생하거나, 임대인과 임차인 간의 신뢰가 심각하게 훼손되는 경우에는 실제로 임차인이 실거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소송을 감행하기도 합니다. 임차인이 새로 전세를 급하게 구하느라 많은 비용을 지출했을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경우 임차인은 주민센터 및 관리사무소를 통해 주택의 전입신고, 차량 출입 기록, 전기·수도 사용 내역 등을 확인하여 누가 실제로 거주하고 있는지를 밝혀낼 수 있습니다. 만약 임대인과 무관한 제3자 명의로 전입신고가 되어 있거나 임대인이 관련 비용을 지출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난다면, 임대인이나 그 가족이 해당 주택에 실제로 거주하지 않았음을 밝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임대인이 실제로 거주하지 않았다고 해서 반드시 ‘실거주의사가 없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실거주하려는 의사’는 임대인의 내심에 있는 장래에 대한 계획을 의미하며, 갱신 거절 사유의 특성상 임대인의 의도가 허구가 아니라 진정하다는 점이 객관적으로 인정된다면 이러한 의사의 존재를 수긍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경우 임대인의 주거 상황, 임대인이나 그의 가족의 직장 및 학교 등 사회적 환경, 임대인이 실제 거주하려는 의사를 가지게 된 경위, 갱신 거절 전후의 임대인의 사정, 임대인의 실제 거주 의사와 모순되는 언동의 유무, 계약갱신 요구와 관련하여 형성된 임차인의 신뢰가 훼손될 여지가 있는지 여부, 임대인이 기존 주거지에서 목적 주택으로 이사하기 위한 준비 여부 및 그 내용 등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대법원 2023. 12. 7. 선고 2022다279795 판결).
예를 들어, 부천에 거주하던 A의 경우 실거주를 이유로 갱신 거절을 할 당시 연로한 부모님의 치료와 출퇴근 시간을 단축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직장도 변경되어 실거주 필요성이 사라지자 다시 해당 주택을 다른 사람에게 임대했습니다. 이 사례에서 실제 거주하지는 않았지만 그래고 ‘실거주’를 원인으로 한 거절 사유가 인정됐습니다. 사건에서는 임차인이 계약 종료 후 8개월간 주택을 인도하지 않은 점이 불리하게 작용했습니다(인천지방법원 2024. 10. 25. 선고 2023나69636 판결).
반면, 실거주를 이유로 갱신을 거절한 뒤 제3자에게 임대한 사례에서는, 그 짧은 시기에 급격한 신변의 변화가 있을 가능성이 희박하므로 임대인의 변명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와 관련해 임대인이 목적 주택에 실제로 거주하려 했다는 점에 대한 증명책임은 임대인에게 있습니다(대법원 2023. 12. 21. 선고 2023다263551 판결).
위와 같은 사안에서 B는 갱신 거절 당시 '옥상 사용이 불편하여 임차인을 두지 않고 본인이 직접 사용하려 한다'고 통보했습니다가, 소송 도중 '군필 후 2년제 대학 졸업반에 있는 손자가 주택에 거주할 예정'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대법원은 갱신 거절 사유 통지 당시 '자신의 실제 거주' 사유가 존재했어야 하는데, 이후 예상치 못한 객관적인 사정 변경을 이유로 거주 사유를 손자로 변경한 것이 부당하다고 판시했습니다.
그렇다면 부당한 갱신 거절로 판명될 경우 임대인은 임차인에게 어떤 배상을 해야 할까요. 현행 법에 따르면 3개월 치의 월차임(전세는 월세로 환산), 임대인이 추가로 얻은 2년 치 이익, 임차인이 입은 실제 손해(다른 곳의 차임 상승분을 공제) 중 큰 금액을 배상해야 합니다.
강남구의 아파트 소유자인 C는 실거주를 이유로 갱신 요구를 거절하고 새 임차인과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판례는 기존 임차인의 보증금은 10억 8천만 원이었으나 새 계약에서 보증금은 16억 2천만 원으로 대폭 올렸습니다. 기존 임차인이 소송을 제기하자, 법원은 임대인에게 월세 환산 차액 약 280만 원의 24개월분인 6,750만 원과 소송 비용 1,000만 원가량을 배상하도록 판결했습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4. 5. 29. 선고 2023가단5140132 판결).
다만, 이곳은 강남의 유명아파트였습니다. 보증금도 10억 원이 넘는기에 배상액이 높게 산정되었지만, 보증금이 낮은 경우에는 배상액이 2,000~3,000만 원 수준에 그칠 수 있습니다. 거기에 초기에 지출해야 하는 변호사 선임비까지 고려하면 임차인이 소송을 결정하기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임대인으로서는 전세가가 오르면 일단 실거주를 이유로 갱신을 거절하고, 임차인이 포기하여 소송을 하지 않거나 소송이 제기되더라도 적당히 배상하면 그만입니다. 즉, 임대인은 별로 손해보는 것이 없습니다. 기왕에 만든 제도를 제대로 실행하려면 기존보다는 임대인에 대한 불이익을 대폭 강화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