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피고인 A는 전화금융사기 조직의 제안을 받아, 피해자 C로부터 편취한 7,200만 원을 인출하여 상품권을 구매한 뒤 조직원에게 전달하는 현금인출 및 자금세탁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전화금융사기 조직은 피해자 C에게 금융감독원 직원이나 검사를 사칭하며 계좌가 범행에 이용되었다는 거짓말로 돈을 송금받았습니다. 법원은 피고인 A에게 보이스피싱 범행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없었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의심스러운 정황들을 근거로 사기방조죄의 미필적 고의를 인정하여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였습니다.
성명 불상의 전화금융사기 조직원은 2023년 2월 20일경 피해자 C에게 '해외구매 결제 승인'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연락해 온 C에게 금융감독원 직원과 서울중앙지검 검사를 사칭하며 'C 명의 계좌가 범행에 이용되었으니 수사 협조를 위해 알려주는 계좌로 돈을 입금하라'고 거짓말했습니다. 이에 속은 피해자 C는 총 7,200만 원을 조직이 지시한 계좌로 송금했습니다.
피고인 A는 2023년 2월 16일경 조직원 'B 과장'으로부터 제안을 받고, 피고인 명의 계좌로 입금된 피해금 7,200만 원을 인출하여 서울 중구 명동의 한 상점에서 상품권으로 구매한 뒤, 2023년 2월 21일경 서울 영등포구 K건물 부근에서 구매한 상품권을 조직원에게 전달했습니다. 이로써 피고인은 조직의 사기 범행을 용이하게 하여 방조한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전화금융사기 조직의 현금인출 및 자금세탁 역할을 수행한 피고인 A에게 사기방조죄 성립에 필요한 '방조의 고의'가 인정되는지 여부가 핵심 쟁점입니다. 피고인은 자신이 보이스피싱 범행에 가담한다는 인식이 없었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의심스러운 정황들을 종합하여 미필적 고의가 있었는지 판단했습니다.
피고인 A를 징역 10개월에 처한다. 다만 이 판결 확정일부터 2년간 위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
법원은 피고인 A가 보이스피싱 범행에 가담한다는 인식이 없었다는 주장을 배척했습니다. 그 근거로 다음과 같은 점들을 들었습니다.
첫째, 사회 전반에 보이스피싱 사기범죄가 만연하며 상품권 구매 등을 명목으로 하는 범죄 수법이 널리 알려져 있고 인터넷 검색으로도 쉽게 알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둘째, 피고인이 'B 과장'이라는 사람을 대면하거나 계약서 작성 없이 일을 시작했고, 보수가 분명하지 않은데도 지나치게 고액의 일당을 받았으며, 카카오톡 메시지와 보이스톡으로만 지시를 받아 큰 금액의 상품권을 구매하여 노상에서 전달하는 의심스러운 방식의 업무를 수행했다는 점입니다.
셋째, 사회 경험이 적지 않은 피고인 스스로도 '일을 하고 싶은데 불안하니 대면으로 상담받고 싶다'거나 '피고인의 계좌를 쓰지 않고 일을 할 수 있는지'를 묻는 등 자신의 행위에 대해 의심스러운 태도를 보인 바 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사정들을 종합할 때, 피고인이 비록 보이스피싱 조직과 명시적으로 공모하지는 않았더라도, 자신의 행위가 사기 범행의 일부일 수 있음을 어느 정도 인식하거나 예견하면서도 경제적 이익을 위해 이를 용인하고 역할을 수행했다고 보아 사기방조죄의 미필적 고의를 인정했습니다.
양형에서는 피해액이 7,200만 원으로 고액이나, 피고인이 미필적 고의로 가담했고 조직의 말단 역할을 수행했으며 취득한 이익이 적고, 피해자에게 일부 피해 회복 노력을 보였고, 범행 후 스스로 경찰에 상담을 받기도 했으며, 범죄 전력이 없다는 점 등을 참작하여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이 사건은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조직의 사기 범행을 방조한 피고인에게 적용된 형법 조항과 법리를 설명합니다.
첫째, 형법 제347조 제1항 (사기): 사람을 기망(속여서 착각하게 만듦)하여 재물을 편취(가로챔)하거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합니다. 이 사건에서 전화금융사기 조직이 피해자 C를 속여 7,200만 원을 송금받은 행위가 사기죄의 정범에 해당합니다.
둘째, 형법 제32조 제1항 (종범): 타인의 범죄 실행을 방조(도움을 주어 용이하게 함)한 자는 종범으로 처벌받으며, 그 형은 정범의 형보다 감경됩니다. 피고인 A는 전화금융사기 조직의 지시에 따라 피해금을 인출하고 상품권을 구매하여 전달함으로써 조직의 사기 범행을 도와 방조범이 되었습니다.
셋째, 형법 제32조 제2항, 제55조 제1항 제3호 (방조감경): 종범의 형은 정범의 형보다 감경될 수 있음을 명시한 조항입니다. 피고인은 이 규정에 따라 사기죄의 정범보다 감경된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넷째, 형법 제62조 제1항 (집행유예):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의 형을 선고할 경우, 여러 조건을 고려하여 그 형의 집행을 유예할 수 있습니다. 피고인은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는데, 이는 바로 교도소에 수감되지 않고 일정 기간 동안 사회에서 생활하며 재범을 하지 않으면 형 선고의 효력이 상실되는 제도입니다.
다섯째, 사기방조죄의 '고의' 판단: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방조범의 고의는 정범의 실행을 돕는다는 인식과 정범의 행위가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행위라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이때 정범의 범죄 내용 전체를 구체적으로 알 필요는 없고, '미필적 인식 또는 예견'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봅니다. 즉, 자신이 하는 일이 보이스피싱과 같은 사기 범죄의 한 과정일 수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거나 의심하면서도 이를 용인하고 진행했다면 고의가 인정될 수 있습니다. 본 사건에서 법원은 피고인의 행동(대면 없는 업무, 고액 일당, 상품권 구매, 스스로의 의심 표현 등)을 근거로 미필적 고의를 인정했습니다.
고액의 현금을 인출하여 다른 물품(특히 상품권)으로 교환하거나, 불특정 다수에게 전달하는 아르바이트는 보이스피싱과 같은 범죄에 연루될 가능성이 매우 높으므로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정식 계약 없이 카카오톡 등 온라인 메시지나 전화로만 업무 지시를 받고 과도하게 높은 보수를 약속받는 경우, 사기 범죄 가담 가능성을 의심해야 합니다. 자신의 계좌를 통해 거액이 입출금되는 행위는 금융사기 범죄에 이용될 위험이 크며, 이로 인해 본인도 처벌받을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합니다. 의심스러운 정황이 있을 경우, 경제적 이득에 눈이 멀어 굳이 더 알아보려 하지 않고 일을 진행한다면, 나중에 '몰랐다'고 주장해도 법원에서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어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스스로 의심했던 점이 있다면 더욱 적극적으로 사실관계를 확인해야 합니다. 피해자와 합의하거나 피해액을 변제하려는 노력은 형량 결정에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