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대차
2년의 전세계약이 끝나갈 무렵이면 임대인과 임차인은 기존 계약을 갱신할지 여부를 고민합니다. 출퇴근 시간이나 자녀 교육 문제가 걸려 있기에 임차인로서는 가급적 임대차를 연장하여 더 살기를 원합니다. 임대인도 새로 임차인을 들일 때 발생하는 각종 비용을 감안하면, 기존 임차인에게 큰 문제가 없다면 갱신에 동의하여 장기간 임대차계약을 유지하는 것이 좋을 때가 많습니다.
다만, 부동산 경기에 따라 전세가가 급변하면 임대인과 임차인의 셈법이 복잡해집니다. 전세가가 오르면 임대인은 비용이 더 들더라도 보증금을 높여 새로운 임차인을 들이길 원하지만, 임차인은 시세만큼 보증금을 마련하기 어려워 기존 조건을 유지하고 싶고 임대인에게 읍소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전세가가 내리면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남아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반대의 상황이 됩니다.
2020년경부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금리 인하와 유동성 공급으로 부동산 자산시장에 막대한 자금이 유입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서울 및 수도권을 중심으로 주택 가격이 상승하며 주택 구매 수요가 증가했고, 부동산 시장의 과열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제로금리에서 임대인은 기존의 전세를 월세로 전환했고, 전세 품귀현상으로 이어지면서 임차인의 주거 불안정이 심화되었습니다. 그래서 전세 기간이 끝나면 임대인들은 가급적 기존 임차인을 내보내고 보증금을 크게 높여 새로운 임차인을 구하려고 했습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국회는 2020년 7월경, 이른바 ‘임대차 3법’ 중의 하나로 임차인에게 갱신 요구권을 부여하는 내용을 신설하는 주택임대차보호법을 개정했습니다(주택임대차보호법 제36조의3 신설). 종전에는 임대차 관계에서 임대인은 임차인의 갱신 요구를 거절할 수 있었지만, 계약갱신청구권 도입 이후에는 임대인이 실제 거주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임차인의 계약갱신청구를 거절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갱신되면 임차인은 2년의 기간을 더 보장받게 되었으며, 보증금 인상도 5%로 제한되었습니다.
계약갱신청구권이 도입되자 ‘사유재산권의 침해’라는 임대인들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왔습니다. 임대인들은 선제대응 차원에서 향후 갱신까지 고려하여 임대차 보증금을 크게 올렸고, 전세가 폭등과 집값 상승을 부추겼습니다. 임차인들은 임대차 3법 시행으로 인한 부작용을 실감하며,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전세대출을 받아 높아진 전세보증금을 충당하거나 월세로 갈아타야 했습니다. 임차인들 중 일부는 주택 구입 대신 전세보증금을 마련하기 위해 ‘영끌’을 해야 했으며, 이럴 바에 집을 사겠다는 임차인도 늘어났습니다. 임차인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된 임대차 3법이 오히려 임차인들에게 더 큰 피해를 주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2022년 말부터 상황이 발전되었습니다. 미국의 급격한 금리 인상, 부동산 시장의 자금 경색, 그리고 전세 사기 등의 여파로 이번에는 전세가가 급락했습니다. 갑자기 급락한 전세가로 인해 임대인들이 임차인을 어렵게 모셔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심지어 임차인의 계약갱신청구권 행사로 갱신이 된 계약에서 2년의 기간이 확정적으로 보장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입법 초기에는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신설된 주택임대차보호법에서는 계약갱신청구권에 따라 갱신된 계약에서는 임차인이 언제든 계약 해지를 통보할 수 있으며, 통보 후 3개월이 지나면 효력이 발생한다는 규정이 존재했습니다(주택임대차보호법 제6조의3 제2항, 제6조의2).
즉, 임대인과 임차인이 임대차 기간 종료 6개월 전부터 2개월 전까지 갱신 여부를 통지하지 않으면 계약은 갱신된 것으로 봅니다. 이를 ‘묵시적 갱신’이라 합니다. 이 경우 임차인의 의사가 명확히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임차인에게 언제든 계약 해지를 통지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계약갱신청구권에서도 이 규정을 준용하도록 했고 상당한 논란이 되었습니다. 임차인이 소극적으로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은 경우(묵시적 갱신)와 적극적으로 갱신 요청을 한 경우를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이고, 임대인에게 지나치게 불리했습니다. 임차인에게 갱신만 되면 언제든지 임대차계약을 종료할 강력한 옵션(Option)을 부여한 셈입니다.
전세가가 하락하면 갱신된 임대차의 임차인은 계약을 해지하려 하고, 임대인은 3개월 안에 새로운 임차인을 구해 기존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반환해야 합니다. 새로 들인 임차인이 기존 보증금만큼 내지 않을 경우, 차액은 임대인이 부담하거나 임차인을 달래기 위해 월마다 시세 차이에 따른 이자, 이른바 ‘역월세’를 지급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전세계약 당시에 집중인이 제시한 전세금을 어쩔수 없이 수용한 임차인으로서는 상황이 급변하자 임대인에게 그동안의 설움을 되갚기라도 한듯 내용증명을 보내 3개월 내로 임대차 보증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알려지면서 갱신을 마친 임대인들도 안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전세가 하락 뉴스만 들어도 임차인이 계약을 해지할까 노심초사해야 했으며, 받아 놓은 전세금을 장기적으로 운영하기도 어려워졌습니다. 실제로 임차인이 계약갱신청구를 통해 2년의 거주가 보장되었음에도 마음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한 것이 과연 정당한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임대인 역시 임차인의 갱신권 행사로 보장받은 2년의 안정성을 누릴 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하급심 법원은 임대차 계약 갱신 시 새 임대차 계약서를 작성하고 2년의 기간을 정한 경우, 임차인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할 수 없다고 판결한 적도 있습니다. 물론 그 취지는 이해가 되나 주택임대차보호법의 명문 규정에 반하는 판단이었고, 결국 상급심에서 법원은 임차인의 손을 들어주어 정리되었습니다(서울고등법원 2024. 1. 19. 선고 2023나2016548 판결).
이렇듯 임대차 계약갱신청구권은 한편으로는 갱신된 계약의 안정성과 임대인의 재산 처분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정부도 연구용역까지 발주하면서 제도 개선 의지를 보이고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입법으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2024년 12월에는 임차인의 무제한 갱신을 인정하는 법안이 발의되었다가 논란 끝에 철회되기도 했습니다.
계약갱신청구권은 그대로 유지하되, 갱신 후 임차인이 마음대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한 주택임대차보호법 제6조의3 제4항만은 임대인에게 지나치게 불리합니다. 그렇다고 임차인에게도 반드시 좋은 것도 아닙니다. 임대인은 임차인이 갱신 후 일방적으로 해지할 위험까지 고려할 수밖에 없고, 결국 전세가를 자극하는 또 다른 요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