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배상 · 의료
명치 끝까지 조이는 상복부 통증으로 처음 O대학교 Q병원을 방문한 망인 L은 소화기계 질환으로 진단받고 퇴원했으나, 증상이 악화되어 P대학교 R병원으로 다시 이송되었습니다. R병원에서는 대동맥박리증 진단 후 상급병원으로의 전원을 시도했으나 불가능하여 망인 L은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망인의 배우자와 자녀들은 Q병원과 R병원의 의료진이 진료 과정에서 과실을 저질러 망인이 사망에 이르렀다며, 피고 병원들을 상대로 총 3억 5천만원 상당의 손해배상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피고 병원들에게 의료상의 과실이나 설명의무 위반이 없다고 판단하여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습니다.
망인 L은 2022년 2월 15일 15:00경 명치 끝까지 조이는 상복부 통증으로 119 구급차를 통해 피고 Q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Q병원 의료진은 망인의 고혈압, 뇌출혈 과거력을 고려하여 뇌 CT 검사를 시행했으나 특이사항이 없어, 복통이 '결리는 느낌'이고 구토, 설사가 없는 점을 토대로 소화불량, 역류식도염 등으로 진단하고 소화제를 처방했습니다. 증상이 호전되자 망인은 퇴원 조치되었고, Q병원은 응급의학과가 없는 '응급의료시설 운영 의료기관'이었습니다. 같은 날 23:39경 망인은 다시 복통을 느껴 2022년 2월 16일 00:20경 피고 R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R병원 의료진은 01:36경 비조영 복부 CT 촬영을 통해 망인에게 DeBakey 제1형 대동맥박리증과 심낭삼출을 추정 진단했습니다. 이후 02:41경 전원을 결정하고 T, U, V, W, X병원 및 중앙응급의료센터에 연락했으나 전원이 불가하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03:12경 조영제 CT로 대동맥 전장에 걸친 대동맥박리증과 심낭삼출이 확인되었고, 03:28경 심정지 발생 후 CPR 및 심낭천자술을 시행했으나 04:02경 망인 L은 사망했습니다. 이에 망인의 유족들은 Q병원과 R병원의 의료진이 진료상 주의의무와 설명의무를 위반하여 망인이 사망에 이르렀다고 주장하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원고들은 피고 Q병원에 대해 응급진료 불이행, 대동맥박리증 미진단, 요양방법 지도의무 불이행, 설명의무 위반 등의 과실이 있다고 주장했으며, 피고 R병원에 대해서는 조영제 CT 촬영 및 응급수술 지체, 전원 미완료, 설명의무 위반 등의 과실이 있다고 주장하며 손해배상책임을 물었습니다.
법원은 피고 Q병원의 경우 '응급의료기관'이 아닌 '응급의료시설을 운영하는 의료기관'이었고, 망인의 초기 증상이 전형적인 대동맥박리증 통증과 다르며 기존 질환을 고려한 진단 및 처치가 적절했다고 판단하여, 응급진료 불이행, 진단 과실, 요양방법 지도의무 및 설명의무 위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피고 R병원의 경우 망인의 통증 정도가 처음에는 심하지 않았고, 복부 CT 촬영 후 대동맥박리증을 진단했으며, 응급수술이 불가능하여 여러 상급병원으로 전원을 시도했으나 실패한 점, 그리고 전원 실패와 망인의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점 등을 들어 의료진의 과실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원고들의 모든 청구는 이유 없다고 판단되어 기각되었습니다.
의료행위는 사람의 생명·신체·건강을 관리하는 업무의 특성상, 의료진은 환자의 구체적인 증상이나 상황에 따라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최선의 조치를 취해야 하는 '주의의무'를 부담합니다. 이 주의의무는 의료행위 당시 임상의학 분야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의료행위의 수준을 기준으로 판단됩니다. 그러나 이는 환자의 치유라는 결과를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결과채무'가 아니라, 치유를 위한 노력을 다하는 '수단채무'이므로, 진료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다고 해서 바로 의료과실로 추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대법원 2008. 3. 27. 선고 2007다76290 판결 등). 진단 과정에서 과실이 있었는지 판단할 때는 완전무결한 진단이 불가능하더라도, 의사가 전문 직업인으로서의 의료 윤리, 의학 지식 및 경험을 토대로 신중히 진찰하고 정확히 진단하려는 최선의 주의의무를 다했는지 여부를 고려합니다 (대법원 2018. 11. 15. 선고 2016다244491 판결 등). 의사는 수술 등 의료행위 결과로 후유 질환 발생 가능성이 있거나 그 후 요양 과정에서 중대한 결과가 초래될 가능성이 있는 경우, 환자 스스로 판단하고 대처할 수 있도록 요양 방법, 후유 질환 증상, 대처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지도할 의무가 있습니다 (대법원 2005. 4. 29. 선고 2004다64067 판결 참조). 그러나 본 사건에서는 피고 Q병원이 대동맥박리증을 진단하지 못한 것에 과실이 없다고 보아 요양방법 지도의무 위반도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의사의 '설명의무'는 주로 수술 등 신체에 침습을 가하는 의료행위나 사망 등 중대한 결과 발생이 예측되는 의료행위와 같이, 환자에게 자기결정권 행사가 요구되는 경우에 그 중요성이 인정됩니다 (대법원 2010. 5. 27. 선고 2007다25971 판결 등 참조). 환자에게 적절한 치료가 어려운 경우 신속히 전문 치료가 가능한 다른 병원으로 전원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습니다 (대법원 2006. 12. 21. 선고 2006다41327 판결 등 참조). 본 사건에서는 피고 R병원이 전원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음에도 불가능했던 점이 고려되어 전원 조치 의무 위반이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제23조 제2항'은 응급의료시설을 운영하는 의료기관에 대한 규정을 담고 있으며, 피고 Q병원이 응급의학과가 없는 '응급의료시설 운영 의료기관'으로서 응급의료기관과 동일한 수준의 진료 의무를 요구하기 어렵다는 판단의 근거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응급 상황 발생 시 방문하는 의료기관이 '응급의료기관'으로 지정된 곳인지, 혹은 '응급의료시설을 운영하는 의료기관'인지에 따라 의료기관이 제공할 수 있는 응급진료의 전문성과 범위가 다를 수 있음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환자가 호소하는 통증의 위치나 강도, 양상(예: '찢어지는 듯한 극심한 통증' vs '결리는 느낌')이 중요한 진단 근거가 될 수 있으므로, 의료진에게 자신의 증상을 최대한 정확하고 상세하게 설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의료기관이 환자의 전원을 위해 여러 병원에 연락하는 등 성실한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전원이 이루어지지 못한 경우에는, 의료기관의 전원 조치 관련 과실이 인정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의료진의 설명의무는 주로 수술 등 환자의 신체에 침습을 가하는 의료행위나 중대한 결과가 예측되는 경우에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해 발생하므로, 진단 과정 중 발생한 결과에 대해서는 설명의무 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이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