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
구직 중이던 피고인 A 씨는 성명불상자에게 속아 실제 존재하는 해외 쇼핑몰의 재택근무직에 채용되었다고 믿고, 국내 업무 처리에 필요하다는 말에 자신의 체크카드를 넘겨주었습니다. 이후 A 씨의 체크카드가 보이스피싱 범죄에 이용된 사실을 알게 되었고, 검사는 A 씨가 전자금융거래법을 위반하여 접근매체를 대여했다고 기소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A 씨가 범죄에 사용될 것을 알면서 카드를 대여할 고의가 없었으며, 사기에 속은 것으로 판단하여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A 씨는 구직 사이트 'G'에 이력서를 게시한 뒤 2020년 1월 8일경 'H'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성명불상자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H'은 필리핀 마닐라에 있는 'B' 쇼핑몰에서 재택근무할 직원을 구한다며, 한국 지점이 없어 국내 결제 및 세금 관리 등 업무 처리를 위해 A 씨의 체크카드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A 씨는 'B' 회사의 실존 여부를 확인하고, 주당 89만 원의 연봉 등 근무 조건이 마음에 들어 취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H'의 지시에 따라 A 씨는 2020년 1월 9일 퀵서비스를 통해 자신의 체크카드를 보냈습니다. 'H'은 계좌에 거액이 오갈 수 있으니 신경 쓰지 말고 알람을 꺼두라고 했으나, A 씨는 알람을 계속 확인했습니다. 2020년 1월 11일, A 씨의 계좌로 '이체알바는 사기', '사기계좌 환불해', '조용히 경찰서로', '내돈내놔사기' 등의 메시지가 담긴 1원 송금이 여러 차례 들어왔습니다. A 씨는 즉시 은행에 연락하여 계좌 비밀번호를 변경하고 계좌를 정지시켰으며 경찰에도 신고했습니다. 하지만 'H' 일당은 이미 A 씨의 계좌와 위조된 주민등록증을 이용하여 보이스피싱 범죄를 저지른 상태였습니다. 검사는 A 씨가 전자금융거래법을 위반하여 접근매체를 대여했다고 보고 기소했으나, 원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었고 검사가 항소했습니다.
피고인 A 씨가 자신의 체크카드를 타인에게 대여한다는 고의를 가지고 제공했는지 여부, 즉 보이스피싱 범죄에 사용될 것을 알면서도 카드를 건넸는지에 대한 판단입니다.
항소심 법원은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과 같이 피고인 A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법원은 A 씨가 성명불상자에게 취업 사기를 당해 체크카드를 보낸 것으로 보았고, 보이스피싱 범죄에 사용될 것을 알면서 접근매체를 대여하려는 고의가 있었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피고인에게 무죄가 유지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주로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중 접근매체 대여와 관련이 있습니다. 전자금융거래법 제6조 제3항은 누구든지 접근매체를 양도하거나 양수하는 행위, 대여하거나 대여받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으며, 동법 제49조 제4항 제1호는 이러한 행위를 위반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고 규정합니다. 여기서 '접근매체'는 체크카드와 같은 금융 거래 수단을 의미합니다. 접근매체 대여죄가 성립하려면 단순히 카드를 넘겨주는 것을 넘어, 카드를 빌려준다는 고의, 즉 상대방이 범죄에 이용할 것을 알면서도 편의를 제공할 목적이 있었음이 입증되어야 합니다. 또한, 이 판결은 '형사사건에서의 무죄 추정의 원칙'을 따르고 있습니다. 우리 형사법은 피고인이 유죄임을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해야 한다는 원칙을 따르며, 검사가 피고인의 유죄를 충분히 입증하지 못하면 피고인에게는 무죄가 선고됩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피고인 A 씨가 사기에 속아 카드를 보낸 것으로 보았고, 범행에 이용될 것을 알면서 대여하려는 고의가 있었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하여 무죄를 선고한 것입니다.
어떤 경우라도 타인이 자신의 금융 계좌, 체크카드, 비밀번호 등 접근매체를 요구한다면 사기일 가능성이 매우 높으므로 절대 넘겨주지 마세요. 특히 취업이나 대출을 빌미로 접근매체를 요구하는 행위는 100% 사기입니다. 회사가 법인 명의가 아닌 개인 명의의 계좌나 카드를 업무에 사용하려는 경우, 이는 비자금 조성이나 세금 탈루 등 불법적인 목적일 수 있으므로 의심해야 합니다. 만약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계좌가 범죄에 이용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즉시 해당 금융기관에 신고하여 계좌를 정지하고 경찰에 신고해야 합니다. 낯선 사람과의 온라인 또는 전화상의 연락만으로 중요한 개인 금융 정보를 넘겨주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상대방의 신원이나 회사의 존재 여부를 철저히 확인해야 하며,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중요한 개인 금융 정보를 요구하는 것은 부적절한 절차이므로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