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축/재개발 · 손해배상
개발사업에 따라 공사가 진행되면 인근 주민들은 만감이 교차합니다. 인근 지역이 개발되는 것은 좋은 일이긴 하나, 착공을 하게 되면 공사로 인한 먼지와 소음을 감수해야 하고, 혹시라도 내 집값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대단지 신축 아파트 공사가 진행되면 인근 지역 아파트에도 ‘00조합과 00건설은 소음, 진동, 분진 문제부터 해결하라’라는 현수막이 심심치 않게 발견되며, 시청과 구청에도 인근 주민들의 민원이 빗발치면 어쩔 수 없이 개입할 수밖에 없고, 이로인해 공사가 중단되는 경우까지 있습니다.
하다못해 인테리어 공사를 하기 전에도 소음과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미리 공지하고 떡이라도 돌리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대단지 아파트 공사라면 더더욱 그러할 겁니다. 이에 착공 전 어떻게든 인근 주민의 마음을 상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인근 아파트의 필수 기반시설을 바꿔주거나 도장을 대신해 주는 등 민원에 대비한 선조치를 해 두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시행자 입장에서도 혹여라도 민원으로 인해 공사가 중단되면 금융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최소한의 민원만으로 원만히 시공하는 것이 숙제이고, 원만한 민원 처리는 시공사의 능력을 평가하는 주된 지표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소음과 분진도 공사가 진행되는 한두 해만 불편하며 끝나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일조와 조망 문제는 좀 다릅니다. 한 번 지어진 아파트가 철거되지 않는 한, 해를 가리는 문제는 인근 주민에게 더욱 심각한 영향을 미칩니다. 물론 인근 소유자 등이 종전부터 향유하던 일조 이익은 법적으로 보호받습니다. 사생활의 보호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일조 이익에도 일정한 수인 한도가 있습니다. 즉, 인근에서 건물이나 구조물 등이 신축됨으로 인해 햇빛이 차단되어 생기는 그늘이 증가함으로써 해당 토지에서 종래 향유하던 일조량이 감소하는 일조 방해가 발생하더라도, 일정한 수인 한도를 넘어서야 비로소 위법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우리나라 국토의 특수성과 협소성, 대도시 인구의 과밀화 및 토지의 효율적 이용을 위한 건물의 고층화 경향, 일조 등의 확보를 위한 건축물 높이 제한에 관한 건축 관계 법령상의 규정 등을 고려하면, 아무런 제한이 없는 일조를 보호받지는 못하고 일부 제한이 있어도 수인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일찍부터 대법원에서 확립된 논리를 ‘수인한도론’이라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동짓날을 기준으로 8시부터 16시까지 사이의 8시간 중 일조 시간이 통틀어서 4시간 이상 확보되는 경우(‘총 일조시간’), 또는 9시부터 15시까지 사이의 6시간 중 일조 시간이 연속하여 2시간 이상 확보되는 경우(‘연속 일조시간’)에는 일단 수인 한도를 넘지 않는 것으로 봅니다. 위 두 가지 중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는 일조 방해의 경우에는 수인 한도를 넘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해가 가장 적게 드는 동지를 기준으로 하더라도 최소하의 해가 들어오면 참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일조권 침해 유무는 반드시 건축물을 짓지 않아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건축 및 엔지니어링 설계에서 활용되는 CAD(Computer-Aided Design)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됩니다. 건물 및 인근 지형에 관한 도면상의 층고와 이격 거리를 입력하고, 3D 모델링을 통해 태양의 경로를 시뮬레이션하면 특정 기간이나 시간 대에 일조권이 침해되는지를 금방 계산됩니다. 이를 통해 ‘총 일조시간’과 ‘연속 일조시간’을 계산하면 4시간, 2시간에 미치지 못하는지, 즉 수인 한도를 넘었는지가 쉽게 확인됩니다(소송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다툼은 크게 없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수인 한도를 초과한 경우라면 이에 따른 재산상 손해와 위자료를 산정해 지급합니다. 재산상 손해는 일조권 침해로 인한 자산가치 하락분을 계산하는데, ‘침해가 없는 상태에서의 가액 × 일조 침해율(일조가 침해되는 비율) × 일조 가격 지수(통상 8%)’로 계산하며, 여러 사유를 들어 다시 일정 비율을 추가로 더 감액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통상 40%~60%). 여기에 위자료는 통상 100~200만 원 정도로 산정됩니다(물론 실제로 거주하지 않을 경우는 위자료가 인정되지 않습니다).
