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매매/소유권 · 기타 형사사건 · 손해배상
다른 사람 명의로 부동산 거래를 하는 것을 ‘부동산 명의신탁’이라고 합니다. 본인(명의신탁자)은 실질적인 권한을 보유한 채 타인(명의수탁자)에게 부동산에 대한 명의만 맡겨두는 겁니다. 주로 각종 조세나 건강보험료 등의 부담을 피하거나 강제집행을 회피하기 위해 이용되곤 합니다. 한때 장영자 씨나 전두환 씨가 타인의 명의로 은닉하거나, 강제집행을 피하기 위해 타인 명의를 이용한 것으로 알려져 전국민적 공분을 산적이 있습니다.
이를 막고자 1995년 김영삼 정부 때 ‘부동산 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일명 부동산실명법)’이 시행되었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부동산실명법은 조세 포탈 등의 목적이 없는 배우자 명의의 권리 취득 등 일부 예외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명의신탁 약정과 이에 따른 물권 변동, 즉 등기 이전까지 모두 무효로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부동산실명법을 위반한 명의신탁자와 명의수탁자까지 형사처벌하는 규정을 두었습니다. 이로 인해 부동산 명의신탁은 일대 변화를 겪게 되었습니다.
다만, 부동산 명의신탁이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무효로 된 부동산을 취득한 제3자만은 온전히 보호받고 있습니다(부동산실명법 제4조 제3항). 쉽게 말해 매도인의 부동산 권리가 명의신탁에 따라 무효라 해도 매수인의 권리는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매수인은 명의신탁을 알았는지 여부를 따지지 않고 완전한 보호를 받습는다. 따라서 함부로 타인에게 부동산 명의를 맡겼습니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A(명의신탁자)는 기존에 보유한 아파트 외에 다른 아파트를 사면서 다주택자 중과세를 피하기 위해 본인 명의 아파트를 30년 지기인 B(명의수탁자) 명의로 등기이전했다고 하자. 그런데 철석같이 믿었던 B가 A를 배신해 아파트를 함부로 C에게 팔아버렸다면 어떨까요. A가 C에게 ‘B의 등기가 무효’라고 주장해 본들 소용없습니다. 부동산실명법상 A는 제3자인 C에게 대항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A는 B에게, C에게 받은 매매대금이라도 달라고 요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A를 배신하기로 마음먹은 B의 입장에서는 받은 돈을 다 써버리거나 다른 곳에 빼돌려 놓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경우 궁지에 몰린 A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은 합리적인 방법은 B를 횡령죄로 형사고소하는 것이었습니다. B가 형사책임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A에게 피해액을 변제하기를 바라는 것이었고, 실제로 어느 정도 효과가 있긴 했습니다. 물론 A의 입장에서는 형사고소를 하면서 자신도 부동산실명법 위반으로 형사처벌을 받을 위험을 감수해야 하긴 했습니다.
그런데 형사고소 역시 아무 소용이 없게 되었습니다. 판례가 ‘부동산실명법에 위반한 이른바 양자 간 명의신탁의 경우, 명의수탁자가 신탁받은 부동산을 임의로 처분해도 명의신탁자에 대한 관계에서는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입장을 바꿨기 때문입니다.[1]
전에는 부동산실명법을 위반한 양자 간 명의신탁에서도 명의수탁자가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의 지위에 있기 때문에 부동산을 임의로 처분하면 명의신탁자에 대한 횡령죄가 성립한다고 판시했으나, 이번 판결로 그간의 대법원 판례는 모두 폐기되었습니다. 구체적인 사례를 보겠습니다.
D는 E소유의 아파트를 명의신탁 받아 보관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E로부터 그 아파트를 자신의 명의로 등기 이전받았습니다. 하지만 D는 기존에 부담하던 채권자의 빚 독촉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E의 아파트를 E에게 팔아버리고, 매매대금으로 빚을 갚았습니다. 이를 알게 된 E는 D를 횡령죄로 형사고소했습니다. 1심에서는 D에게 횡령죄를 인정하고 실형을 선고했으나, 2심에서는 2016년에 위와 같은 이유로 횡령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3심인 대법원은 무려 약 5년에 걸친 심리 끝에 2심의 판단을 그대로 인정하며, 무죄를 확정했습니다.
횡령죄는 위탁받아 보관하는 타인의 재산을 임의로 처분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횡령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신탁자와 수탁자 사이에 위탁관계가 있었어야 합니다. 대법원은 횡령죄에서의 위탁관계가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는 신임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2] 하지만 대법원은 부동산실명법을 위반한 명의신탁약정은 보호할 만한 신임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부동산실명법을 위반한 경우, 명의신탁약정과 이에 따른 물권 변동은 모두 무효이며, 더 나아가 범죄까지 구성되므로, 보호할 만한 신임이 아니라 그저 불법적인 관계일 뿐이라는 겁니다.
이러한 법리는 단순히 타인에게 자신의 부동산 명의를 맡기는 명의신탁뿐만 아니라, 타인의 명의로 부동산을 매수하는 명의신탁에도 적용됩니다.[3]
쉽게 말해 본인 부동산을 남에게 이전하든, 타인을 내세워 부동산을 매수하든, 타인 명의로 부동산을 취득한 경우 앞으로는 법의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한다는 겁니다. 오히려 부동산실명법 위반으로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 특히 부동산 거래에서 자금출처를 밝혀야 하는 상황에서 명의신탁이 발각되기 쉬울 겁니다. 이 모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타인 명의로 부동산 명의를 해 두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고 형사처벌을 하지 못한다고 해서 무조건 면책되는 것은 아닙니다. 판례는 비록 형사적으로는 처벌하지 못하더라도 명의수탁자가 양자간 명의신탁에 따라 명의신탁자로부터 소유권이전등기를 넘겨받은 부동산을 임의로 처분하면 명의신탁자에게 손해배상책임은 집니다.[4]
형사책임은 행위자에 대한 공적인 제재(형벌)를 내용으로 함에 비하여, 민사책임은 타인의 법익을 침해한 데 대하여 행위자의 개인적 책임을 묻는 것으로서 피해자에게 발생된 손해의 전보를 내용으로 하고 손해배상제도는 손해의 공평ㆍ타당한 부담을 지도원리로 합니다. 따라서 형사상 범죄를 구성하지 않는 침해행위라고 하더라도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하는지는 형사책임과 별개의 관점에서 검토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물론 그러한 손해배상비용은 제3자가 부동산을 처분한 가액에서 임대차보증금 등 비용이 공제되어 산정됩니다.
물론 민사소송을 제기할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자신도 부동산실명법 위반으로 형사처벌을 받을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공무원은 그 직무를 행함에 있어 범죄가 있다고 사료하는 때에는 고발하여야 합니다(형사소송법 제234조 제2항). 판사를 포함한 공무원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고발을 하는 것이 번거로운 일인지 적극적으로 고발조치가 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1] 대법원 2021. 2. 18. 2016도 18761 전원합의체 판결
[2] 대법원 2016. 5. 19. 선고 2014도6992 전원합의체 판결
[3] 대법원 2016. 5. 19. 선고 2014도6992 전원합의체 판결
[4] 대법원 2021. 6. 3. 선고 2016다34007 판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