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해배상 · 의료
원고 A 부부가 임신을 위해 피고 병원에 내원하여 치료를 받던 중, 자궁외 임신으로 진단받고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 과정에서 피고 D 의사는 원고 A의 양측 난관을 모두 절제하였고, 이로 인해 원고 A는 영구 불임 상태가 되었습니다. 원고들은 피고 D 의사의 난관 절제술이 의료상 주의의무와 설명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며 손해배상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피고들의 의료 행위에 위법성이 없다고 판단하여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습니다.
원고 A는 2018년 2월경 임신을 원하여 배우자 B와 함께 피고 병원에 내원했습니다. 원고 A는 2008년 우측 자궁외 임신으로 부분절제술을 받은 과거력이 있었고, 2018년 6월 자궁 난관 촬영술 결과 우측 난관이 복강 내로 소통되지 않는 상태임이 확인되었습니다. 피고 병원은 십여 회에 걸쳐 자연임신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2019년 3월과 4월경 자연임신이 어려운 불임으로 진단하며 시험관 시술을 권유했으나, 원고 A는 이를 거부했습니다. 2019년 9월 1일, 원고 A는 임신테스트기 양성반응으로 다시 피고 병원에 내원했고, 초음파 검사상 우측 난소와 가까운 난관부에서 1.8cm 크기의 종괴가 확인되어 우측 난관부의 자궁외 임신으로 진단받고 수술적 치료를 결정했습니다. 피고 D 의사는 2019년 9월 2일 복강경 수술을 시행했습니다. 수술 중 실제 종괴는 우측 난소에서 발생한 것으로 확인되었고, 탐색 결과 좌측 난관에서 초음파 검사로는 확인되지 않을 정도의 작은 자궁각 임신이 추가로 발견되었습니다. 이에 피고 D 의사는 좌측 난관과 난관채를 제거하는 수술을 시행하고, 우측 난관을 통한 자연임신이 불가능하고 향후 시험관 시술 시 자궁외 임신이 발생할 가능성을 고려하여 우측 난관 절제술도 시행했습니다. 원고들은 피고 D 의사가 원고 A의 자연임신 의사를 알면서도 임신된 자궁각 부분절제술이나 약물치료를 고려하지 않고 동의 없이 양측 난관을 모두 절제하여 영구 불임 상태에 이르게 했다며, 피고들에게 의료상 주의의무 위반 및 설명의무 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원고 A에게 일실수입 2500만 원 및 위자료 3000만 원, 원고 B에게 위자료 1500만 원)을 청구했습니다.
이 사건의 주요 쟁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피고 D 의사가 원고 A의 양측 난관을 모두 절제한 의료 행위가 당시 의료 수준에 비추어 주의의무를 위반한 것인지 여부입니다. 둘째, 피고 D 의사가 수술 전 난관 절제술의 필요성과 다른 치료 방법에 대해 원고 A에게 충분히 설명하여 동의를 구했어야 하는 설명의무를 위반한 것인지 여부입니다. 셋째, 만약 피고들이 주의의무 또는 설명의무를 위반했다면, 그것이 원고 A의 영구 불임 상태와 법률적 인과관계가 인정되는지 여부입니다.
법원은 원고들의 피고들에 대한 청구를 모두 기각하고, 소송 비용은 원고들이 부담하도록 판결했습니다.
법원은 피고 D의 의료 행위가 주의의무를 위반하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좌측 자궁각 임신은 파열 시 대량 출혈 위험이 커 난관을 살리는 치료가 어려웠고, 원고 A의 간 기능 저하로 약물치료(메토트렉세이트, MTX)도 부적절했으며, 설령 개복 수술로 자궁각 부분 절제술을 시행했더라도 난관 손상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또한 우측 난관 절제술 역시 자연임신이 불가능하고 추후 시험관 시술 시 자궁외 임신 위험성을 고려한 합리적인 조치였다고 판단했습니다. 설명의무 위반 주장에 대해서는 원고 A가 이미 우측 난관 기능이 상실되어 불임 상태였고, 좌측 자궁각 임신 치료가 필수적이었으며, 약물치료가 부적절하여 수술적 제거가 최선의 방법이었던 점 등을 고려할 때, 피고 병원의 설명의무 위반과 원고 A의 현 상태(불임)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나아가, 원고들이 난관 절제술에 대해 설명을 들었더라도 수술에 동의했을 것이 명백히 예상되는 '가정적 승낙에 의한 면책'이 허용될 여지도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이 사건은 의료인의 주의의무와 설명의무 위반 여부가 핵심 쟁점이었습니다.
