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약금
원고는 'D'이라는 상호로 화장지 등 생활용품 도소매업을 하는 개인사업자입니다. 원고는 주식회사 E(이하 'E')와 물품 공급 계약을 체결하고 화장지 등을 납품했습니다. 이후 E으로부터 물품대금 2,280만 원을 받지 못하자, E과 피고 주식회사 B(이하 '피고')가 실질적으로 동일하거나 피고가 E의 채무를 회피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며 피고에게 미지급 물품대금과 지연손해금의 지급을 청구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E과 피고의 본점 소재지, 대표이사가 같고 임원 구성이 일부 중복되는 것은 사실이나, 두 법인의 자산 및 채무 상태, 근로자 수와 인적 구성, 각자가 영위하는 업무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두 법인의 재산과 업무 등이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혼용된 상태였다고 보기 어렵고 채무 면탈의 목적도 인정하기 어렵다며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원고는 2016년 10월부터 2017년 1월까지 E과 화장지 등 물품 공급 계약을 맺고 물품을 공급했습니다. 2017년 2월 E을 상대로 3천만 원 상당의 물품대금 지급명령을 받았고, 이후 상생거래약정을 체결하며 채무를 일부 조정하고 거래를 이어갔습니다. 2018년 9월 18일에는 미지급 물품대금을 2천3백만 원으로 정산하고 분할 지급받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러나 E으로부터 20만 원을 지급받은 후 남은 2천2백8십만 원의 물품대금을 받지 못하게 되자, 원고는 E의 본점, 대표이사, 운영 슈퍼마켓 등이 피고와 동일한 점 등을 들어 피고에게 물품대금을 청구했습니다. 원고는 E이 피고의 채무를 면탈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한 법인, 즉 '껍데기 회사'라고 주장했습니다.
원고가 주식회사 E(이하 'E')에 물품을 공급하고 물품대금을 받지 못하자, E과 피고 주식회사 B(이하 '피고')가 동일 법인이나 피고가 E의 채무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며 피고에게 물품대금 지급을 청구할 수 있는지 여부가 이 사건의 핵심 쟁점입니다.
법원은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며, 피고는 원고에게 물품대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따른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하도록 했습니다.
법원은 원고가 물품을 공급한 직접적인 거래 상대방은 E이며, 피고가 E의 채무 면탈을 위해 법인격을 이용했거나 E의 법인격이 형해화되어 피고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원고의 주장을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보아 원고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은 '법인격 남용론' 또는 '법인격 부인론'과 관련된 법리가 적용됩니다. 이는 회사가 외형상으로는 독립된 법인격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 법인격을 부당하게 이용하여 채무를 면탈하려 하거나, 특정 회사가 다른 회사의 단순한 도구로 전락하여 법인으로서의 실체를 잃은 경우(법인격 형해화)에 법인격을 인정하지 않고 배후에 있는 회사에게 책임을 묻는 원칙입니다.
대법원은 기존 회사가 채무를 면탈할 목적으로 기업의 형태나 내용이 실질적으로 동일한 신설회사를 설립한 경우, 기존 회사의 채권자에 대해 두 회사가 별개의 법인격을 가진다고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상 허용되지 않으므로, 채권자는 어느 회사에 대해서도 채무 이행을 청구할 수 있다고 봅니다 (대법원 2004. 11. 12. 선고 2002다66892 판결 등 참조). 이러한 법리는 이미 설립된 다른 회사를 채무 면탈 목적으로 이용한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특정 회사가 다른 회사의 도구에 불과하다고 보려면, 원칙적으로 재산과 업무가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혼용되었는지, 주주총회나 이사회 등 의사결정 절차가 지켜지지 않았는지, 회사의 자본이 부실하고 영업 규모나 직원 수에 비추어 볼 때 이름뿐인 회사에 불과할 정도로 '형해화'되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매우 엄격하게 판단합니다 (대법원 2008. 9. 11. 선고 2007다90982 판결 등 참조).
이 판결에서 법원은 E과 피고의 본점 소재지, 대표자가 동일하고 임원이 일부 중복되는 점은 인정했으나, 두 법인의 자산 및 채무 상태, 근로자 수, 각자가 영위하는 업무 내용 등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었고, 자산 유용이나 채무 면탈의 목적이 객관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하여 E의 법인격이 형해화되었거나 피고가 이를 부당하게 이용했다고 보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원고가 피고에게 직접 물품대금을 청구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회사가 여러 개의 별도 법인을 운영하는 경우, 각 법인의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법원에서는 채무 면탈 목적으로 다른 법인의 법인격을 이용했는지, 또는 한 회사가 다른 회사의 '껍데기'에 불과할 정도로 법인격이 형해화되었는지를 판단할 때 다음과 같은 점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