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 콘덴서가 일으킨 타임키퍼 고장 손해배상 판결

원격제어기기 제조업체인 주식회사 A는 B 주식회사로부터 콘덴서를 구매하여 '타임키퍼'라는 제품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타임키퍼에서 오작동이 발생하자 원인을 조사했고 B사 콘덴서의 불량이 원인임이 밝혀졌습니다. A사는 B사를 상대로 불량 콘덴서로 인해 발생한 타임키퍼 교체 비용 및 영업 손실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법원은 제조물 책임법상 '안전성 결여 결함'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으나, 콘덴서 제조 과정상의 과실로 인한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하여 B사가 A사에 타임키퍼 교체 비용의 일부인 96,397,025원을 배상하도록 판결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A사에게도 제품 적합성 확인 의무를 소홀히 한 책임이 있다고 보아 50%의 책임 제한을 적용했습니다.

관련 당사자

• 주식회사 A (원고, 항소인): 원격제어기기 제조 및 판매업체로, 아파트 등에 설치되는 전등 원격제어기기인 '타임키퍼'를 제조했습니다.
• B 주식회사 (피고, 피항소인): 전자부품 제조 및 판매업체로, '콘덴서'를 제조하여 주식회사 A에 공급했습니다.
• 주식회사 C, 주식회사 D: B 주식회사의 대리점으로, A 주식회사에 문제의 콘덴서를 판매했습니다.
• I 주식회사: A 주식회사의 타임키퍼를 아파트 건설 현장 등에 판매한 회사입니다.

분쟁 상황

원고인 주식회사 A는 2013년 8월경부터 피고인 B 주식회사의 대리점인 C와 D를 통해 B사가 제조한 콘덴서(F, G, H 모델)를 구입했습니다. A사는 이 콘덴서를 사용하여 2013년 12월경부터 '타임키퍼'라는 원격제어기기 완제품을 제조하여 아파트 건설 현장 등에 납품했습니다.

그런데 타임키퍼 제조를 시작한 지 약 6개월 후인 2014년 6월경부터 타임키퍼에서 작동 불량, 전등 미작동, 액정 미표시 등의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A사는 2014년 10월경 D에게 콘덴서 불량 여부를 문의했고, D는 피고 B사로부터 받은 분석 보고서를 A사에 전달했습니다. 이 보고서에는 콘덴서에서 용량 감소 현상이 발생했으며, 그 원인은 증착필름의 증착금속 증발 때문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후 A사와 B사는 이메일을 주고받거나 회의를 열어 불량 타임키퍼의 교체 및 리콜에 대해 논의했고, B사는 일부 타임키퍼를 비용을 들여 교체해주거나 A사가 보관하던 콘덴서 재고품 2,400개를 회수하여 교체해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자 A사는 B사를 상대로 불량 콘덴서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하게 되었습니다.

핵심 쟁점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콘덴서 제조사인 B 주식회사가 불량 콘덴서로 인해 주식회사 A에게 발생한 손해를 배상하기로 하는 약정을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체결했는지 여부입니다. 둘째, B 주식회사와 대리점들 사이에 A 주식회사를 위한 '제3자를 위한 계약'이 체결되어 A 주식회사가 직접 B 주식회사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취득했는지 여부입니다. 셋째, 불량 콘덴서의 결함이 '제조물 책임법'에서 규정하는 '안전성 결여 결함'에 해당하는지 여부입니다. 넷째, B 주식회사의 콘덴서 제조 과정상 과실로 인한 '불법행위' 책임이 인정되는지, 만약 인정된다면 손해배상의 범위와 원고인 A 주식회사의 책임이 제한되어야 하는지 여부입니다.

법원의 판단

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결했습니다.

1. 약정불이행 및 제3자를 위한 계약 주장 기각: 원고 주식회사 A와 피고 B 주식회사 사이에 손해배상 약정이 체결되었다거나, B 주식회사와 대리점들 사이에 A 주식회사를 수익자로 하는 제3자를 위한 계약이 체결되었다고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며 해당 주장을 모두 기각했습니다.
2. 제조물 책임법상 손해배상 주장 기각: 이 사건 콘덴서의 불량은 '제조물에 대하여만 발생한 재산상 손해'로 보이며, 제조물 책임법에서 규정하는 '안전성을 결여한 결함'이라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하여 제조물 책임법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3.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인정: B 주식회사가 콘덴서 제조 공정 과정상의 과실로 용량이 감소한 콘덴서를 제작하여 A 주식회사에게 손해를 입힌 것은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인정했습니다.
   • 손해배상 범위 산정: 타임키퍼 1개 교체 비용은 관리비용(4,000원~12,000원), 인건비(465원), 부품비(1,255원), 운송비(659원)를 포함하여 산정되었습니다. 원고가 실제로 교체를 완료한 타임키퍼 26,979개에 대해 총 교체 비용은 192,794,050원으로 계산되었습니다.
   • 영업손실 부분 기각: 원고의 영업 손실 주장은 경제 상황 변화나 영업 능력 등 다른 요인의 영향을 받으므로 피고의 책임으로 단정하기 어렵고, 피고가 그 손실을 예견할 수 있었다는 증거도 없다고 보아 기각했습니다.
4. 책임의 제한: 원고 A 주식회사도 피고로부터 납품받은 콘덴서가 타임키퍼 제작에 적합한지 충분히 확인하지 않은 과실이 있다고 보아, 피고 B 주식회사의 손해배상 책임을 50%로 제한했습니다. 따라서 최종 손해배상액은 96,397,025원(= 192,794,050원 × 0.5)으로 결정되었습니다.
5. 지연손해금: 피고는 원고에게 96,397,025원과 이에 대해 2016년 12월 21일부터 2018년 10월 5일까지 연 5%의, 그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15%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해야 합니다.

