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
피고인 A가 대출을 받으려다가 성명불상자의 요구에 따라 유령법인을 세우고 그 명의로 개설한 계좌의 통장, 체크카드, OPT 카드 등 전자금융거래 접근매체를 총 6차례에 걸쳐 전달한 혐의로 기소되어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사건입니다. 법원은 피고인이 접근매체가 범죄에 이용될 수 있음을 미필적으로나마 용인했다고 판단했습니다.
피고인 A는 2018년 초 대출전단지에 기재된 연락처로 전화를 걸어 대출 상담을 받았습니다. 성명불상자는 A에게 3천만 원 대출이 가능하나, 이를 위해서는 사업자를 내고 입출금 내역을 만들어야 한다며 신분증과 인감도장을 보내주면 사업자를 설립해 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A는 이를 승낙하여 성명불상자가 A를 대표자로 하는 유령법인 E 유한회사를 설립하게 했습니다. 이후 A는 2018년 2월 18일부터 2018년 9월 19일경까지 총 6회에 걸쳐 E 유한회사 명의의 법인계좌를 개설하고 그 통장, 체크카드, OPT 카드를 봉투에 담아 퀵서비스 기사를 통해 성명불상자에게 전달했습니다. 피고인은 대출 이자 인출 및 관리라는 제한된 용도를 주장했으나, 실제 대출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대출을 받기 위해 타인에게 전자금융거래 접근매체를 제공한 행위가 전자금융거래법상 '접근매체 양도'에 해당하는지 여부, 그리고 접근매체가 다른 금융거래에 사용될 수 있음을 미필적으로 용인했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입니다.
피고인 A에게 징역 1년에 처하고, 이 형의 집행을 2년간 유예했습니다. 또한 보호관찰을 받을 것과 24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했습니다.
법원은 피고인 A가 대출을 약속받는 과정에서 접근매체를 제공했으나, 대출 주체나 조건에 대한 확인 없이 반복적으로 접근매체를 제공하고 그 사용을 제한하기 위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습니다. 피고인이 약 34세의 사회생활 경험이 충분한 남성임에도 약 7개월간 6회에 걸쳐 실제 대출 없이 접근매체를 계속 전달한 행태를 보아, 접근매체가 범죄에 이용될 수 있음을 충분히 인식하고 미필적으로나마 이를 용인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접근매체 사용 위임이 아닌 전자금융거래법에서 금지하는 '접근매체의 양도'에 해당한다고 보아 피고인과 변호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은 전자금융거래법상 '접근매체 양도' 행위에 대한 처벌 및 그 판단 기준을 명확히 한 사례입니다.
1. 구 전자금융거래법(2020. 5. 19. 법률 제17297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6조 제3항 제1호 및 제49조 제4항 제1호: 이 법 조항은 누구든지 접근매체를 양도하거나 양수하는 행위를 금지하며, 이를 위반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접근매체는 전자식 카드, 통장, 비밀번호 등 전자금융거래에 사용되는 모든 수단을 말합니다. 피고인 A는 대출을 받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여러 정황상 A가 접근매체가 다른 사람의 전자금융거래에 이용될 수 있음을 인식하고 용인한 것으로 보아 양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2. 형법 제37조 (경합범): 피고인이 총 6회에 걸쳐 접근매체를 양도한 행위는 각각의 범죄가 독립적으로 성립하지만, 하나의 판결로 처리되는 경합범 관계에 놓입니다. 형법 제37조 전단은 이와 같이 판결이 확정되지 아니한 수개의 죄를 동시에 판결할 때 적용되어, 제38조에 따라 가중 처벌될 수 있습니다.
3. 형법 제62조 제1항 (집행유예) 및 제62조의2 (보호관찰 등): 법원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형을 선고할 경우, 일정한 요건(정상에 참작할 만한 사유)이 있을 때 형의 집행을 유예할 수 있습니다. 피고인이 초범이고 범행 경위 등을 참작하여 징역 1년에 대한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되었으며, 이때 보호관찰 및 사회봉사 명령도 함께 부과할 수 있습니다.
4. 접근매체 양도 판단 기준 (대법원 2012. 5. 24. 선고 2011도12789 판결 참조 법리): 전자금융거래법은 거래의 안전성과 신뢰성 확보를 중요한 입법 목적으로 합니다. 법원은 접근매체를 교부하게 된 동기 및 경위, 교부 상대방과의 관계, 교부한 접근매체의 개수, 교부 이후의 행태나 정황, 교부의 동기가 된 대출에 관하여 그 주체, 금액, 이자율 및 대출금의 수령방식 등에 관한 합의가 있었는지 여부 등 관련 사정을 객관적으로 판단하여 접근매체 교부가 단순한 일시 사용 위임에 불과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임의로 전자금융거래를 할 수 있도록 미필적으로라도 용인한 '양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구체적 사건에 따라 개별적으로 판단합니다. 이 사건에서 피고인이 대출 약정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계좌 사용 제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며, 실제 대출이 없는데도 반복적으로 접근매체를 제공한 점 등이 '양도'로 판단된 중요한 근거가 되었습니다.
대출을 받기 위한 목적으로라도 타인에게 본인 명의의 통장, 체크카드, 비밀번호 등 전자금융거래 접근매체를 넘겨주는 행위는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에 해당하여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특히 대출 조건이 불분명하거나 대출 주체의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접근매체 제공을 요구한다면 보이스피싱, 대포통장 개설 등 금융범죄와 연루될 가능성이 매우 높으므로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법원에서는 접근매체 제공의 동기, 경위, 상대방과의 관계, 제공한 매체의 수, 이후의 행동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단순한 사용 위임인지 '양도'인지를 결정합니다. 본인 계좌의 관리 소홀 또한 양도 의도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설령 본인이 직접 범죄에 가담할 의도가 없었다 하더라도, 접근매체가 범죄에 사용될 수 있음을 '미필적으로 용인'했다고 판단되면 처벌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단순히 계좌 입출금 내역을 만들기 위해서나 대출 관리 목적이라고 하더라도, 타인이 본인 계좌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것은 접근매체 양도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