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약금
한국무역보험공사(원고)는 이란으로 PVC SHEET를 수출했던 중소기업(소외 회사)이 이란 제재로 인해 물품대금을 받지 못하게 되자 보험 계약에 따라 수출대금에 해당하는 보험금을 지급했습니다. 이후 한국무역보험공사는 수출기업으로부터 물품대금 채권을 넘겨받아 이란 수입상에 대한 채권자가 되었습니다. 이란 수입상은 이란의 은행을 거쳐 피고 은행에 개설된 소외 회사 명의 계좌로 1억 5천만 원이 넘는 물품대금을 송금하려 했으나 피고 은행은 '제재 대상 은행 관련 자금'이라며 송금을 거부했습니다. 이에 한국무역보험공사는 피고 은행에 직접 물품대금 지급을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했으나 법원은 원고가 피고에게 직접 대금 지급을 청구할 권리가 없으며 채권자대위권 행사 주장을 통해서도 피고에게 직접 지급을 요구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주식회사 B는 2010년 3월 31일 이란 기업 C와 신용장 방식으로 PVC SHEET를 EUR 109,120에 수출하는 계약을 맺었습니다. 2010년 4월 12일 한국무역보험공사는 이 수출계약에 대한 단기수출보험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그러나 2010년 6월경 국제연합의 이란 제재로 인해 이란으로부터의 송금이 불가능해졌고 2010년 10월 11일 신용장 만기일에 물품대금 지급이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한국무역보험공사는 2010년 12월 16일 보험금청구권 양수인인 D은행에 EUR 109,120의 보험금을 지급했고 2010년 12월 21일 수출기업과 D은행으로부터 이란 수입상에 대한 물품대금 채권을 양도받았습니다. 이후 이란 제재로 인해 2010년 10월경부터 이란과의 무역 대금은 한국은행의 허가를 받아 피고 은행과 기업은행에 개설된 F은행 명의의 원화 계좌를 통해서만 결제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2014년 2월 17일경 이란 G은행은 C의 지시에 따라 피고 은행에 개설된 소외 회사 명의 계좌로 물품대금 상당의 158,642,649원을 송금하라는 지시를 내렸지만 피고 은행은 '제재 대상 은행 관련 자금이라 취급 불가'를 이유로 송금을 거부했습니다. 이에 한국무역보험공사는 피고 은행을 상대로 물품대금 158,642,649원과 지연이자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란 제재로 해외 송금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보험금을 지급하고 물품대금 채권을 양도받은 한국무역보험공사가 물품대금 상당액을 국내 은행에 직접 청구할 수 있는지 여부가 핵심 쟁점이었습니다. 특히 물품대금이 국내 은행의 계좌로 송금되려 했으나 은행의 거부로 실제 입금되지 않은 경우 채권자대위권이라는 법리를 통해 중간 단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 대금을 받을 수 있는지가 주요 쟁점이었습니다.
법원은 한국무역보험공사의 모든 청구를 기각하고 소송 비용은 원고가 부담하도록 판결했습니다.
이 판결은 한국무역보험공사가 이란 수입상에 대한 물품대금 채권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국내 은행이 특정 절차에 따라 자금을 입금하기 전에는 해당 은행에 직접 대금 지급을 요구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했습니다. 또한 채권자대위권을 행사하더라도 아직 입금 절차가 완료되지 않아 예금채권이 성립하지 않은 경우 이를 대위하여 직접 지급을 구할 수는 없다고 보아 채권자대위권의 한계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사건은 '채권자대위권'의 법리가 주요하게 다루어졌습니다. 채권자대위권은 채권자가 자기 채권을 보전하기 위해 채무자의 권리를 대신 행사하는 제도입니다. 하지만 이 사건에서는 원고가 수출기업(채무자)이 피고 은행에 대해 갖는 권리를 대위 행사하려 했으나 법원은 피고 은행이 수출기업에 대해 직접적인 지급 의무를 부담하지 않고 이란 은행에 대해 '수출기업 명의 계좌로 송금액을 입금할 의무'만을 부담한다고 보았습니다. 즉 아직 피고 은행이 수출기업 계좌로 입금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수출기업이 피고 은행에 대해 직접 예금채권을 갖지 않으므로 원고도 이를 대위 행사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는 채권자대위권 행사가 가능한 권리는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채권'이어야 한다는 원칙을 보여줍니다. 송금 지시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는 수취인에게 직접적인 예금 채권이 발생한다고 볼 수 없으며 예금 채권은 은행이 실제 예금을 수취인 계좌에 입금함으로써 성립한다는 점이 중요하게 작용했습니다. (대법원 2002. 1. 25. 선고 99다53902 판결 등 참조)
복잡한 국제 거래 특히 제재 대상 국가와의 거래에서는 송금 절차와 대금 결제 방식에 대한 철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거래 상대방이 대금을 송금하려 했다고 해서 곧바로 국내 계좌에 입금되거나 직접 대금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가 발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은행 간의 송금 과정은 여러 단계의 지시와 승인을 거치므로 각 단계에서 어떤 법적 권리가 발생하는지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특히 원화 계좌를 통한 결제 시스템과 같이 특정 국가와의 거래에 특화된 결제 방식의 경우 해당 시스템의 운영 방식과 각 당사자의 권리 및 의무를 명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단순히 송금 지시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는 예금 채권이 성립했다고 볼 수 없으므로 자금이 최종적으로 수취인 계좌에 입금되기 전까지는 해당 자금에 대한 직접적인 권리 행사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유사한 상황에 직면할 경우 자금의 흐름과 관련 은행의 역할 각 법적 주체의 권리 관계를 면밀히 분석하고 필요한 경우 여러 단계의 절차를 순차적으로 거쳐야 할 수도 있음을 인지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