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대차
2020년 임대차 3법 시행으로 전세 가격이 급등했습니다. 하지만 2021년부터 전세 가격이 급락하면서 다세대와 신축 빌라를 중심으로 임대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일이 늘어났습니다. 이로 인해 전세사기가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피해자는 사회초년생이나 아파트 전세가 폭등해 어쩔 수 없이 빌라로 옮긴 경우가 많아 안타까움을 더했습니다.
이러한 전세사기범은 무자본으로 수백에서 수천 채의 빌라를 보유합니다. 물론 취등록세 부담은 있지만, 자기 자본 없이 갭투자를 할 수 있어 수천 채도 보유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임차인의 보증금을 레버리지로 활용합니다.
이러한 무자본 갭투기는 전세보증금이 분양가보다 높아야 가능합니다. 아파트는 분양가가 공개되어 있어 전세가율(전세보증금/부동산 시세)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건축물분양법이 적용되지 않는 빌라는 분양가 공개 의무가 없고, 분양업자가 분양가를 마음대로 정할 수 있습니다. 입지나 옵션에 따라 보증금도 천차만별입니다. 내자재는 최소로 시공하고 외부 인테리어나 옵션만 그럴듯하게 꾸며 놓으면서 보증금을 수천만 원 높이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물론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임대인은 갭투자로 큰 수익을 얻습니다. 수백 건의 부동산이 오르면 엄청난 레버리지로 돈방석에 오를 수 있습니다. 투자의 속성상, 반대로 부동산 가격이 내리면 임대인이 그 손해를 온전히 부담해야 합니다. 하지만 임대인은 부동산 가격이 떨어져도 보증금을 낮추지 않습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돌려줄 수 돈이 없기에 시세대로 낮출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피해는 결국 임차인에게 전가됩니다. 투자가 아닌 범죄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새로운 세입자가 구해지지 않으면, 임대차기간이 끝나도 임차인은 이사가기 어렵습니다. 물론 임차권등기명령을 통해 전입신고와 확정일자의 효력을 유지하고 월세로 이사 갈 수는 있으나, 그 경우 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월세를 다달이 부담해야 합니다. 집주인에게 급매로 내놓으라고 항의해도 소용없습니다.
부동산에 내놓는 가격까지는 임대인에게 강요할 수 없습니다. 결국 임대인이 '해 봤는데 잘 안된다. 부동산 경기가 나빠 어쩔 수 없다'라고 하면, 결국 임차인은 보증금을 회수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임차인은 전세사기를 당했다고 분통을 터뜨릴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임차인이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가입 요건이 까다롭고 백여만 원의 수수료 부담은 임차인에게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닙니다.
전세사기범인 A는 인천에서 공인중개사를 운영했습니다. 그는 보증금을 받아 ‘리베이트’로 바지사장, 분양대행업자, 공인중개사 등에게 분배하고, 남은 금액을 건축주에게 분양금으로 지급한 뒤 빌라 등의 소유권을 바지사장 앞으로 이전하는 일명 ‘동시진행’ 수법의 거래를 몇 차례 취급했고, 리베이트로 많은 수수료를 두둑히 챙겼습니다.
그는 동시진행 수법의 전세사기 범행을 조직적, 반복적으로 취급하기로 마음먹고 장소로 부천과 인천, 그리고 서울 구로동에도 거점을 마련했습니다. A는 총책으로, 팀장과 그에 소속된 다수의 중개사를 통해 구체적으로 전세사기 범행을 실행할 범죄집단을 구성했습니다. 서울 강서구 다세대 빌라에 대해 보증금 2.6억 원, 2년의 계약으로 총 99명으로부터 205억 원에 달하는 임대차보증금을 교부받았습니다. A는 직원들의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천하제일 실적대회’라는 실적대회까지 개최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해당 빌라의 취득가액은 건당 2.35억 원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결국 A와 일당들은 사기 외에도 범죄단체가입, 조직, 활동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범죄단체조직은 조폭에게나 적용되는 범죄인데, A에게도 적용된 겁니다. 결국 A는 징역 10년, 팀장 B와 바지사장 C는 각각 징역 7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실질적인 총책은 A였으나 계약서상 상대방은 C였습니다. C는 건당 50만 원의 수수료를 받기로 하고 총 120건의 빌라 소유주가 됐습니다. 6,000만 원을 받고, 7년의 징역형을 받게 된 겁니다.
‘빌라왕’은 한두 명이 아니었습니다. 빌라촌이 형성된 곳마다 지역의 빌라왕, 건축왕이 나왔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수백 건에서 수천 건의 빌라를 소유했고, 일부는 방송까지 출연했습니다. 문제는 이들이 바지사장에 불과했고, 실질적인 소유주는 따로 있었다는 점입니다. 바지사장인 빌라왕에 대한 수사와 여론의 압박이 거세지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임대인이 사망하면 임차인은 상속인을 상대로 소송을 해야 하는데, 이 역시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몇 명 악질 전세사기 범행에 대한 형사처벌과는 별도로 실질적으로 임차인의 보증금이 회수되는 것은 별개의 일입니다.
결국 정부는 전세사기피해자법을 만들어 2024년 11월부터 시행했습니다. 일정한 절차를 거쳐 전세사기피해자로 인정되면, 당장 진행하는 경매를 유예·정지하거나 임차인들이 경매에서 우선매수하거나 LH에도 우선매수하도록 요청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되려면 임대인이 임차보증금반환채무를 이행하지 아니할 의도가 있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그 기준이 영 불분명합니다. 어쨌든 정부도 최대한 노력해 2024년 12월까지 인정된 전세사기피해자를 2만 5,000여 명으로 인정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특별법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임차인들의 전세보증금의 온전한 회수로 이어질지는 의문입니다. 임차인이 경매에서 우선매수하거나 LH가 매수하더라도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고스란히 돌려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전세사기로 피해를 입은 임차인은 당연히 2.5억 원에 보증금을 돌려받아야 하고, 부동산 감정을 통해 2억으로 시가가 정해졌습니다 치자. 설령 몇 번의 유찰을 거쳐 1억까지 최저매각가격이 내려가면 일견 상당히 싼 물건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낙찰을 받으면 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임대인의 지위가 승계됩니다(임차인은 거절할 수 있지만 거절할 이유가 없습니다). 즉 낙찰자는 임대인이 되고 결국 임차인에게 2.5억의 보증금을 돌려줘야 합니다. 그렇다면 실제로는 그 부동산을 1억이 아니라 보증금까지 합한 3.5억으로 사는 셈입니다. 즉, 공짜로 받아도 손해를 보는 물건입니다. 권리분석을 해 보면 절대로 낙찰받으면 안 되는 물건이고, 모르고 낙찰받았다면 자선사업을 했다고 자책해야 합니다.
임차인 스스로도 셀프낙찰받는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임대차보증금 2.5억을 돌려받지 못한 상황에서 또다시 1억을 마련해 낙찰을 받아야 하는 겁니다. LH라고 해서 무조건 비싸게 사야 할 것은 아니고 그 경우 형평의 문제가 붉어질 수 있습니다. 부동산시장이 다시 살아날 때까지는 해결은 요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