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축/재개발
1979년에 완공된 둔촌주공아파트는 5층 규모에 용적률은 70%에 불과했습니다. 이후 2009년에 조합이 설립되고, 2015년 사업시행인가를 통해 용적률 270%를 확보하면서 '둔촌동 올림픽파크 프레온’이라는 세련된 이름으로 거듭났습니다. 기존 25평을 소유한 조합원은 그대로 기다리기만 하면 50평 신축 아파트를 받을 수 있는, 그야말로 대박 사업이었습니다. 내로라하는 대형 건설사들이 컨소시엄을 이뤄 시공자로 선정되었고,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 사업장’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며 언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2022년 4월 15일,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장의 공사는 전격 중단됐습니다. 시공사들은 예고한 대로 공사를 중단하고, 사업장 곳곳에 ‘유치권 행사 중’이라는 현수막을 붙였습니다. 현장 사무실, 모델하우스 등 현장 출입이 전면 통제되었고, 언론은 연일 공사 중단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도했습니다. 국내 대형 건설사 4곳으로 구성된 시공자들은 보도자료를 통해 더 이상 조합을 신뢰할 수 없기에 부득이 공사를 중단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건설사들은 무려 조 단위의 공사비를 투입하여 공정률 52%를 달성하고, 조합에게 막대한 운영비와 이주비를 대여하는 등 막대한 사업비를 지출했으며, 금융기관의 사업비 대출에 연대보증까지 했습니다. 그런데도 조합이 기존 합의에 따른 공사도급계약의 효력을 부인하며 시공자를 상대로 소송까지 제기하자 더 이상 공사를 진행할 수 없고 이에 부득이 유치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공사 중단에 따라 조합은 이미 금융권에서 2.1조 원을 대출받아 연이자만 800억 원을 납부해야 했고, 공사가 중단된 하루마다 2억 원의 이자를 추가로 부담해야 했습니다. 여기에 금융권에서 시공자의 공사 중단에 따른 기한이익 상실을 요구할 경우, 조합은 조 단위의 대출금을 즉시 상환해야 하며, 다른 금융기관에서 제시하는 고금리 대출이라도 받아야 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6,000여 명에 달하는 조합원들의 의견도 갈렸습니다. 일부 조합원은 건설사 대표의 자택과 건설사 사옥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더는 횡포를 견딜 수 없다며 시공자 교체 등의 강수를 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다른 조합원들은 이미 메이저 건설사들 다수가 시공자로 참여한 이 사업에서 다른 시공자로 교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공사비를 올려주더라도 조합이 협상을 통해 빨리 공사를 재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렇듯 시공는, 조합은 공사비 증액에 합의한 공사도급계약에 도장을 찍어놓고 이제 와서 다른 말을 바꾼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조합이 갑자기 공사비 증액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조합 측은 공사비 증액이 애초부터 부당했다고 억울함을 표시했습니다. 2010년에는 시공자들과 지분제로 공사를 진행했지만, 2016년 시공자 측 요구로 공사비가 평당 415만 원으로 인상해 주었음에도, 2019년에는 다시 평당 493만 원으로 증액을 요구받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조합의 전임 집행부가 2019년 공사비 증액당시에는 마치 공사비를 증액해 주어도 조합원의 분담금이 오르지 않을 것처럼 속이고 임시총회를 통해 공사비 증액을 결정했다는 점입니다. 원래 조합이 부담해야 할 이주비 대출 이자를 조합원 개인 부담으로 변경하고, 일반 분양가를 평당 2,748만 원에서 당시로서는 과도한 금액인 3,550만 원으로 산출했습니다.
조합은 한국감정원으로부터 공사비 검증을 받아 공사비를 변경하기로 했는데, 시공자와 전임 집행부가 일부 항목을 임의로 ‘검증 비대상 공사비’로 분류하여 검증 대상에서 제외했기 때문에 제대로 공사비 검증을 받지 않았으며, 그 검증에 따르면 시공자가 제시한 마감재 품질 또한 상당히 낮았다고 주장했습니다.
무엇보다 조합은 전임 집행부와 시공자가 한국감정원의 공사비 검증 보고서를 조합원 총회에 보고하는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2019년에 도입된 공사비 검증제도에 따라 공사비 증액 비율이 10% 이상인 경우(사업시행계획 이전에 시공자를 선정한 경우) 한국감정원의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도시정비법 제29조의2 제1항 제2호), 공사비 검증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공사비를 변경하는 총회를 졸속으로 개최하고, 변경된 검증 결과에 따라 수정된 내용을 바탕으로 변경 계약을 체결한 것은 위법이라는 겁니다.[1] 실제로 이후 한국감정원의 공사비 검증 결과에서도 아파트는 2,900억 원, 상가는 240억 원이 감액되어야 한다고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조합원을 분노케 한 계기는 따로 있었습니다. 전임 집행부는 평당 3,550만 원을 전제로 공사비를 증액해 주어도 조합원 분담금이 증가하지 않는다고 하여 ‘공사계약 변경의 건’ 안건을 의결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HUG(주택도시보증공사)는 일반 분양가를 평당 2,910만 원으로 고수했습니다. 2020년 7월이 지나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될 것이 예상되자, 전임 집행부는 HUG가 제시한 분양가를 기준으로 다시 변경하기 위해 임시총회 소집 공고를 냈습니다. 그러나 조합원의 반발이 거세져 안건이 부결될 것으로 확실시되자, 전임 조합장이 총회 직전에 시공자들과 만나 2020년 6월 공사도급계약 변경계약서에 임의로 날인했습니다. 이후 그는 해임총회가 발의되자 변경 계약서에 날인한 후 임시총회 소집을 취소하고 조합장직에서 사퇴했습니다.
조합원들은 전임 조합장과 현 조합장 사이의 긴밀한 유책관계를 의심했습니다. 공사도급계약을 변경할 경우 이사 전원이 연대보증인으로 날인해야 하지만, 변경 계약서에 날인할 이사가 없다는 사정을 알고 있었고, 실제로 연대보증인의 날인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변경 공사도급계약은 효력이 없다는 겁니다.
이렇게 촉발된 공사 중단은 무려 6개월간 이어졌습니다. 결국 2020년 11월, 서울시 중재하에 조합과 시공자는 합의를 했습니다. 언론에 따르면, 공사 지연으로 발생한 금융 이자와 크레인 유지비만 수천억 원에 달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반 분양가는 평당 3,840만 원으로 책정되었고, 모든 주택이 완판되면서 종전 집행부가 제시한 평당 3,550만 원은 허황된 금액이 아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공사중단으로 인한 손해는 5천 세대에 달하는 일반분양자들이 함께 분담하게 된 셈입니다.
[1] 도시정비법상 공사비 검증 요청 결과를 청취한 후에 총회결의를 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습니다. 따라서 검증 결과가 오기 전에 총회 결의를 하더라도 위법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