어쨌든 사업시행자가 일조가 침해되는 인근 주민에게 손해를 배상하고 돈으로 해결할 수 있으면 다행입니다. 문제는 손해배상 자체가 아니라 사업 자체가 취소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서울 서대문구의 알짜 재개발 사업지에는 오래된 성당이 있었습니다. 이 성당은 1957년에 건립된 유서깊은 성당이었고 신자 수도 3,700명에 달했습니다., 인근 재개발에도 불구하고 성당 측은 재개발 의사가 없음을 수년간 분명히 했습니다. 조합은 처음에는 성당까지 함께 포함해 인근 지역을 개발하고 새로 성당을 지을 계획이었지만, 성당의 계속된 존치 요구에 조합은 부득이 성당은 그대로 두고 나머지 부분만 재개발을 진행하는 것으로 사업계획을 수정해 인가를 받았습니다.
기존 성당의 대성당, 사제관, 사무실, 수녀원의 인접 지역에는 고층 건물이 없었고 충분한 일조가 있었는데, 이러한 아파트의 신축으로 인해 성당은 연속 일조시간 2시간과 총 일조시간 4시간을 확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조망과 사생활의 자유 침해도 문제가 되었습니다. 사업계획에 따라 신축될 예정인 아파트는 성당의 경계와 불과 10m 내외의 거리를 두고 인접해 있었고, 아파트 경계에 인접한 성당 내부에는 사제와 수녀들이 일상생활을 하는 거처가 있어, 수녀원의 내부를 아파트 창문을 통해 내려다볼 수 있게 될 뿐 아니라, 아파트 부지가 성당 부지보다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아파트의 부지를 이용하는 주민 등으로부터 성당 내부가 직접적으로 노출되기까지 했습니다.
이에 성당 측은 기존대로 성당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달라며 재개발 사업시행인가를 취소하는 소송을 냈습니다. 성당 측은 돈 문제가 아니라 조용하고 안정된 환경 속에서 계속 종교 활동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1심은 성당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도시정비법에는 종교시설의 소유자를 주택이나 상가 소유자와 달리 특별히 취급하도록 하는 규정이 존재하지 않기에 성당이라고 특혜를 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설령 성당의 일조권, 조망권 및 사생활의 자유 등을 일부 침해받게 된다고 하더라도, 정비기반시설이 열악하고 노후ㆍ불량 건축물이 밀집한 지역에서의 주거환경 개선 등과 같은 공익 및 다른 조합원들의 재산권 등이 그로 인해 성당이 입게 되는 불이익보다 크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항소심에서 결론이 완전히 뒤집혔고, 사업시행계획은 취소될 위기에 처해졌습니다(서울고등법원 2024. 12. 18. 선고 2024누48161 판결). 서울고등법원은 성당 측이 조합에게 지속적으로 성당의 존치를 요청했고, 조합도 이를 충분히 감안하여 성당의 기존 생활이익을 침해하지 않을 수 있었는데도 성당의 기존 환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을 조합에게 불리하게 판단했습니다. 만약 기존 사업방식대로 하면 성당은 결국 일부 시설을 이전해야 하는데, 이는 사실상 성당의 이전을 강제하는 것이고 이는 성당의 사익에 큰 침해라는 겁니다. 사업계획이 취소가 되자 조합은 난리가 났습니다.
일조권이나 생활권의 침해를 이유로 사업 자체가 취소된 것은 거의 최초의 케이스로 보입니다. 물론 조합은 즉각 상고했고, 현재 상고심이 계속 중입니다. 물론 최종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불리해진 조합으로서는 신속하게 사업시행계획을 변경하거나 성당의 마음을 돌리도록 노력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