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동산 매매/소유권 · 계약금
부동산 매물을 보고 매수를 결정했다면, 일단 집주인 계좌로 가계약금을 쏴서 집을 잡아 둡니다. 그리고 며칠의 말미를 두고 최종 결정을 한 후 나머지 계약금을 치르고 잔금 일정을 정해 나머지 대금을 치르고, 등기를 넘겨받으면 거래가 종료됩니다.
하지만, 가계약금이 지급되더라도 잔금을 치를 때까지 아무리 짧아도 한두 달의 기간이 필요한데, 사람 마음이 한결같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예상치 못한 호재나 악재가 있거 시장이 급변해 가격이 급등, 급락할 경우가 그렇습니다. 그래도 일단 결정하였기에 웬만하면 그대로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과감하게 계약을 포기하는 게 더 이익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바뀌었다고 손바닥 뒤집듯 계약을 마음대로 물릴 수는 없습니다. 일단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으면 효력이 있습니다. 파기 사유가 없다면, 마음이 변했다는 이유로 계약을 물릴 수 없는 건 굳이 법조문을 들먹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상식입니다.
하지만, 법은 이에 대한 예외를 인정합니다. 즉, 계약금이 교부되면 당사자의 일방이 이행에 착수할 때까지 교부자는 포기하고, 수령자는 그 배액을 상환하여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있습니다(민법 제565조 제1항). 해제권 행사의 시기를 당사자 일방이 이행에 착수할 때로 제한한 것은, 당사자 일방이 이미 이행에 착수한 경우 필요한 비용을 지출하였을 가능성이 크며, 계약이 이행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단계에서 상대방이 계약을 해제함에 따라 입게 될 불측의 손해를 방지할 수 있습니다. 계약금을 포기하고 계약을 물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진행 정도에 따라 페널티 정도가 달라집니다.
가계약금만 지급되고 정식 계약이 체결되기 전이라면, 경우가 좀 복잡합니다. 계약을 하고 싶은 쪽에서는 가계약금도 계약금으로 몰취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계약을 물리는 쪽에서는 가계약금은 정식 계약금이 아니라고 맞설겁니다. 과거 가계약금도 계약금의 일부로 보는 취지의 판례가 있기는 했으나, 최근에는 대체로 그렇지 않습니다. [1]
가계약금은 매수인이 매도인에게 매매계약을 체결할 의사가 있음을 밝히며, 장차 계속될 매매계약 교섭의 기초로 교부한 일종의 ‘증거금’입니다. 매매계약 본계약이 체결되는 경우 그 매매대금 중 계약금 일부의 지급에 갈음하되, 본계약이 성립하지 않을 경우에는 반환되어야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즉, 계약금은 계약금이 아닌 증거금이라서 민법 제565조 제1항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가계약금이 계약금의 일부로 되려면 적어도 얼마로 살지 대한 구체적인 합의가 있어야 합니다. 매수인이 ‘일단 다른 데 보여주지 말고 가격 조정을 해보자’라는 취지로 가계약금을 보낸 거라면, 계약 금액이 합의된 적이 없고 계약금으로 볼 수 없다는 겁니다(대부분의 경우가 그러할 겁니다). 반면, 매수인이 매도인이 제시한 대로 수용하겠다는 취지로 일단 가계약금을 보낸 거라면, 그때는 계약금의 일부로 볼 수 있고, 계약을 물리려면 가계약금 몰취를 감수해야 합니다.
