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해배상 · 의료
1998년 B병원 의료진의 과실로 식물인간 상태가 된 원고 A는 두 번의 손해배상 소송을 통해 보상을 받았으나, 예상보다 훨씬 오랜 기간 생존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A는 세 번째 소송을 제기하여, 연장된 생존 기간에 따른 추가 일실수입 손해, 향후 치료비, 보조구 구입비 그리고 물가 상승으로 인해 현저히 증가한 간병비(개호비)의 증액을 청구했습니다. 법원은 과거 소송에서 철회된 일실수입 청구는 재소금지 원칙에 따라 각하했지만, 예상치 못한 장기 생존과 간병비 상승은 사정 변경에 해당한다고 보아 추가 손해배상과 개호비 정기금 증액을 명령했습니다.
1998년 4월 28일, 원고 A는 하복부 통증으로 B병원 응급실을 찾았습니다. 당시 A는 고열, 호흡곤란, 복부 강직 등의 증상을 보였고 백혈구 수치가 낮았으며 복부 천자에서 고름이 흡입되어 의료진은 패혈증을 의심하고 범발성 복막염으로 진단했습니다. 같은 날 수술을 받았으나, 의료진은 수술 후에도 A가 패혈증 증세를 계속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패혈증의 정확한 원인 규명 및 적절한 응급 치료를 소홀히 했습니다. 그 결과 A는 1998년 5월 1일 급성 호흡부전 증세를 보였고 저산소증으로 인한 뇌 손상으로 식물인간 상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의 주요 쟁점은 과거 소송에서 철회되었던 일실수입 청구가 재소금지 원칙에 해당하는지 여부, 확정 판결 이후 환자의 기대 여명이 예상치 못하게 연장되었을 때 기존 판결의 기판력이 미치는지 여부, 그리고 보통인부 노임이 현저히 상승함에 따라 확정된 정기금(개호비) 지급 판결을 변경할 수 있는지 여부였습니다.
법원은 2004년 4월 24일부터 2012년 12월 31일까지의 일실수입 손해배상 청구는 재소금지 원칙에 따라 각하했습니다. 그러나 피고 B병원은 원고 A에게 1,985,094원 및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하고, 원고 A의 생존을 조건으로 2014년 8월 9일부터 2016년 1월 28일까지 매월 195,494원(일실수입 생계비), 2015년 7월 9일부터 2037년 9월 28일까지 매년 3,696,000원(향후 치료비), 2015년 6월 15일을 첫 지급일로 3년마다 840,000원(보조구 구입비)을 지급하도록 명령했습니다. 또한, 제2차 전소 판결의 개호비 부분을 2014년 2월 24일부터 2037년 9월 28일까지 매월 4,039,968원으로 변경했습니다. 원고의 나머지 청구는 기각되었으며, 소송비용은 원고가 1/5, 피고가 나머지를 부담하도록 결정했습니다.
법원은 환자의 예상치 못한 장기 생존과 간병 비용의 현저한 증가를 새로운 사정 변경으로 인정하여, 기존 확정 판결의 손해배상액을 조정하고 정기금 지급을 명령했습니다. 이는 장기 요양이 필요한 의료사고 피해자의 권리를 보호하려는 취지이며, 다만 과거에 철회된 청구에 대해서는 재소금지 원칙을 엄격히 적용했습니다.
이 사건에서는 다음과 같은 법령과 법리가 적용되었습니다. 1. 민사소송법 제267조 제2항(재소금지 원칙): 이 조항은 본안에 대한 종국판결이 있은 뒤에 소를 취하한 사람은 같은 소를 제기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소송의 남용을 방지하고 확정된 법률관계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원칙입니다. 본 사건에서 원고는 2차 소송에서 특정 기간의 일실수입 청구를 철회한 바 있으므로, 동일한 기간에 대한 일실수입 청구는 이 원칙에 따라 각하되었습니다. 2. 민사소송법 제252조 제1항(정기금판결 변경의 소): 이 조항은 정기금의 지급을 명한 판결이 확정된 뒤에 그 액수 산정의 기초가 된 사정이 현저하게 바뀜으로써 당사자 사이의 형평을 크게 침해할 특별한 사정이 생긴 때에는 그 판결의 당사자가 장차 지급할 정기금 액수를 바꾸어 달라는 소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합니다. 본 사건에서는 원고의 예상치 못한 장기 생존과 보통인부 노임의 현저한 상승(제2전소판결 시점 대비 약 152% 상승)이 '현저하게 바뀐 사정'으로 인정되어 개호비 정기금 액수가 증액 변경되었습니다. 3. 확정판결의 기판력 범위와 사정 변경: 확정판결의 효력(기판력)은 사실심 변론종결 시를 기준으로 발생하며, 그 이후 예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사정이 발생하여 기존 판결을 유지하는 것이 불합리한 경우 기판력이 미치지 않을 수 있다는 법리가 적용되었습니다. 원고의 기대 여명이 예상치 못하게 연장된 것은 이러한 새로운 사정에 해당하여 추가 손해배상 청구가 인정되었습니다(대법원 2000. 7. 28. 선고 2000다11317 판결 등 참조). 4. 손해배상 책임 제한: 법원은 의료사고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을 결정할 때, 패혈증의 높은 치사율과 환자 A의 신체 저항력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피고 병원의 책임을 80%로 제한했습니다. 이는 손해의 공평한 분담을 위한 조치입니다.
장기 요양을 필요로 하는 의료사고의 경우, 환자의 예상 여명 기간이 초기 예측과 달라질 수 있으므로 지속적인 경과 관찰이 중요합니다. 확정된 손해배상 판결이 있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환자의 생존 기간이 연장되거나 물가 상승으로 인해 간병비와 같은 필수 비용이 현저히 증가하는 등 예상치 못한 사정 변경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민사소송법 제252조 제1항에 따라 정기금 지급액 변경을 요청하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 소송을 제기했다가 철회한 청구 부분에 대해서는 민사소송법 제267조 제2항의 재소금지 원칙이 적용되어 다시 소송을 제기하기 어려울 수 있으니, 소송 중 청구 내용의 철회는 신중하게 결정해야 합니다. 의료사고 손해배상 소송에서는 의료기관의 과실뿐만 아니라 환자의 기존 건강 상태 등 여러 요인이 고려되어 손해배상 책임 비율이 정해질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