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파묘’하세요. 밀린 사용료도 내시고요.

분묘사용관계는 못 밝혀 ,결국 시효취득 요건 충족해야

요즘은 시신을 화장하거나 납골당에 모시는 경우가 흔합니다. 그러나 과거는 대부분 임야에 매장하고 묘를 세웠습니다. 공동묘지 등의 개념도 별로 없었고, 묘를 설치할 선산이 없다면 타인 임야에 조상의 시신을 매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허락을 받고 분묘를 세웠겠지만 계약서 등 근거 자료까지 남겨두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러다 시간이 흘러 개발 호재 등으로 토지를 매각할 때나 토지주가 바뀌면 그제야 분묘 이장을 청구하는 분쟁이 발생합니다. 물론 수십 년, 아니 수백 년 전에 분묘가 설치된 당시 사정을 밝히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이럴 때 분묘의 연고는 분묘기지권의 시효취득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분묘의 연고자는 20년 동안 분묘를 평온·공연하게 점유했다는 사실만 입증하면, 별도의 등기 없이 타인의 토지에 분묘를 사용할 수 있는 분묘기지권을 취득할 수 있습니다. 이를 취득하면 토지 소유자는 더 이상 연고자에게 조상 묘를 이장하라고 요구할 수 없습니다. 물론 평장이나 암장된 경우와 같이 외형적으로 확인할 수 없는 경우에는 시효취득이 인정되지 않습니다(대법원 1996. 6. 14. 선고 96다14036 판결).

하지만 계속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조선시대부터 좁아터진 땅에 좋다는 곳마다 그 많은 사람을 묻었을 것 아녀요?’라는 영화 ‘파묘’ 속 대사처럼, 한정된 공간에 분묘기지권을 계속 인정하다 보면 결국 임야에 대한 재산권행사를 할 수 없기 때문이죠.

장사법 개정으로 2021. 1. 14.부터 시효취득도 못해

2000년 전부 개정된 ‘장사 등에 관한 법률’(장사법)에 따라 2001년 1월 13일 이후에는 토지 소유자의 승낙 없이 설치한 분묘의 연고자는 더 이상 토지 소유자에게 토지 사용권이나 분묘의 보존을 위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장사법 제27조 제3항). 2001년 1월 14일부터는 타인의 토지에 설치된 묘에 대해 분묘기지권의 시효취득을 주장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타인의 토지에 동의 없이 함부로 분묘를 설치할 수 없게 된 겁니다.

그렇다면 2001년 1월 13일 이전에 설치된 분묘의 경우는 어떨까요. 2017년 대법원은 치열한 논의 끝에, 그 전에 설치된 분묘는 여전히 20년의 시효취득을 주장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대법원 2017. 1. 19. 선고 2013다17292 전원합의체 판결). 이는 분묘기지권의 시효취득이 오랜 기간 지속해온 관행 또는 관습으로 여전히 법적 규범으로 유지된다고 본 겁니다.

실제로 분묘기지권의 범위는 어떠할까요. 법에는 개인묘지는 30㎡를 초과하면 된다고 되어 있기는 합니다(장사 등에 관한 법률법 제18조). 하지만 분묘기지권은 분묘기지의 자체뿐만 아니라 분묘의 설치 목적인 분묘의 수호와 제사에 필요한 범위 내에서 분묘기지 주위의 공지를 포함한 지역까지 미칩니다. 여기서의 30㎡는 분묘의 기지면적만을 가리키며 분묘기지 외에 분묘의 수호와 제사에 필요한 분묘기지 주위의 공지까지 포함된 묘지면적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대법원 2021. 5. 27. 선고 2018다264420 판결). 일단 분묘기지권이 인정되면 분묘기지 자체30㎡(약 9평)과 주위 공지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시효취득이 인정되도 지료가 또 다시 논란

하지만 논란은 끝이 아닙니다. 분묘기지권의 취득 시효가 인정되면, 지료 즉 토지의 사용료를 내야 하는지, 또 낸다면 언제부터의 지료를 내야 하는지가 또 문젭니다. 물론 조상 묘를 모시기 위해 남의 땅을 이용했다면 당연히 토지의 사용료를 지불하는 게 맞을테지만, 실상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우선 분묘를 설치할 당시 무상으로 토지를 사용하기로 약정했다면 지료를 청구할 수 없습니다. 분묘기지권을 취득한 연고자(분묘기지권자)가 분묘를 무상으로 사용하기로 한 약정이 있었다는 점은 입증해야 합니다. 보통 타인의 토지를 사용하는 경우, 점유자는 차임이나 지료 등 토지 사용의 대가를 지급하기로 약정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를 증명할 자료를 남기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사례를 유상으로 간주해, 분묘기지권자에게 분묘를 설치할 때부터 소급하여 이후의 지료를 모두 지급하도록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 경우 분묘기지권자는 토지 소유자의 지료 결정 청구에 따라 설치 이후의 지료를 한 번에 지급해야 하고, 이를 상당한 기간 내에 지급하지 않으면 토지 소유자는 분묘기지권 자체의 소멸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다만, 토지 소유자가 법원에 지료 결정 청구를 하고 그 금액이 판결로 확정될 때까지는 분묘기지권자가 지료 지급을 지체했다고 볼 수 없으므로, 이 기간 동안 분묘기지권 소멸 청구를 할 수 없습니다(대법원 1994. 12. 2. 선고 93다52297 판결 참조). 지료 금액이 판결로 확정된 후에도 분묘기지권자가 상당한 기간(통상 2년 이상) 지료 지급을 지체해야만, 토지 소유자는 비로소 분묘기지권 소멸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대법원은 과거에 분묘기지권을 시효로 취득한 경우, 분묘기지권자의 지료 지급 의무가 분묘기지권이 성립됨과 동시에 발생한다고 보거나, 분묘기지권자가 지료를 지급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여 혼선을 빚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대법원은 이러한 혼선을 전원합의체 판결로 정리하고 다른 대법원 판례를 변경했습니다.

청구 안하면 못받아, 타인 분묘가 있으면 지료부터 청구해야

대법원은 4년간의 논의 끝에, '분묘를 평온·공연하게 점유하여 분묘기지권을 시효로 취득한 경우, 분묘기지권자는 토지 소유자가 토지 사용의 대가를 청구한 시점부터 지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대법원 2021. 4. 29 선고 2017다228007 전원합의체 판결). 이는 지료를 청구해야 비로소 지료를 받을 수 있고, 지료를 청구하지 않으면 지료를 받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판결은 2001년 1월 13일 이전에 설치된 분묘에만 적용됩니다. 그 이후에 설치된 분묘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시효취득이 완성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따라서 토지를 매수한다면 분묘 설치 여부와 설치 시점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분묘기지권의 시효취득이 완성되었다면, 하루라도 빨리 지료를 청구해야 유리합니다.

체크포인트

• 남의 땅에 함부로 분묘를 설치하면 ‘파묘’ 당할 수 있다.
• 2001년 1월 14일 이전에 설치된 분묘라면 분묘기지권의 시효취득이 인정될 수 있다. 분묘를 포함해 약 9평을 사용할 수 있다.
• 분묘기지권의 시효취득이 일정된다면 지료를 구하는 소송을 내어야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