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매매/소유권 · 계약금
상가·오피스텔 등 상업용 건물의 수난기입니다. 상업용 부동산 중 오피스텔은 건축법령에 따라 일반업무시설로 분류되지만 아파트와 비슷한 면적과 구조로 주거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아파텔’이라고 불리는 주거용 오피스텔은 도심 내 공동주택에 대한 대안이면서도, 아파트에 비해 비교적 적은 투자금으로도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다고 하여 2022년까지만 해도 100만 호 이상이 공급되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업무용으로 등록하면 주택 수에 포함되지도 않아 분양과 절세 측면에서도 유리했습니다.
그렇게 오피스텔 광풍이 불었습니다. ‘분양만 하면 완판’ 행렬을 이어가며 부동산업자들은 어떻게 해서든 각 도심의 알짜배기 땅을 확보하고 중대형 시공사를 선정하여 주상복합시설 건립을 위한 PF(Project financing) 대출을 받아내고 분양 현수막을 올렸습니다. 시세차익은 물론이고 월세도 따박따박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투자자는 너도나도 청약을 했고, 당첨되면 로또라도 당첨된 것마냥 기뻐했습니다.
문제는 부동산경기가 꺾이고 상업용 건물 시장 또한 급격하게 위축되면서부터, 수분양자들의 불안감은 늘었습니다. 조금이라도 피를 붙여 조기에 엑시트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어느 시점부터 뚝 끊긴 거래는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상가는 물론이거니와 오피스텔의 가격을 내려도 팔리지 않았고 간간히 마이너스 피의 급급매 거래만 들려왔습니다. 세입자를 구하지 못한 상황에서 잔금일이 다가오자 어쩔 수 없이 여기저기 돈을 구하러 다닐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부산에 있는 A 사업장에서는 수분양자에게 희망(?)적인 소식이 들렸습니다. 최근 시행사가 분양 광고 내용에 분양신고일, 내진성능 확보여부, 내진능력을 제대로 기재하지 않아서 시정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분양계약서에는 ‘시행사가 건축물분양법에 따라 시정명령을 받은 경우 분양계약을 해약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었던 겁니다. 소문은 수분양자 카페에서도 빠르게 퍼졌고, 일부 수분양자는 벌써 변호사를 선임하여 시행사를 상대로 소장을 접수했습니다. 분양계약에 적시된 해약사유가 발생하여 적법하게 분양계약을 해약하고, 이미 지급한 분양대금에 위약금을 얹어서 돌려달라는 소송을 낸 겁니다.
하지만 소장을 받아 본 시행사는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분양계약서에 시정명령을 받을 경우 분양계약을 해약할 수 있다는 기재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다는 겁니다. 건축물분양법 시행령에서는 ‘분양 광고의 내용이 분양신고와 다르거나 건축물의 위치ㆍ용도ㆍ규모 및 내진설계 등의 사항이 포함되지 않아 시정명령을 받으면, 분양계약이 해약될 수 있다’는 규정을 포함하도록 했습니다(건축물분양법 제6조 제4항, 동법 시행령 제9조 제1항 제11호 가목). 이를 위반할 경우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분양계약서에 해당 규정을 넣지만, 시정명령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분양계약 자체를 취소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겁니다.
2021년에 접수된 관련 사건은 법원에서 2년간 공방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제1심 법원은 고심하며 시행사의 손을 들었다. 법원은 제반 규정들이 행정상의 목적달성을 위하여 일정한 행위를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단속규정에 불과하다고 보았습니다. 사안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시행업자가 시정명령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계약을 해약할 수 있다면, 대규모 분양사업의 성패가 사소한 위반행위에 좌우될 수도 있다는 점도 고려했습니다. 즉, 사소한 건축물분양법 위반행위로 시정명령을 받은 경우까지 분양계약 자체를 해약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겁니다. 그리고 분양계약서에 내진성능 및 내진능력과 관련한 기재가 누락된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는 내진설계에 따라 건축되었고, 관련 법령에 부합하는 내진능력을 갖춘 것으로 확인되었다는 점도 고려되었습니다.[1]
대구에 있는 오피스텔 B사업장에서도 분양광고에 ‘지구단위계획의 수립 여부’를 누락한 것을 이유로 한 시정명령이 나왔지만, 법원은 시정명령을 받은 것은 분양계약의 체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항이 아니라는 이유로 분양계약 해제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2]
하지만, 여전히 분쟁의 씨앗은 남아 있습니다. 아직 법원의 최종판단이 없는 상황에서 마이너스 피가 난 수분양자가 시행사의 분양광고와 관련한 시정명령을 유도하고, 계약금 몰취 없이 분양계약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를 부추기는 기획소송이 수분양자의 오픈채팅방에서 제안됩니다.
만약 분양계약서의 문언을 그대로 시정명령 그 자체로 분양계약을 해약할 수 있다고 한다면, 앞으로 시장, 군수 등 허가권자의 입장에서도 과장 분양광고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리기 상당히 껄끄러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허가권자가 분양광고가 잘못되었다고 시정명령을 내리는 순간, 마이너스 피가 난 오피스텔이나 상가의 수분양자들의 빗발치는 소송과 가압류로 말미암아 수분양자의 ‘탈출러시’가 펼쳐질 겁니다. 시정명령은 통상의 행정처분 중 경미한 수준이지만, 적어도 분양광고와 관련해서는 시정명령이 시행사의 존폐를 가르는 폐업명령이나 마찬가지가 될 겁니다. 그 점이 허가권자가 분양광고와 관련한 시정명령을 발하는 데 주저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시행사의 입장에서는 건축물분양법을 어기더라도 분양계약서에 시정명령이나 벌금을 부과하는 규정을 포함하지 않는 것이 예상치 못한 시정명령으로 인한 '탈출 러시'의 위험을 부담하는 것보다는 나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 경우 건축물분양법에 따른 형사처벌을 감수해야 할 겁니다. 그렇지 않으려면 개발업자는 분양계약서를 작성할 때 한치의 오차도 없이 심혈을 기울여야 합니다(물론 위 제도의 취지 자체가 그러할 겁니다).
이에 추후 선고될 상급심 판결의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분양광고와 관련한 시정명령만으로 분양계약을 해약할 수 있도록 한 건축물분양법령의 제반 규정들을 그대로 유지할 필요가 있는지 충분한 고민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