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정
정부가 울산 울주군에 핵발전소 8기 건설 계획을 발표하고, 이후 4기의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위한 전원개발사업예정구역을 지정 고시하자, 울주군 주민들은 이 문제가 주민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항으로 보고 지방자치법 제13조의2에 따라 주민투표를 통해 결정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주민투표의 대상, 발의자, 발의요건 등 구체적인 절차를 정하는 별도의 법률이 제정되지 않아 주민투표 실시가 불가능했습니다. 이에 주민들은 이러한 입법부작위가 자신들의 주민투표권, 참정권, 주민자치권, 환경권,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습니다.
정부의 핵발전소 건설 계획에 반대하는 울산 울주군 주민들이 해당 사안에 대해 지방자치법에 명시된 주민투표를 통해 자신들의 의사를 직접 표명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주민투표의 구체적인 절차를 규정한 별도의 법률이 제정되지 않아 주민투표를 실시할 수 없게 되면서, 주민들은 이 입법 공백이 자신들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보아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한 상황입니다.
지방자치법 제13조의2 제2항에 따라 주민투표의 대상, 발의자, 발의요건, 기타 투표 절차 등에 관한 법률을 따로 제정하지 않은 입법부작위가 헌법에 위배되는지 여부입니다. 특히, 주민투표권이 헌법이 보장하는 참정권에 해당하는지, 그리고 국회에 주민투표 관련 법률을 제정할 헌법상 의무가 있는지 여부가 쟁점이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이 사건 심판청구를 모두 각하했습니다. 재판부는 주민투표 관련 법률의 제정 의무가 헌법상 의무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헌법은 지방자치단체의 자치권을 보장하지만, 주민투표제도와 같은 직접민주주의적 장치는 헌법이 직접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입법에 의해 채택될 수 있는 제도이며, 헌법에 주민투표에 대한 어떠한 규정도 두고 있지 않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주민투표권은 법률이 보장하는 참정권일 수는 있으나 헌법이 보장하는 참정권(선거권, 공무담임권, 국민투표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아, 헌법의 명시적인 입법 위임이나 헌법 해석상 새로운 입법 의무가 발생한 경우로 볼 수 없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결론적으로 헌법재판소는 국회가 주민투표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야 할 헌법상의 의무가 없으므로, 해당 입법부작위가 위헌임을 확인해 달라는 주민들의 헌법소원심판 청구는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하여 모두 각하했습니다.
이 사건과 관련된 주요 법령과 법리 해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방자치법 제13조의2 (주민투표): 이 조항은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주민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주요 결정사항 등에 대해 주민투표에 붙일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2항에서 주민투표의 대상, 발의자, 발의요건, 기타 투표 절차 등에 관하여는 '따로 법률로 정한다'고 명시하여 구체적인 법률 제정을 유보하고 있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이 조항을 주민투표 제도의 가능성을 열어둔 일반 법률 규정으로 보았을 뿐, 국회에 구체적인 절차법을 제정할 헌법상 의무를 부과하는 규정으로 해석하지 않았습니다.
헌법 제117조 (자치권), 제118조 (지방자치단체의 조직·운영): 이 헌법 조항들은 지방자치단체의 존재 보장, 자치 기능 보장, 자치 사무 보장 등 제도적 지방자치를 보장합니다. 헌법재판소는 이 조항들이 주로 선출된 자치단체의 장과 지방의회를 통한 대의제 또는 대표제 지방자치를 보장하는 것이며, 주민투표와 같은 직접민주주의적 장치의 도입을 헌법이 직접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헌법상 참정권 (제24조 선거권, 제25조 공무담임권, 제72조 국민투표권): 헌법재판소는 헌법이 보장하는 참정권은 국민의 공무원 선거권, 공무담임권 및 국가안위에 관한 국민투표권 등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지방자치법 제13조의2에 규정된 '주민투표권'은 이러한 헌법상 참정권과 성격이 다르며, 헌법이 직접 보장하는 참정권이 아니라 법률에 의해 인정되는 권리라고 보았습니다.
진정입법부작위 (True Legislative Omission)에 대한 헌법소원 요건: 헌법재판소의 확립된 판례에 따르면, 진정입법부작위에 대한 헌법소원은 헌법이 기본권 보장을 위해 법령에 명시적으로 입법 위임을 했음에도 입법자가 이를 이행하지 않았거나, 헌법 해석상 특정인에게 구체적인 기본권이 생겨 이를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행위 의무 내지 보호 의무가 명백히 발생했음에도 입법자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경우에만 허용됩니다. 이 사건의 주민투표법 미제정은 이러한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다고 판단되었습니다.
이 판례는 헌법상 입법 의무가 있는 '진정입법부작위'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을 제시합니다. 유사한 문제 상황에서 주민들이 특정 사안에 대한 직접적인 의사결정(예: 주민투표)을 원할 때, 관련 법률이 없더라도 곧바로 헌법소원을 통해 해결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헌법이 직접 명시적으로 위임하거나, 헌법 해석상 명백히 발생한 입법 의무가 아니라면, 입법부작위가 위헌이라는 판단을 내리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지방자치 관련 사안에서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제도를 활용하고자 할 때에는 해당 제도가 헌법상 직접 보장되는 권리인지, 또는 관련 법률에 따른 구체적인 절차가 명확히 마련되어 있는지 여부를 우선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단순히 지방자치법에 제도의 근거가 있다는 것만으로는 국회에 구체적인 절차법을 제정할 헌법상 의무가 발생한다고 보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