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 · 노동
재건축 정비사업 조합설립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원회)와 정비사업 전문관리업체가 체결한 용역 계약의 효력이 문제가 된 사건입니다. 추진위원회 단계에서 체결된 용역 계약 중 조합 설립 이후의 업무에 해당하는 부분은 추진위원회의 권한을 벗어난 것으로 보아 무효라고 판단되었고 이에 따라 조합은 해당 계약을 승계할 의무가 없으며 계약 해지로 인한 손해배상이나 부당이득 반환 청구도 기각되었습니다.
주식회사 A는 B 재건축정비사업조합의 전신인 추진위원회와 2021년 4월 12일 용역 계약을 체결하고 정비사업 업무를 수행해 왔습니다. 피고 조합은 2021년 7월 20일 설립 인가를 받은 후 원고에게 일부 용역대금(747,077,944원)을 지급했습니다. 그러나 2023년 3월 2일 원고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하고, 4월 13일 정기총회에서 원고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새로운 정비사업 전문관리업체를 선정하기로 의결했습니다. 이에 원고는 자신이 여전히 정비사업 전문관리업자의 지위에 있음을 확인해 달라고 소송을 제기했으며 예비적으로는 계약 해지로 인한 손해배상금 320,337,000원을 청구했습니다.
재건축 정비사업 추진위원회 단계에서 체결된 정비사업 전문관리업자와의 용역 계약 중 조합 설립 이후의 업무 관련 부분이 새로 설립된 조합에 대해 유효하게 승계되는지 여부와 계약 해지로 인한 손해배상 또는 부당이득 반환 청구가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 여부가 주요 쟁점이었습니다.
법원은 원고 주식회사 A의 주위적 및 예비적 청구를 모두 기각하고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하도록 판결했습니다. 추진위원회와 체결한 계약 중 조합 설립 이후의 업무에 해당하는 부분은 추진위원회의 권한 범위 밖이므로 무효이며 조합이 이를 승계하거나 추인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계약 해지로 인한 손해배상이나 부당이득 청구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 판결은 재건축 정비사업의 추진위원회는 조합 설립을 위한 준비 업무 범위 내에서만 정비사업 전문관리업자와 계약을 체결할 수 있으며 그 범위를 초과하는 조합 고유 업무에 대한 계약은 무효임을 명확히 했습니다. 또한 조합이 추진위원회 단계에서 체결된 계약의 일부 용역비를 지급했다고 하더라도 무효인 계약 전체를 추인했다고 볼 수 없으며 총회의 적법한 의결이 중요함을 강조했습니다.
이 사건에서는 구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시정비법)의 여러 조항이 핵심적인 법리로 적용되었습니다.
구 도시정비법 제32조 제1항 (추진위원회의 업무): 이 조항은 추진위원회의 업무 범위를 규정하고 있는데, 법원은 '정비사업 전문관리업자의 선정'이 추진위원회 업무로 명시되어 있지만 이는 추진위원회가 수행할 수 있는 업무를 지원하기 위한 범위 내에서만 허용된다고 해석했습니다. 즉 조합의 설립 이후 조합의 고유 업무에 대한 정비사업 전문관리업자 선정은 추진위원회의 권한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구 도시정비법 제34조 제3항 및 정비사업 조합설립추진위원회 운영규정 제6조 (권리·의무의 포괄승계 제한): 추진위원회가 행한 업무와 관련된 권리와 의무는 조합이 포괄승계하지만 운영규정 제6조는 '이 운영규정이 정하는 추진위원회 업무 범위를 초과하는 업무나 계약, 용역업체의 선정 등은 조합에 승계되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법원은 추진위원회의 업무 범위를 초과하는 계약은 조합에 승계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며 본 계약의 일부가 무효임을 판단했습니다.
구 도시정비법 제45조 제1항 제6호 (조합총회의 의결사항): 이 조항은 '정비사업 전문관리업자의 선정 및 변경'을 조합총회의 결의사항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조합이 추진위원회의 결정과 별개로 독자적으로 정비사업 전문관리업자를 선정해야 함을 의미하며, 추진위원회가 조합의 정비사업 전문관리업자를 미리 선정하는 것을 막아 비리 등을 방지하려는 입법 취지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강행규정: 법원은 추진위원회의 기능과 권한을 규정한 구 도시정비법 제32조가 강행규정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는 해당 규정을 위반한 계약은 그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조합설립인가의 설권적 성격: 조합설립인가처분은 단순한 보충 행위가 아닌, 정비사업을 시행할 수 있는 행정주체의 지위를 부여하는 '설권적 처분'의 성격을 가집니다. 따라서 조합설립인가 전 창립총회의 결의는 조합의 결의가 아닌 주민총회 또는 토지등소유자 총회의 결의에 불과하여 조합에 대한 법적 구속력이 없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법리들을 종합하여 법원은 추진위원회가 조합의 업무에 해당하는 용역업무를 위탁하는 계약은 그 권한 범위를 벗어나 무효이고, 이러한 무효인 계약은 조합에 승계되지 않으며, 조합이 일부 용역대금을 지급했다고 하더라도 무효인 부분을 추인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추진위원회는 조합 설립을 위한 준비 기관이므로 그 권한 범위가 제한적임을 유의해야 합니다. 추진위원회 단계에서 정비사업 전문관리업자와 계약을 체결할 때는 조합 설립 이후의 본 사업 업무에 대한 계약이 추진위원회의 권한 범위를 초과하여 무효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합니다. 조합은 추진위원회가 체결한 계약을 승계하기 위해서는 조합원 총회의 적법한 의결을 거쳐 명시적으로 추인해야 합니다. 단순히 추진위원회 단계에서 진행된 일부 업무에 대한 대가를 지급한 것만으로는 계약 전체를 추인한 것으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정비사업 전문관리업체는 추진위원회와 계약을 체결할 때 조합 설립 후에도 계약의 효력이 유지되려면 조합 총회의 명확한 승계 또는 재계약 절차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지하고 대비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