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해배상
여러 건설회사가 공동으로 광안대교 건설공사를 수주한 후 강교공사를 하도급 주기 위해 동국산업과 협상했습니다. 동국산업은 견적서와 이행각서, 보증서까지 제출했지만, 여러 차례 가격 조정과 계약 조건 협상 끝에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하여 계약이 체결되지 않았습니다. 이에 원고들은 동국산업이 계약을 이행하지 않아 손해를 입었다며 채무불이행 및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원고와 동국산업 사이에 계약이 성립되지 않았다고 판단하여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습니다.
본 사건의 핵심 쟁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원고들과 피고 동국산업주식회사 사이에 강교공사 하도급 계약이 실제로 유효하게 체결되었는지 여부. 둘째, 만약 계약이 체결되지 않았다면, 계약 교섭 과정에서 피고 동국산업의 행위가 원고들에게 손해를 배상해야 할 채무불이행 또는 불법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 셋째, 위 하도급 계약이 체결되지 않았거나 피고 동국산업의 책임이 인정되지 않을 경우, 피고 건설공제조합의 보증 책임이 발생하는지 여부.
항소심 법원은 원고들의 피고들에 대한 청구를 모두 기각하고, 제1심 판결 중 피고 동국산업주식회사가 패소했던 부분을 취소하며, 원고들의 항소를 모두 기각했습니다. 이는 원고들과 피고 동국산업주식회사 사이에 강교공사 하도급 계약이 최종적으로 성립되지 않았고, 피고 동국산업의 계약 불성립 과정의 행위 또한 채무불이행이나 불법행위로 볼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입니다. 따라서 피고 건설공제조합의 보증 책임 또한 발생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본 판결은 대규모 공사의 하도급 계약과 같이 공사금액뿐 아니라 구체적인 공사 방법, 준비, 대금 지급 방법 등 중요한 제반 조건들에 대한 합의가 모두 이루어져야 계약이 성립된다는 점을 명확히 했습니다. 또한, 계약 체결 이전의 준비 단계에서 당사자들은 언제든지 계약 교섭을 중단하고 체결을 포기할 수 있으며, 단순히 견적서 제출이나 입찰 참가 행위만으로 계약 성립에 대한 정당한 기대나 신뢰를 유발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계약 불발이 곧 위법한 행위로 이어지는 것은 아님을 확인하였습니다.
이 사건에 적용된 주요 법령 및 법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계약의 성립 (민법 제530조 이하): 계약은 당사자 간에 청약과 승낙이라는 의사표시의 합치로 성립합니다. 특히 대규모 공사 계약과 같이 복잡하고 중요한 계약에서는 공사 금액뿐만 아니라 공사 시행 방법, 공사비 지급 방법, 공사 기간 등 주요한 계약 조건 전반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가 있어야 계약이 유효하게 성립된 것으로 인정됩니다. 단순히 견적서 제출이나 계약서 초안 교환만으로는 계약이 성립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채무불이행 (민법 제390조): 채무불이행은 유효하게 성립된 계약에서 채무자가 계약 내용에 따른 의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법적 책임입니다. 본 사건에서는 하도급 계약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다고 판단되었으므로, 채무불이행 책임은 인정될 여지가 없었습니다.
불법행위 (민법 제750조):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한 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에 발생하는 손해배상 책임입니다. 계약이 성립되기 전 교섭 단계에서의 부당한 파기는 예외적으로 불법행위가 될 수 있으나, 본 사건에서는 피고 동국산업의 행위가 원고들에게 정당한 계약 성립의 기대나 신뢰를 유발했다고 보기 어렵고, 계약 체결에 대한 거부도 위법한 행위로 볼 수 없다고 판단되었습니다. 즉, 계약자유의 원칙상 계약 교섭을 중단할 자유가 인정되었습니다.
계약자유의 원칙: 당사자는 계약을 체결할지 말지, 어떤 내용으로 체결할지 등을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원칙입니다. 이 원칙에 따라 계약이 최종적으로 체결되기 전까지는 당사자들이 언제든지 계약 교섭을 중단하고 계약 체결을 포기할 수 있습니다. 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위법한 행위로 보지 않습니다.
구 건설업법 제22조의2 제2항 (1996. 12. 30. 법률 제5232호로 개정되기 전): 이 조항은 건설업자가 대통령령이 정하는 건설공사를 도급받기 위해 전문건설업자의 견적을 미리 받아 도급금액을 정한 경우, 당해 건설공사를 도급받은 때에는 수급인과 전문건설업자가 그 견적한 내용대로 하도급계약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이 규정이 수급인과 견적을 제시한 건설업자 사이에 계약 성립을 '의제'하는 것은 아니며, 피고 동국산업이 전문건설업자라는 증거도 없으므로 이 규정만으로 계약이 성립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손해배상의 범위 (신뢰이익과 이행이익): 계약이 불성립되거나 부당하게 파기된 경우 손해배상의 범위에 대한 법리입니다. '신뢰이익'은 계약이 유효하게 성립될 것이라는 신뢰에 바탕을 두고 지출한 비용 등 손해를 의미하며, '이행이익'은 계약이 유효하게 체결되어 이행되었더라면 얻었을 이익을 의미합니다. 법원은 계약 교섭의 부당 파기로 인한 손해배상은 일반적으로 신뢰이익에 한정되며, 계약이 성립되었을 때의 이익인 이행이익까지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본 사건에서는 불법행위 자체가 인정되지 않았지만, 만약 인정되었더라도 이행이익을 주장한 원고의 청구는 받아들여지기 어려웠을 것임을 덧붙여 명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