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차
임대차 기간은 통상 2년입니다. 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주택의 경우 1차례 갱신이 보장되어 4년의 기간이, 상가는 4차례 갱신이 보장되어 총 10년의 기간이 보장됩니다. 이는 임차인이 월세를 미납하거나 임대부동산을 파손, 임대인 동의 없이 전대하지 않는 잘못이 없을 경우에 그러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10년 보다 훨씬 장기로 임대할 필요성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주택의 경우, 공공주택 특별법에 따라 SH공사와 LH공사가 추진하는 ‘영구임대주택’은 기초생활수급자 등 최저소득 계층의 주거 안정을 위해 매월 약 3만 원에 최장 50년간까지 거주가 가능하고,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니라도 기준 이하의 소득과 자산 요건이 충족되면 ‘국민임대주택’을 임차해 30년 이상 장기로 거주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반면 상가의 경우는 주로 20년 이상의 장기 임대차는 대형 상업시설이나 산업단지에서 이루어지는데, 초기 건설비용이 크기 때문에 장기로 정한 안정적인 임대 기간을 확보해서 임대료를 선납받고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함입니다.
민법은 임대차 기간을 최대 20년으로 제한했습니다(민법 제651조 제1항). 민법이 처음 제정된 1958년부터 그러했습니다. 취지는 20년이 넘도록 너무 오랜 기간에 걸쳐 임차인에게 임차물의 이용을 맡겨 놓으면, 관리가 소홀해지고 개량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발생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인 손실을 방지하기 위함입니다(대법원 2003. 8. 22. 선고 2003다19961 판결). 그리고 강행규정이어서 임대인과 임차인이 30년으로 기간을 정하면 그중 20년을 초과하는 10년은 무효입니다.
하지만, 처음 이 규정이 제정되었을 경우는 주택이나 상가가 아닌, 토지의 임대차만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입니다. 아파트나 상가를 임차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고 대부분 나대지였던 상황입니다(1958년도에는 그랬을 겁니다). 그래서 당시의 석조 건물과 같이 견고하지 않은 초가집이나 판자집의 토지가 방치되지 못하도록 하는 20년의 한도를 정한 겁니다. 하지만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수십 년은 너끈히 쓸 수 있는 신축아파트가 즐비한 현재와는 상황에는 맞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헌법재판소는 2013년 임대차 존속 기간을 20년으로 제한한 민법 제651조 제1항을 위헌으로 결정했고, 국회 입법으로 민법에서 제651조를 삭제했습니다(헌법재판소 2013. 12. 26.자 2011헌바234 전원합의체 결정).
따라서 지금은 임대차 기간을 30년, 40년으로 하는 것도 당연히 허용됩니다(다만, 미성년자 등 처분 능력이 없거나 권한 없는 자의 임대차의 경우의 민법 제619조의 예외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임대차 부동산을 평생 쓸 수 있도록 하는 ‘영구임대차’도 허용될까요? 법에 영구임대차가 안된다는 규정이 없으니 불가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과거에 상가를 분양함에 있어서, 수분양자를 유치하기 위해서 수분양자들이 소유권을 취득세와 전매 시 부담하게 되는 양도소득세를 피하도록 임대분양을 하는 대신, 위 점포에 충분한 권리금이 형성될 때까지 임대차 기간을 보장하기로 해서 문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시행사 ‘영구임대’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했습니다. 이에 수분양자가 분양 당시의 조건과 실제 조건이 달라졌다면서 임대차 계약을 해지해 달라고 요구하였는데, 시행사가 거절하자 소송을 했습니다. 대법원은 시행사가 홍보한 ‘영구임대’의 취지는 임차인으로서는 언제라도 권리를 포기할 수 있는 ‘기한의 정함이 없는 임대차’로 봐야 하고, 그 경우 임차인은 언제든지 해지를 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대법원 2001. 6. 29. 선고 99다64438 판결).
홍보 문구의 정도가 아니라 실제로 영구임대차 계약을 체결한 사안도 있습니다. 경북 안동에서는 A는 소유자인 B로부터 임대차 기간을 ‘2013. 2. 27.부터 영구’, 임대차보증금을 ‘존속기한 동안 총 600만 원’으로 정해 임야에 대한 임대차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하지만 B가 영구임대차라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며 효력을 부인하자, A는 B에게 무기한 ‘임대인의 동의 없이 양도 및 전대’가 가능한 임차권설정등기절차에 협조하라는 소송을 냈습니다.
하급심 법원은 ‘영구 임대차계약’는 있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채권인 임대차의 성질 상으로도 허용될 수 없고, 이를 인정하면 임대인은 사용·수익 권능을 영구적으로 포기하고 처분만 해야 하는 새로운 유형의 소유권을 창출하는 것이어서 허용될 수 없다는 겁니다. 물권법정주의(민법 제187조)에 반해 무효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계약자유의 원칙에 따라 영구임대차도 허용될 수 있다 했습니다. 임대차 기간이 영구인 임대차 계약을 인정할 실제의 필요성도 있고, 사정이 변경되면 차임증감청구권이나 계약 해지 등으로 당사자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할 수 있으니 무조건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경우도 아니라고 본 겁니다(대법원 2023. 6. 1.자 선고 2023다2090450 판결).
A는 해당 임야를 평생 사용할 수 있습니다. 임차인 A는 ‘기한의 정함이 없는 임대차’여서 언제든 해지할 수 있으나, 임대인인 B는 무기한의 기한을 보장할 의무가 있기에 해지할 수 없습니다(다만 A와 B는 이미 수년간 소송으로 감정이 악화된 상황일 겁니다. B로서는 어떤 구실을 대더라도 임대차를 해지하고 싶을 겁니다).
다만,’ 영구임대차계약’이라는 것은 매우 문언 그대로 계약서에 ‘영구 또는 무기한’이라는 표현이 있어야 비로소 인정됩니다. 경기도 하남에서 C의 토지에 건물을 증축한 D의 경우가 그러했습니다. D는 건축허가 신청을 위해 토지 사용 기간을 영구로 정한 C 명의의 ‘토지사용승낙서’를 시청에 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사용 기간이 영구로 적힌 ‘토지사용승낙서’를 교부한 것만으로는 영구로 정한 임대차 계약을 체결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습니다.
이 사건에서C는 D에게 임대차 기간이 끝났으니 건물을 철거하라고 요구하자 D는 건물을 신축하는 데 돈이 많이 들었으니 대지를 팔라고 요구하였으나 C가 거절했는데, 법원은 이 점을 주목했습니다, 임대 기간을 영구로 정하였다면 굳이 C가 이와 같이 토지 사용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들일 필요가 없다고 보아 영구임대차로 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토지를 확보하기 위한 D의 노력이 소송에서는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한 겁니다(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2020. 11. 13. 선고 2020가단208163 판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