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해배상 · 의료
술에 취해 넘어져 머리를 다친 환자가 응급실에 후송되었으나, 의료진이 초기 진찰 과정에서 뇌출혈 가능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정밀 검사(뇌CT)를 지연하여 환자가 비가역적인 뇌손상을 입고 사망에 이른 사건입니다. 환자의 자녀들이 병원을 운영하는 법인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고, 법원은 응급조치 단계에서의 의료과실을 인정하면서도, 환자의 만취 상태 및 진료 비협조 등을 고려하여 병원의 책임을 15%로 제한했습니다.
2011년 10월 1일 밤, 술에 취한 망 송◇◇ 씨가 계단에서 넘어져 머리를 부딪히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119 구급대에 의해 인하대병원 응급실로 후송되었을 때, 망인은 술에 취한 상태였고 입술에 열상이 있었으며, 의식은 있었으나 기면상태였습니다. 피고병원 의료진은 망인의 음주로 인한 상태로 판단하고 치과 진료를 시도했으나 협조가 되지 않아 경과 관찰만 진행했습니다. 약 5시간 후인 다음날 새벽 5시 20분경, 망인의 좌측 동공이 확장되고 빛에 반응하지 않는 이상 징후가 나타나자 뒤늦게 뇌CT 촬영을 권유했고, 다발성 뇌출혈을 진단했습니다. 두 차례의 수술에도 불구하고 망인은 비가역적인 뇌손상으로 혼수상태에 빠져 결국 2012년 7월 14일 사망했습니다. 이에 망인의 자녀들은 병원 측의 진단 지연 및 치료상 과실로 인해 망인이 사망했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환자의 낙상과 머리 외상에도 불구하고 응급실 의료진이 뇌출혈 가능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적절한 진단 조치를 취했는지 여부, 만취 환자에 대한 의료진의 주의의무 범위, 수술 및 설명의무 위반 여부, 그리고 환자측의 과실이 손해배상액에 미치는 영향 등입니다.
피고는 원고 송○○에게 22,448,207원, 원고 송◎◎에게 19,527,403원 및 각 이에 대한 지연이자를 지급하고, 원고들의 나머지 청구는 기각되었습니다. 소송비용은 원고들이 85%, 피고가 15% 부담하는 것으로 결정되었습니다.
법원은 피고병원 의료진이 만취 상태의 환자에 대해 두부 외상에 의한 뇌손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문진과 면밀한 경과 관찰, 그리고 뇌CT 촬영 권유를 게을리한 의료과실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망인이 부상 경위를 정확히 진술하지 않고 진료에 협조하지 않은 점, 즉시 수술했더라도 완치를 단정하기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하여 피고의 손해배상 책임을 15%로 제한하여 일부 인용했습니다. 수술 단계나 설명의무 위반에 대한 청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은 의료진의 '주의의무'와 '설명의무' 위반 여부, 그리고 '손해배상 책임 제한'에 대한 법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의료진의 주의의무: 의사는 환자의 생명, 신체, 건강을 관리하는 전문직업인으로서 환자의 구체적인 증상이나 상황에 따라 위험을 방지하기 위하여 요구되는 '최선의 조치'를 취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특히 '진단'은 치료법 선택의 중요한 출발점이므로, 임상의학 분야에서 실천되는 진단 수준 내에서 전문직업인으로서 요구되는 의료상의 윤리와 의학지식, 경험에 터잡아 신중히 환자를 진찰하고 정확히 진단함으로써 위험한 결과 발생을 예견하고 회피하는 데 필요한 최선의 주의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대법원 2010. 7. 8. 선고 2007다55866 판결 참조). 본 사건에서 법원은 피고병원 의료진이 망인의 부상 경위 및 의식 변화를 음주로 오인하지 않도록 충분히 문진하고, 뇌손상 가능성을 인식하여 뇌CT촬영을 적극 권유하며, 망인의 상태를 계속 면밀히 관찰할 주의의무를 게을리한 의료상 과실을 인정했습니다.
설명의무 위반: 의사의 설명의무는 환자에게 '수술 등 침습을 가하는 의료행위'나 '사망 등 중대한 결과 발생이 예측되는 의료행위'와 같이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의한 선택이 요구되는 경우에 발생합니다 (대법원 2011. 11. 24. 선고 2009다70906 판결 참조). 법원은 이 사건에서 망인의 비가역적인 뇌손상과 사망이 1, 2차 수술의 침습 행위로 인한 것이 아니라 응급조치 단계에서의 과실로 발생했다고 보아, 수술 관련 설명의무 위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손해배상 책임 제한 (과실상계): 손해배상 사건에서는 손해의 발생이나 확대에 피해자측의 잘못(과실)이 있을 경우, 법원이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여 가해자의 손해배상 책임을 제한할 수 있습니다. 이는 손해의 공평하고 타당한 분담을 그 지도원리로 하는 손해배상 제도의 이념에 부합합니다. 이 사건에서는 망인이 응급실 후송 직후 부상 경위와 증상을 정확히 말하지 않고, 만취 상태로 의료진의 진료에 제대로 협조하지 않아 진료가 어려웠던 점, 또한 즉시 뇌CT 촬영을 하고 뇌출혈을 진단하여 수술했더라도 쉽게 회복될 수 있었으리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피고 병원의 손해배상 책임을 15%로 제한했습니다.
만약 본인이나 가족이 머리를 다친 후 의식 변화나 특정 증상을 보인다면, 음주 여부와 관계없이 의료진에게 머리 외상 가능성을 명확히 알리고 뇌CT와 같은 정밀 검사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문의해야 합니다. 술에 취한 환자라도 낙상 등 외상 병력이 있다면 뇌 손상의 가능성을 반드시 고려하여야 하며, 환자나 보호자는 의료진의 설명이 부족하다고 느낄 경우 추가적인 정보와 검사를 요청할 권리가 있습니다. 병원에서는 만취 환자라도 두부 외상 가능성이 있을 경우, 의식 변화가 음주 때문이라고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신경학적 증상 변화를 면밀히 관찰하고 필요한 경우 보호자에게 검사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설명해야 합니다. 환자의 상태가 의료진의 진료에 협조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의료진은 최선의 주의의무를 다해야 하지만, 환자나 보호자의 비협조적인 태도는 추후 손해배상 책임 비율을 결정할 때 참작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