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정
G 반도체 회사에서 근무했던 여러 근로자 또는 그 유족들이 급성 골수성 백혈병,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악성 림프종 등의 혈액암 진단 및 사망 후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 장의비, 요양급여 등 산업재해 보상을 신청했습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와 질병 간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없다고 보아 급여 지급을 거부했고, 이에 근로자 및 유족들은 공단의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번 사건은 국내 반도체 산업의 발전 과정에서 수많은 근로자들이 유해한 작업 환경에 노출되어 혈액암 등 심각한 질병을 얻었음에도,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기 어려웠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근로자 및 유족들은 오랜 기간 동안 반도체 생산 공정에서 사용된 다양한 화학물질, 방사선 노출, 그리고 고강도 교대 근무 등의 복합적인 요인이 질병의 원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인과관계가 의학적, 과학적으로 명확히 증명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보상을 거부해왔습니다. 이에 근로자 및 유족들은 행정소송을 통해 법적인 판단을 구했으며, 이 과정에서 반도체 공장의 작업 환경과 질병 발병 간의 연관성을 둘러싼 역학조사 및 의학적 견해들이 심도 있게 다뤄졌습니다.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사용되는 화학물질 노출, 전리 및 비전리 방사선 노출, 그리고 야간 교대제 근무로 인한 과로 및 스트레스 등 작업 환경이 근로자들의 혈액암(백혈병, 림프종) 발병 및 사망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는지 여부가 주요 쟁점이었습니다. 특히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업무상 재해' 인정을 위한 인과관계의 증명 정도와 범위에 대한 판단이 핵심이었습니다.
법원은 각 원고들의 주장과 증거를 검토하여 다음과 같이 판결했습니다.
원고 A(망 H) 및 원고 B(망 J)의 청구는 인용되었습니다.
원고 C(망 L), 원고 D, 원고 F의 청구는 기각되었습니다.
재판부는 망 H와 망 J 유족들의 청구를 인용하고, 망 L 유족 및 원고 D, F의 청구를 기각한 1심 판결이 정당하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원고 C, D, F와 피고 근로복지공단이 제기한 항소를 모두 기각했습니다. 항소 비용은 원고 A, B과 피고 사이에서 발생한 부분은 피고가, 원고 C, D, F와 피고 사이에서 발생한 부분은 원고들이 각자 부담하도록 했습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서는 '업무상 재해'를 근로자가 업무 수행 중 업무에 기인하여 발생한 재해로 정의하며, 이 경우 업무와 재해 발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인과관계의 증명에 있어 법원은 반드시 의학적 또는 자연과학적으로 명백하게 증명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대신 근로자의 취업 당시 건강 상태, 질병의 원인, 작업장에 발병원인 물질 존재 여부, 발병원인 물질이 있는 작업장에서의 근무 기간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업무와 질병 또는 그에 따른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추단되는 경우'에도 증명이 있다고 판단합니다. 이때 판단 기준은 일반적인 평균인이 아니라 '해당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본 사건에서 망 H와 망 J의 경우, 법원은 반도체 습식식각 공정 중 감광제에 잔류했을 것으로 보이는 벤젠 노출, 가속이온주입기 부근에서 발생한 전리방사선 노출, 그리고 작업 환경 측정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비정상적인 상황에서의 고농도 유해물질(염산, 불산, 황산, IPA 등) 노출 가능성을 인정했습니다. 또한 3교대 야간근무로 인한 과로와 스트레스가 면역력에 악영향을 미쳐 질병 발병 및 진행을 촉진했을 것으로 보아 업무상 상당인과관계를 추단하였습니다.
반면, 망 L, 원고 D, 원고 F의 경우에는 노출된 물질의 발암성 관련성이 부족하거나, 노출 정도가 질병을 유발 또는 촉진할 수준에 이르렀다는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판단되어 업무상 인과관계가 부정되었습니다. 이는 각 근로자의 구체적인 업무 내용, 노출 물질, 노출 정도에 따라 인과관계 인정 여부가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