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축/재개발 · 기타 형사사건
이 사건은 서울 지역의 도로 유지 보수 및 굴착 공사 입찰 과정에서 다수의 건설업체들이 담합하여 특정 업체가 낙찰받도록 한 후, 실제 공사는 지역 기반의 다른 업체가 수행하고 수수료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건설산업기본법을 위반한 사건입니다. 항소심에서는 피고인들의 행위가 명의대여에 해당하는지, 압수수색으로 확보된 증거의 적법성은 인정되는지, 그리고 원심의 형량이 과도한지 여부가 쟁점이 되었습니다. 법원은 대부분의 피고인에 대한 명의대여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으나, 입찰담합 혐의는 유죄로 인정하고 원심보다 감경된 벌금형을 선고했습니다. 또한, 압수수색 영장의 적법성에 대한 피고인들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서울 지역의 도로 유지 보수 및 굴착 공사는 사고, 재해, 민원 등으로 인해 신속한 공사가 필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에 따라 특정 지역의 지형과 특성을 잘 아는 12개 업체('관내업체')가 사실상 해당 지역 공사를 전담하는 관행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2001년부터 '나라장터'를 통한 제한적 최저가 입찰 제도가 도입되면서 입찰 참가 자격이 완화되었고, 한 건의 공사에 400500개 업체가 입찰하여 낙찰이 사실상 우연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잦아졌습니다. 이로 인해 관내업체들은 낙찰에 실패할 경우 심각한 경영난에 직면하게 되고, 다른 낙찰업체들은 해당 지역의 공사를 시공하기 어려운 문제점이 발생했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서울의 약 300여 개 건설업체들이 관내업체를 중심으로 8개의 담합군을 형성했습니다. 담합군에 속한 업체 중 하나가 낙찰되면 낙찰 업체는 공사 대금의 8%를 받는 조건으로 해당 공사를 관내업체에 맡기는 관행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습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2012년부터 2017년까지 총 611건의 공사에 대한 입찰 담합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사건의 주요 쟁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피고인들의 행위가 건설산업기본법상 ‘다른 사람에게 자기의 성명 또는 상호를 사용하여 건설공사를 수급 또는 시공하게 하는 행위(명의대여)’에 해당하는지 아니면 ‘불법 일괄 하도급’에 해당하는지 여부입니다. 둘째, 피고인 C, D 주식회사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적법하게 집행되었는지, 그리고 해당 영장으로 수집된 증거와 그에 기초한 2차 증거들의 증거능력이 인정될 수 있는지 여부입니다. 셋째, 원심에서 선고된 형량(벌금)이 너무 무거워서 부당한지 여부입니다.
원심판결을 모두 파기하고, 피고인들을 각 벌금 10,000,000원에 처합니다. 피고인 A, C, E, F, G, H, I, J, K, L, M, N, O, P, Q, R, S, T, U, V이 위 각 벌금을 납입하지 아니하는 경우 100,000원을 1일로 환산한 기간 위 피고인들을 노역장에 유치하고, 위 피고인들에 대하여 위 각 벌금에 상당한 금액의 가납을 명합니다. 피고인 C, D 주식회사, H, Z 주식회사를 제외한 나머지 피고인들에 대한 명의대여로 인한 건설산업기본법위반의 점은 각 무죄로 판결합니다.
법원은 피고인들의 행위가 '명의대여'가 아닌 '불법 일괄하도급'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건설산업기본법상 명의대여는 주로 무자격자가 공사를 수주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될 때 성립하며, 이 사건처럼 자격을 갖춘 업체들 사이에서 이루어지고 낙찰 업체가 실질적으로 관여할 의사를 가지고 있었다면 명의대여로 볼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다만, 피고인 C, D 주식회사, H, Z 주식회사에 대해서는 명의대여 혐의가 유죄로 인정되었습니다. 또한, 압수수색 증거의 위법성 주장에 대해서는 압수수색 영장의 범죄 혐의사실과 공소사실 사이에 객관적·인적 관련성이 인정되고, 사무실이 통합 운영되어 구별이 어려웠던 점 등을 고려할 때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여 피고인들의 주장을 기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원심의 형량이 건설업계의 환경과 제도상의 문제로 인한 측면을 고려할 때 너무 무겁다고 판단하여 벌금을 감경했습니다.
유사한 문제 상황에 처했을 때 다음 사항들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첫째, 건설산업기본법상 '명의대여'와 '불법 일괄 하도급'은 엄격히 구분됩니다. 무자격자에게 명의를 빌려주는 행위는 명의대여에 해당하지만, 자격을 갖춘 건설업자 간에 공사를 위임하고 원도급업체가 실질적인 관여 의사를 가졌다면 명의대여가 아닐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불법 일괄 하도급에 해당할 수 있으며 이는 명의대여와 다른 처벌을 받습니다. 둘째, 입찰 담합은 공정한 시장 경제를 해치는 중대한 범죄이며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라 엄격하게 처벌됩니다. 업계의 관행이라는 이유만으로 정당화될 수 없으므로 관련 규정을 철저히 준수해야 합니다. 셋째, 수사 과정에서 압수수색 영장의 범위와 증거능력에 대한 다툼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압수수색 영장에 명시되지 않은 관련 없는 증거는 원칙적으로 증거능력이 없지만, 영장에 기재된 혐의사실과 객관적, 인적 관련성이 있다면 해당 증거는 유죄의 증거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특히 여러 법인이 동일한 장소에서 통합 운영되는 경우 증거 수집의 불가피성이 인정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