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배상 · 의료
산모 C 씨가 J산부인과에서 유도분만 중 태아 A 군에게 탯줄이 탈출하는 응급상황이 발생하여 저산소성 뇌손상을 입게 된 사건입니다. 이에 A 군의 부모인 B, C 씨는 J산부인과를 공동으로 운영하는 의사들을 상대로 유도분만 전 초음파 미실시, 제대탈출 진단 및 응급처치 지연, 제왕절개수술 지연, 신생아 심폐소생술 및 기관삽관 과정의 과실, 그리고 설명의무 위반 등을 주장하며 약 6억 4천만 원 상당의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산부인과 의료진에게 원고들이 주장하는 의료상 과실이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습니다.
2018년 7월, 산모 C 씨는 J산부인과에서 임신을 진단받고 정기적인 산전진찰을 받아왔습니다. 임신 31주 4일경 양수지수는 18cm였고, 임신 34주 3일경 양수가 다소 많고 태아가 목에 탯줄을 2번 감고 있는 소견이 관찰되었으나, 임신 36주경에는 탯줄이 감겨있지 않았습니다. 다만 태아가 주수에 비해 크다는 이유로 유도분만을 결정했습니다.
2019년 2월 28일 오전 9시, C 씨는 유도분만을 위해 J산부인과에 입원했고, 오전 9시 30분부터 분만촉진제인 옥시토신을 투여하며 유도분만을 시작했습니다. 분만은 계속 진행되었고, 오후 8시 5분경 양막파수 후에 태아감시장치를 부착했을 때 태아의 심장박동수가 분당 90~160회로 확인되었습니다. 하지만 5분 뒤인 오후 8시 10분경 태아심장박동수가 분당 90회로 급격히 감소하자, 간호조무사는 옥시토신 투여를 중단하고 수액 및 산소 공급을 시행했습니다. 그리고 오후 8시 14분경 내진을 통해 탯줄이 손가락처럼 잡히는 '제대탈출'을 확인하고 즉시 담당의사에게 보고했습니다.
담당의사는 보고를 받자마자 분만실로 와 내진을 통해 제대탈출을 확인하고, 태아 머리를 밀어 올려 탯줄 압박을 해소하려 시도했습니다. 태아 심음이 잠시 회복되는 듯했으나 다시 감소하자, 오후 8시 21분경 응급 제왕절개수술을 결정하고 산모 배우자인 B 씨에게 동의를 받았습니다. 오후 8시 22분 수술실로 이동하여 오후 8시 30분경 아기 A 군을 분만했습니다.
A 군은 출생 직후 울음과 호흡, 반사반응이 없고 청색증을 보였으며 심장박동이 미약하여 아프가점수가 1점에 불과했습니다. 의료진은 즉시 응급심폐소생술(산소공급, 양압환기, 심장마사지)을 시행했고, 오후 8시 35분경 소아과 의사가 도착하여 기관삽관 등 심폐소생술을 이어받았습니다. A 군의 청색증은 약간 호전되고 심장박동수는 100회 이상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이후 오후 9시 13분경 119구급대에 의해 K병원으로 전원되었습니다.
K병원 도착 당시 A 군의 심장박동수는 다시 분당 100회 이하로 감소했고 자발 호흡이 없었으며 청색증이 심한 상태였습니다. K병원 의료진은 기관삽관을 재시행했고, 이후 산소포화도가 100%로 호전되었습니다. 그러나 A 군은 결국 '상세불명의 뇌성마비, 상세불명의 출산질식, 달리 분류되지 않은 무산소성 뇌손상' 진단을 받았고, 현재 사지마비, 경직성 뇌성마비, 보행/인지/언어 장애 등으로 노동능력상실률 100% 상태에서 지속적인 재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의 주요 쟁점은 크게 네 가지였습니다. 첫째, 유도분만 전 태아의 상태를 정확히 확인하기 위한 초음파 검사를 충분히 하지 않은 과실이 있었는지 여부입니다. 둘째, 분만 진행 중 탯줄이 태아보다 먼저 나오는 '제대탈출' 상황 발생 시, 진단을 늦게 했거나 응급처치 및 제왕절개수술을 지연한 과실이 있었는지 여부입니다. 이에는 간호조무사의 독자적인 의료행위로 진단이 지연되었다는 주장도 포함됩니다. 셋째, 신생아 A 군이 출생 직후 심각한 상태였을 때 실시된 심폐소생술 및 기관삽관 과정에서 의료진이 제대로 모니터링을 하지 않았거나 기관 튜브를 잘못 삽입하는 등의 과실이 있었는지 여부입니다. 넷째, 의료진이 산모 C 씨에게 유도분만의 위험성이나 제왕절개수술의 필요성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지 않아 산모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는지 여부입니다.