1. 의료인의 주의의무: 의사는 의료행위를 할 때, 당시의 의료 수준과 의학적 지식에 기초하여 환자의 생명과 건강에 위험이 발생할 수 있음을 예견하고 이를 회피하기 위한 최선의 주의를 기울여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본 판례에서 법원은 피고 D 의사가 좌측 자궁각 임신을 치료하기 위해 난관 절제술을 시행한 것이 치료 원칙에 부합한다고 보았습니다. 자궁각 임신은 파열 시 대량 출혈의 위험이 매우 높아 고식적 치료로 개복 수술을 통한 자궁각 쐐기 절제술이 권고되지만, 이 역시 난관 손상을 피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또한, 원고 A의 기왕력(간 질환 치료)과 수술 당시 증가된 간 수치 때문에 간독성이 있는 약물 치료(메토트렉세이트, MTX)는 부적절한 선택이었음을 지적하며, 피고 D이 다른 치료 방법을 고려하지 않은 데 주의의무 위반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우측 난관 절제술 역시 자연임신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향후 시험관 시술 시 자궁외 임신 발생 가능성을 고려한 적절한 조치로 인정되었습니다.
2. 의료인의 설명의무: 의사는 환자에게 수술과 같은 침습적인 의료행위를 시행하기 전에, 질병의 상태, 치료 방법의 내용과 필요성, 예상되는 위험과 부작용, 예후, 그리고 다른 대체 치료 방법 등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여 환자가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여 동의할 수 있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설명의무 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되려면, 설명의무 위반이 환자에게 발생한 나쁜 결과와 인과관계가 인정되어야 합니다. 즉, 의료진이 충분히 설명했더라면 환자가 해당 의료행위에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인정될 때 비로소 인과관계가 성립합니다. 본 판례에서는 원고 A가 이미 우측 난관 기능이 상실되어 임신이 어려운 상태였고, 좌측 자궁각 임신의 치료가 필수적이었으며, 약물치료가 부적절하여 수술적 제거가 최선의 방법이었던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피고 병원의 설명의무 위반과 원고 A의 불임 상태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더불어, 환자가 설명을 들었더라도 어차피 해당 의료 행위에 동의했을 것이 명백히 예상되는 경우(이른바 '가정적 승낙')에는 설명의무 위반으로 인한 책임이 면책될 수 있다는 법리도 언급되었습니다.
3. 손해배상 책임(민법 제750조): 의료인의 주의의무 또는 설명의무 위반이라는 불법행위로 인해 환자에게 손해가 발생한 경우, 의료인은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됩니다. 이 손해에는 재산적 손해(일실수입 등)와 정신적 손해(위자료)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 사건에서는 의료인의 의무 위반이 인정되지 않아 손해배상 책임 역시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의료 시술이나 수술을 앞둔 경우, 환자 본인의 건강 상태와 과거 병력을 의료진에게 정확하고 상세하게 알리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기존 질환이나 간 기능 상태와 같은 정보는 치료 방법 선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난관 절제와 같이 영구적인 영향을 미치는 시술의 경우, 의료진은 환자에게 해당 시술의 필요성, 예상되는 위험과 효과, 그리고 다른 대체 가능한 치료 방법 등에 대해 충분히 설명해야 합니다. 환자는 설명을 바탕으로 자신의 선택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신중하게 고려하고 동의해야 합니다. 자궁각 임신처럼 파열 시 대량 출혈의 위험이 높은 질환의 경우, 의료진의 판단에 따라 치료 방법이 제한적일 수 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때는 환자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 무엇인지 의료진과 충분히 논의해야 합니다. 의료 분쟁이 발생했을 때에는 의료 행위의 적절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환자의 기존 상태, 당시의 의학적 수준, 대체 치료법의 유효성, 그리고 불가피한 상황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됩니다. 설명의무 위반이 주장되는 경우, 의료진이 충분한 설명을 제공했는지 여부 외에도, 만약 충분한 설명이 있었더라도 환자가 동일한 의료 행위에 동의했을 것이라고 예상되는지(이른바 '가정적 승낙') 여부도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