결론

법원은 불량 콘덴서 제조로 인한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하여 피고 B 주식회사가 원고 A 주식회사에게 타임키퍼 교체 비용의 절반에 해당하는 약 9천 6백만 원과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배상하도록 판결했습니다. 원고가 주장한 약정불이행, 제3자를 위한 계약, 제조물 책임법상 손해배상 및 영업 손실에 대한 청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연관 법령 및 법리

이 판례에서 주요하게 논의된 법령과 법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제조물 책임법 제3조 제1항 (제조물 책임)​:

   • "제조업자는 제조물의 결함으로 생명·신체 또는 재산에 손해(그 제조물 자체에만 발생한 손해는 제외한다)를 입은 자에게 그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
   • 이 조항은 제조물에 통상적으로 기대되는 '안전성'을 결여한 '결함'으로 인해 다른 생명·신체 또는 '다른 재산'에 손해가 발생했을 때 제조업자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지우는 법입니다. 이 사건에서는 불량 콘덴서로 인해 타임키퍼가 고장 난 것은 타임키퍼 '자체'에 발생한 재산상 손해로 보았고, '안전성 결여 결함'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제조물 책임법 적용을 부정했습니다. 즉, 제품 자체의 성능 미달은 이 법이 아닌 다른 법리로 해결해야 한다고 본 것입니다.

2. 민사소송법 제202조의2 (손해배상 액수 산정)​:

   • "법원은 손해가 발생한 사실은 인정되나 손해액을 증명하기 위하여 필요한 증거를 모두 조사하여도 그 증명에 필요한 자료를 얻을 수 없는 경우에는 변론 전체의 취지와 증거조사의 결과에 의하여 인정되는 모든 사정을 종합하여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금액을 손해액으로 정할 수 있다."
   • 이 조항은 손해가 발생했다는 사실은 명백하지만, 구체적인 손해액을 정확히 계산하기 어려운 경우에 법원이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손해액을 정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입니다. 이 사건에서 타임키퍼 1개 교체에 소요되는 인건비 등을 정확히 특정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으므로, 법원은 이 규정을 적용하여 타임키퍼 교체에 발생한 총 손해액을 192,794,050원으로 산정했습니다.

참고 사항

유사한 상황에 처했을 때 다음 사항들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1. 계약서의 명확한 작성: 부품 공급 계약 시 제품의 하자에 대한 책임 소재, 손해배상 범위, 그리고 제3자 피해 발생 시의 처리 방식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 품질 검사 및 적합성 확인: 부품을 사용하여 완제품을 제조하는 경우, 납품받은 부품이 완제품의 품질 및 성능 기준에 적합한지 자체적으로 철저한 검증(예: 에이징 테스트 등)을 실시하고 그 기록을 남겨야 합니다. 단순히 외관상의 문제만이 아니라 장기적인 성능 저하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3. 결함 발생 시 초기 대응 및 증거 보전: 제품 결함이 발생하면 즉시 원인을 분석하고, 관련 대화 내용(이메일, 회의록 등), 분석 보고서, 불량품 회수 및 교체 내역 등 모든 관련 자료를 상세하게 기록하고 보관해야 합니다.
4. 손해액 산정 근거 마련: 손해배상을 청구할 경우, 발생한 손해액(예: 교체 비용, 인건비, 부품비, 운송비 등)에 대한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증거를 충분히 확보해야 합니다. 영업 손실과 같은 간접적인 손해는 입증하기 매우 어려울 수 있으므로, 직접적인 손해를 중심으로 준비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5. 제조물 책임법의 이해: 제조물 책임법은 '안전성을 결여한 결함'으로 인해 생명, 신체 또는 다른 재산에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 적용됩니다. 제조물 자체의 성능 미달 또는 품질 부적합으로 인한 재산상 손해에는 제조물 책임법이 적용되지 않을 수 있으므로, 어떤 법적 근거로 손해배상을 청구할지 신중하게 검토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