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종로구의 세운상가 일대 재개발 사업은 도시 재생과 문화유산 보호 사이의 대표적 갈등 사례입니다. 1970년대 전자산업 중심지였던 이곳은 40여 년이 지난 후 노후화와 빈곤 문제를 안게 되었고, 도시재생 차원에서 고층 빌딩 신축과 공원 조성을 결합한 재개발 계획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지역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종묘에서 불과 170m 떨어져 있어 개발로 인해 전통 경관과 문화유산 가치 훼손 우려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서울시 오세훈 시장은 고층 빌딩 건축이 공원 조성 및 주민 이주비용 충당에 필수적이라는 점과 지역 낙후 방지를 위한 도시 재생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반면 국가유산청과 고고학계는 종묘 인근의 ‘고요한 공간 질서’를 파괴하고 종묘의 360도 전경 보존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며 극렬히 반대합니다. 특히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당시 정부가 고층 건물 인허가 금지를 약속한 점을 들어 서울시가 ‘세계유산영향평가’를 거치지 않은 절차적 문제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법적으로는 세운 4구역이 문화유산 보호법상의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 반경 100m에 포함되지 않아 높이 제한 완화가 가능한 점이 서울시의 강점입니다. 국가유산청이 제기한 조례 개정 및 개발 허가 취소 행정소송에서 대법원은 서울시 손을 들어줬습니다. 다만, 소급입법 가능성 등 추가 법적 분쟁 여지가 존재하며 향후 다른 절차적 다툼도 예상됩니다.
종묘 북쪽 전경은 보호해야 한다는 데는 대체로 학계가 동의하지만 남쪽으로는 기존에 이미 여러 건물이 있어 고층 개발을 통해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모색하자는 입장도 있습니다. 프랑스 파리처럼 엄격한 도심 경관 통제가 선행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영국 런던처럼 고층 빌딩을 도입했으나 설계 변경까지 해가면서 세계유산 지위를 유지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독일 드레스덴 엘베 계곡처럼 주민 투표 결과 개발이 선택되어 세계유산 등재가 취소된 경우도 있으나, 이는 관광객 감소가 아닌 오히려 증가 현상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는 국가 이미지나 경제적 이익과 세계유산 등재 유지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이번 세운상가 고층 빌딩 개발 계획은 도시 재생과 문화유산 보호가 충돌하는 법적 그리고 정책적 복합 문제를 드러냅니다. 투자자 손실, 지역주민 피해, 도시 경관 보존, 문화재 가치 유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법률 문제를 포괄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