이후 정식 계약이 체결되고 계약금이 지급되었다면, 일방은 계약금을 포기하고 계약을 무를 수 있습니다. 계약금을 받은 매도인은 배액을 반환해야 하고, 매수인은 지급한 계약금 반환을 포기해야 합니다. 물론, 부동산 가격의 10% 정도를 계약금으로 거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10억으로 사기로 했다면 1억 원으로,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닙니다. 서로 좋게 해결해서 일부 양보하고 조율하여 합의하는 경우도 있으나, 한쪽이 버티면 어쩔 수 없이 10%를 고스란히 포기해야 합니다. 실제로 과다하다고 법원에 감액을 구하는 소송을 해도 해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계약금을 포기하고 계약을 물릴 수 있는 시기는 ‘일방이 이행에 착수할 때’까지입니다. 그 시기가 지나면 계약금을 포기해도 계약은 물릴 수 없고, 계약대로 이행해야 합니다. 만약 그대로 못하면 이에 상응한 손해배상의 의무를 지게 됩니다. 10% 외에도 잔금에 대한 법정 이율의 이자는 물론이고, 제때 다른 곳에 팔지 못한 손해까지 배상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언제가 ‘이행의 착수’일까요. ‘이행의 착수’는 객관적으로 외부에서 인식할 수 있는 정도로 채무 이행 행위의 일부를 하거나, 이행을 하기 위하여 필요한 전제 행위를 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단순히 이행 준비를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지만, 반드시 계약 내용에 들어맞는 이행의 제공에까지 이르러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판례의 입장입니다. 일반적인 것이 매매대금의 납부입니다. 예를 들어, 계약서에 적힌 중도금 지급일자에 중도금을 지급했다면, 매수인이 이제 계약의 이행에 착수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는 잔금(중도금을 정했다면 중도금)을 지급할 때까지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잔금을 일부라도 지급하기 전까지는 계약금을 포기하고 물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도금이나 잔금을 계약서에 적힌 일자보다 더 일찍 지급할 수도 있을까요. 일반적으로 몇 달의 기한의 이익을 주는 것은 매수인에게 잔금을 마련할 시간을 주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매수인이 정해진 기한을 포기하고 잔금을 일부 납부해도 매도인에게는 손해가 없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매수인이 부동산을 매수했는데, 예상치 못한 지역 개발이나 교통 호재가 나왔고 갑자기 호가가 몇 억씩 오르는 상황입니다. 매수인으로서는 매도인이 계약금 포기하고 계약을 물릴 수도 있어서 걱정될 겁니다. 그래서 정해진 잔금 일자보다 일찍 매도인 계좌로 잔금의 일부를 지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매도인도 때마침 고민하다가 결국 계약금을 물어주고 해지를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해지를 하려고 하니 매수인이 마음대로 돈을 보내 버렸다면 어떨까요.
2020년에 의정부의 한 아파트의 분양권을 약 4억 원에 B로부터 매수한 A의 경우가 그러했습니다. A는 계약 시 잔금만을 지급하기로 했는데, 호재가 있자 계약한 날로부터 6일 만에 B에게 2,000만 원을 잔금 중 일부로 지급했습니다. B는 아파트를 너무 싸게 팔아서 후회하다가 결국 계약을 해지하려고 했는데, A는 자신은 잔금의 일부를 이미 보냈으니 계약금 포기를 못한다고 버텼습니다.
제1심은 A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2심과 대법원은 달랐습니다. 알고 보니 계약서에는 ‘잔금일은 ○○건설 본사 일정 및 상호 협의 하에 앞당겨질 수 있다.’는 기재가 있었고, 대법원은 기한의 이익은 매도인인 B에게도 있어서, 매수인이 잔금 지급기일 전에 이행에 착수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았습니다.[2] 결국 B는 계약금을 돌려주고 아파트를 사수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B가 A와의 분쟁을 예상해서 특약을 삽입한 것으로 보이지 않지만 특약때문에 승소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특약이 없는 일반적인 경우라면 이행의 착수할 수 없고, 일찍 돈을 보내도 잔금일 전까지 계약금 포기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매도인으로서는 가급적, 이행기 전 이행 착수 금지 특약이나 해제권 유보 조항을 명시하는 것이 유리하고, 반대로 매수인 쪽에서는 매도인의 특약을 제시하면 거부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특히 부동산 시장이 급등할 때 더욱 그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