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해배상 · 의료
혈우병 환자들이 주식회사 A가 제조·공급한 혈액제제를 투여받은 후 HIV에 감염되자, 환자 및 그 가족들이 피고인 A사를 상대로 혈액제제 제조 및 공급상의 과실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입니다. 피고는 과실 부인 및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였으나, 법원의 조정에 따라 피고 A사가 공익적 견지에서 원고들에게 총 20억여 원에 달하는 금원을 지급하고 모든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기로 합의하며 종결되었습니다.
1987년부터 1991년경, 혈우병 환자들이 피고 주식회사 A가 제조한 혈액제제(DF, DH)를 투여받고 HIV에 감염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원고들은 피고 A사가 1988년부터 1990년까지 HIV 감염 매혈자 DJ과 DK로부터 혈액을 구입하여 이를 원료로 혈액제제를 제조하였고, 이러한 제조 및 공급상의 과실로 인해 자신들이 HIV에 감염되었다고 주장하며 정신적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피고 A사는 혈액제제가 AIDS 바이러스 감염 혈액으로 제조된 것이 아니며, 제조 당시 최선의 조치를 다했기에 과실이 없고, 설령 불법행위 책임이 인정되더라도 소멸시효가 이미 완성되었다고 항변했습니다. 이에 원고들은 소멸시효의 기산점을 AIDS 증상 발현 시점으로 보아야 하며,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은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반박했습니다.
혈액제제 제조업체의 제조 및 공급상 과실 여부, 과실로 인한 HIV 감염의 인과관계,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 완성 여부 및 권리남용 주장의 타당성.
서울고등법원은 법원의 조정 절차를 통해 당사자 간의 합의를 이끌어냈습니다. 피고 주식회사 A는 혈액제제로 인한 책임 여하를 불문하고 공익적인 견지에서 원고들 및 조정참가인들에게 총 20억여 원(정확히는 2,054,082,347원)의 합의금을 지급하기로 하였고, 원고들은 이 금액 수령 후 피고에게 더 이상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피고는 2013년 11월 30일까지 합의금을 지급하며, 미지급 시 2013년 12월 1일부터 완제일까지 연 20%의 지연손해금을 가산하여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나머지 청구는 포기되었고, 관련 소송 취하 및 합의금액 비공개, 소송 및 조정 비용은 각자 부담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장기간 이어진 혈액제제 관련 에이즈 감염 손해배상 소송을 법원의 조정으로 최종 마무리했습니다. 피고 제약회사가 공식적인 책임 인정 없이도 사회적 공익 차원에서 상당한 금원을 지급하고 피해자들이 추가적인 법적 분쟁을 포기함으로써, 양측이 타협하여 분쟁을 종결하는 실질적인 해결책을 찾았습니다.
이 사건은 혈액제제 제조사의 과실 여부와 제조물 책임, 그리고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 문제가 핵심이었습니다.
1. 민법 제750조 (불법행위의 내용):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습니다. 원고들은 피고가 HIV에 감염된 혈액을 원료로 혈액제제를 제조하고 공급한 것이 과실이며, 이로 인해 HIV에 감염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제조업체는 안전한 제품을 생산할 의무가 있으며, 잠재적 위험 물질에 대한 충분한 검사와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과실이 인정될 수 있습니다.
2. 제조물 책임법: 제조업자가 제조물의 결함으로 인해 소비자에게 생명, 신체 또는 재산상 손해를 입힌 경우, 그 손해를 배상해야 하는 책임입니다. 혈액제제와 같이 인체에 직접 투여되는 의약품은 높은 수준의 안전성이 요구되며, HIV 바이러스에 오염된 혈액을 사용했다면 '결함 있는 제조물'에 해당할 가능성이 큽니다. 피고는 TNBP 공법 등 당시의 최선 조치를 다했다고 주장했으나, 제품의 안전성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은 제조업체에 있습니다.
3. 민법 제766조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손해 및 가해자를 알게 된 날로부터 3년간 행사하지 않으면 소멸시효가 완성됩니다. 또한, 불법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10년을 경과하면 시효로 소멸합니다. 이 사건에서는 HIV 감염과 같이 잠복기가 긴 질병의 경우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이 언제인지가 쟁점이 되었으며, 원고들은 AIDS 감염 증상이 발현된 시점을 기산점으로 주장하고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이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잠재적이고 점진적인 손해가 발생하는 경우 소멸시효 적용에 대한 복잡성을 보여줍니다.
4. 법원의 조정: 민사 분쟁을 소송 절차를 거치지 않고 법원의 중재를 통해 당사자 간 합의로 해결하는 제도입니다. 이 사건은 법원의 조정으로 종결되었으며, 피고가 책임을 명시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공익적 견지에서 금원을 지급하기로 합의함으로써, 법적 책임 공방을 넘어선 사회적 화해를 모색한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건강 관련 제품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고 의심되는 경우, 제품 사용 기록, 의료 기록, 진단서 등 가능한 모든 증거를 체계적으로 수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질병의 잠복기가 길거나 원인 파악이 어려운 경우, 전문가의 진단과 의견이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손해배상 청구의 소멸시효는 손해 및 가해자를 알게 된 날로부터 3년, 불법행위가 발생한 날로부터 10년인데, 질병 감염과 같이 손해 발생 시점과 인지 시점이 다른 경우, 소멸시효 기산점에 대한 법적 해석이 복잡할 수 있으므로 시기적절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여러 피해자가 유사한 피해를 입었을 때는 집단소송이나 공동소송을 통해 법적 대응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법원 조정은 소송보다 빠르게 분쟁을 해결하고 당사자들이 직접 합의 조건을 결정할 수 있는 유연한 방법으로, 특히 책임 소재를 명확히 가리기 어려운 복잡한 사안에서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