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해배상 · 의료
젊은 남성이 두 차례 응급실에 내원하여 두 번째 내원 시 급성 악화로 사망하자, 유족들이 병원을 상대로 과도한 약물 투여와 진료상 과실을 주장하며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하급심은 첫 번째 내원 시 약물 과다 투여는 인정하지 않았으나, 두 번째 내원 시 간호사가 의사에게 환자 상태를 제때 보고하지 않는 등 '현저하게 불성실한 진료'가 있었다고 보아 병원이 유족들의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대법원은 진료상 과실과 사망 사이의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없더라도 '현저하게 불성실한 진료'로 인한 위자료 배상책임을 인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판단 기준을 다시 제시하며 이 사건을 하급심으로 돌려보냈습니다.
22세의 대학생이 2011년 2월 18일 두통, 구토 증상으로 부산의 ○○병원 응급실에 처음 내원하여 구토 치료제인 멕소롱을 투여받고 증세가 호전되어 귀가했습니다. 다음날인 2월 19일 새벽, 동일한 증상으로 다시 ○○병원 응급실에 2차 내원했습니다. 의료진이 멕소롱을 추가 투여하고 산소 공급 등의 조치를 했으나 환자는 05시 50분부터 호흡 곤란과 복통을 호소하며 상태가 급속히 악화되었습니다. 간호사는 환자가 혼수상태에 이르는 07시 45분까지 약 1시간 동안 의사에게 환자 상태를 보고하지 않았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당직의사가 보고를 받고 뇌 CT 촬영 및 중환자실 이동 등 조치를 했지만, 환자는 결국 사망했습니다. 유족들은 병원 의료진이 멕소롱을 과다 투여하고 환자 상태 악화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환자가 사망했다고 주장하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환자가 첫 번째 내원 시 과도한 약물(멕소롱) 투여로 악성신경이완증후군이 발생했는지, 두 번째 내원 시 병원 의료진의 진료상 과실(늦은 보고 및 조치)과 환자의 사망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인정되는지, 설령 사망과의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없더라도 병원의 진료가 일반인의 수인 한도를 넘어설 만큼 '현저하게 불성실한 진료'에 해당하여 유족의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를 배상해야 하는지 여부입니다.
대법원은 피고 의료법인 ○○의료재단에 대한 원심판결 중 위자료 배상 책임을 인정한 부분을 파기하고 이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즉, 하급심이 '현저하게 불성실한 진료'라고 판단한 근거만으로는 그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렵다며 재심리를 명령했습니다. 원고(선정당사자)의 피고들에 대한 상고는 모두 기각했습니다.
대법원은 의료진의 주의의무 위반이 환자의 사망이라는 '악결과'와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더라도, 그 진료가 일반인이 참기 어려울 만큼 '현저하게 불성실한' 경우라면 그 자체로 불법행위를 구성하여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간호사가 환자 상태를 의사에게 늦게 보고하고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만으로는 '현저하게 불성실한 진료'라는 높은 기준에 부합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하여, 이 부분에 대한 하급심의 판단에 법리오해가 있었다고 지적하며 재심리를 지시했습니다. 이는 의료사고에서 인과관계 증명이 어려울 때 위자료 배상 책임을 인정할 수 있는 기준을 명확히 제시한 판결입니다.
의료진은 의료행위의 속성상 환자의 구체적인 증상이나 상황에 따라 발생하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최선의 조치를 취해야 할 주의의무를 부담합니다. 의료진이 환자의 기대에 반하여 치료에 전력을 다하지 않은 경우 업무상 주의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보아야 하며(민법 제750조 불법행위 책임), 이러한 주의의무 위반과 환자에게 발생한 악결과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면 손해배상책임이 발생합니다. 다만 주의의무 위반 정도가 일반인의 처지에서 보아 수인 한도를 넘어설 만큼 '현저하게 불성실한 진료'를 행한 것이라고 평가될 정도에 이른 경우라면, 그 자체로서 불법행위를 구성하여 그로 말미암아 환자나 그 가족이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배상을 명할 수 있습니다. 이때 '수인 한도를 넘어서는 정도로 현저하게 불성실한 진료'를 하였다는 점은 불법행위의 성립을 주장하는 피해자가 증명해야 합니다(대법원 2006. 9. 28. 선고 2004다61402 판결, 대법원 2014. 2. 13. 선고 2013다77294 판결 등 참조).
의료사고 발생 시 환자 측은 의료진의 과실과 그 과실로 인한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처럼 설령 직접적인 인과관계 증명이 어렵더라도, 의료진의 진료 태만이 일반인의 수인 한도를 넘어설 만큼 '현저하게 불성실한 진료'였다고 인정된다면 이로 인한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를 배상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었습니다. 이러한 '현저하게 불성실한 진료'는 단순히 진료가 늦거나 미흡했다는 정도를 넘어, 일반 상식으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의료윤리를 저버린 행위를 의미하며, 이를 입증할 책임은 환자 측에 있습니다. 따라서 유사 상황에서는 의료 기록, 당시 상황에 대한 상세한 기록, 전문가의 감정 등을 통해 의료진의 과실 정도를 구체적으로 입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