법원은 원고들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고 피고들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각 쟁점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유도분만 전 초음파 검사 미실시 과실 주장에 대해, 법원은 산모 C 씨가 의학적으로 '양수과다증' 상태였다고 인정하기 어렵고, 유도분만 전 초음파 검사가 태아 상태 확인에 도움이 되지만, 탯줄 위치는 유동적이어서 임상적 의미가 크지 않으며, 분만 전 제대탈출을 완벽하게 예상하거나 예방할 수 없으므로, 초음파 검사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제대탈출을 방지하지 못한 과실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둘째, 제대탈출 진단 및 제왕절개수술 지연 과실 주장에 대해, 법원은 태아 심박수 감소는 분만 과정에서 통상적인 현상이며, 양막파수 직후 제대탈출이 시작되었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간호조무사가 탯줄 탈출을 확인한 즉시 담당의사에게 보고하고, 담당의사가 곧바로 내진을 통해 제대탈출을 진단했으며, 이후 응급 제왕절개수술 결정을 내린 과정에서 진단이나 수술이 지연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특히, 간호조무사의 내진은 의사의 일반적인 지도·감독 하에 이루어진 진료보조 행위로, 무면허 의료행위로 볼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제대탈출 확인 후 의사가 태아 머리를 밀어 올리는 등의 조치를 취한 것은 적절했으며, 무엇보다 신속한 분만이 중요한 상황에서 다른 부가적인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과실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셋째, 신생아 응급처치 및 기관삽관 과실 주장에 대해, 법원은 신생아 A 군 출생 직후 의료진이 산소공급, 양압환기, 심장마사지 등 필요한 응급조치를 신속하고 적절하게 시행했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신생아 소생술의 성공 여부를 평가하는 가장 확실한 지표 중 하나는 심장박동수 증가인데, A 군의 심장박동수가 분당 100회 이상으로 호전된 것은 기관삽관이 성공적이었음을 의미한다고 판단했습니다. K병원에서 재삽관이 이루어졌다는 사실만으로 소외 병원 의료진의 기관삽관 실패나 부적절한 삽입을 단정할 수 없으며, 신생아 기관 튜브는 쉽게 위치가 변할 수 있어 반복적인 확인은 적절한 조치였다고 보았습니다.
넷째, 설명의무 위반 주장에 대해, 법원은 산모 C 씨가 양수과다증이었다는 증거가 부족하고, 제대탈출은 예측하기 어려운 응급상황이며, 양수과다증 자체가 제왕절개수술의 적응증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제대탈출 진단 전까지 유도분만이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었으므로, 질식분만이 산모나 태아에게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개연성이 있어 제왕절개수술이 필요했던 상황이 아니었으므로, 의료진에게 제왕절개수술에 대해 설명할 의무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법원은 원고들이 주장하는 의료상 과실이 있었다고 인정할 수 없으므로, 피고들에게 불법행위 또는 채무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이 없다고 판단하여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습니다. 모든 소송비용은 원고들이 부담하게 되었습니다.
이 판례는 의료과실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사건으로, 의료행위의 특수성과 관련된 법리와 의료법상 간호조무사의 업무 범위에 대한 법리를 적용했습니다.
1. 의사의 주의의무 및 재량권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의사는 사람의 생명, 신체, 건강을 관리하는 업무의 성질에 비추어 환자의 구체적인 증상이나 상황에 따라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최선의 조치'를 취해야 할 주의의무가 있습니다. 이때 '의료수준'은 의료행위 당시 임상의학 분야에서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고 시인되는 의학 상식을 기준으로 하며, 진료환경 및 의료행위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규범적인 수준으로 파악됩니다. 또한, 의사는 환자의 상황과 당시 의료수준, 자신의 지식과 경험에 따라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진료방법을 선택할 '상당한 범위의 재량'을 가집니다. 즉,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한, 진료 결과만을 놓고 과실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유도분만 전 초음파 검사를 하지 않은 것이나, 제대탈출 발생 시 태아 선진부를 밀어 올리는 조치 외에 다른 조치를 하지 않은 것 등을 의료진의 재량 범위 내에 있는 합리적인 판단으로 보아 주의의무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2. 간호조무사의 진료보조 행위 (의료법 제27조 관련) 의료법 제27조는 무면허 의료행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간호조무사는 의료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간호보조'와 '진료보조' 업무에 종사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진료보조'는 의사가 주체가 되어 진료행위를 할 때 그의 지시에 따라 '종속적인 지위'에서 돕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사건에서 원고들은 간호조무사가 의사의 지시 없이 내진을 시행하여 제대탈출 진단이 지연되었다고 주장하며 이를 무면허 의료행위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산부인과에서 간호조무사가 의사의 일반적인 지도·감독 하에 내진을 시행하는 것은 자궁경부 개대 정도 등을 측정하는 행위로서 특별한 의학적 지식이나 수기를 요하지 않으므로, 이를 무면허 의료행위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는 간호조무사의 내진이 분만 진행 상황 확인을 위한 진료보조 행위에 해당한다고 본 것입니다.
3. 설명의무 위반 의료기관은 환자에게 수술 등 침습적인 의료행위를 하거나 중대한 결과 발생이 예상되는 경우, 사전에 그 위험성, 필요성, 대체적인 방법 등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고 동의를 얻어야 할 설명의무를 가집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법원은 산모 C 씨가 의학적 양수과다증 상태였다는 증거가 부족하고, 제대탈출은 예측하기 어려운 응급상황이며, 유도분만 진행이 정상적이었으므로 질식분만이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의료진에게 제왕절개수술에 대해 사전에 설명할 의무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설명의무 위반 주장을 배척했습니다.
이 판례는 유도분만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의료상 쟁점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유사한 상황에 처했을 때 다음 사항들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산모 본인이 과거 병력이나 현재 임신 상태(예: 양수량, 태아 크기)에 대해 정확히 인지하고 의료진과 충분히 소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사건에서는 산모의 양수량이 '다소 많았던' 상태였으나, 의학적 양수과다증 기준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본인의 상태에 대한 의료진의 판단과 설명 내용을 정확히 기록해 두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둘째, 분만 중 태아의 상태 변화는 예측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으므로, 의료기관의 응급 시스템이 얼마나 잘 갖춰져 있는지, 응급상황 발생 시 의료진 간 협업이 신속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 등을 사전에 확인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 사건에서는 제대탈출 확인 후 보고 및 응급처치가 즉각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 고려되었습니다.
셋째, 신생아에게 위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시행되는 심폐소생술 등의 응급처치 과정에 대해 의료기관이 어떤 지침을 따르고 있는지, 관련 장비가 충분한지 등을 확인하는 것도 좋습니다. 이 판례에서는 신생아 소생술의 성공 지표와 기관삽관의 적절성에 대한 의학적 판단 기준이 중요하게 다루어졌습니다.
넷째, 의료기관이 분만 방법 선택(자연분만 또는 제왕절개)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제공했는지 여부도 중요한 쟁점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특정 위험 요인이 있을 경우 의료진이 어떤 설명을 했는지, 그리고 본인이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기록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다만, 이 판례에서는 유도분만 진행이 정상적이었으므로 제왕절개에 대한 설명의무가 없다고 판단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