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기 · 기타 형사사건
F 주식회사는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과 원자력 발전소용 비상 발전기(J) 4대에 대해 168시간 연속운전 성능을 조건으로 134억여 원의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하지만 F사는 2차 연속운전 시험에서 엔진 정지 등 실패가 발생했음에도 이를 은폐하고 허위 시험성적서를 제출하여 한수원으로부터 총 66억여 원의 잔금을 편취했습니다.
재판부는 F사의 대표이사 A에게는 사기 공모 및 고의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그러나 영업부문 부사장 B, 글로벌본부 본부장 C, 고속발전팀장 D에게는 각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고, 고속발전팀 차장 E에게는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법원은 핵연료 용융 및 폭발, 방사능 유출 등 심각한 원전 사고를 막기 위한 최후의 보루인 J 발전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피고인들의 행위가 비난 가능성이 낮지 않다고 보았습니다. 다만, J 발전기가 실제 사용될 가능성이 희박했고, 엔진 자체의 문제가 아닌 연료 계통 문제로 인식했으며, F사가 3차 시험에 성공하고 피해 회복 노력을 한 점 등이 양형에 참작되었습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원자력 발전소의 비상 전력 공급 강화를 위해 168시간 연속운전이 가능한 비상 발전기(J) 4대 도입을 결정하고, F사와 약 134억 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계약에 따라 F사는 'J' 발전기의 168시간 연속운전 시험성적서를 제출해야 했습니다. 2019년 9월 첫 시험에서 가스터빈 손상으로 시험이 중단되었고, 12월에 진행된 2차 시험에서도 연료 공급 문제로 총 6회에 걸쳐 엔진이 정지하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F사의 고속발전팀장 D는 상급자인 글로벌본부 본부장 C와 영업부문 부사장 B에게 엔진 정지 사실을 축소 보고하거나 일부만 보고했습니다. D는 '엔진 자체 손상이 없고 연료 공급 문제이므로 한수원에 통보 없이 진행해도 무방하다'는 의견을 개진했고, B와 C는 이를 승인했습니다.
이에 D는 시험성적서 작성 담당자인 차장 E에게 '엔진이 정지하지 않은 것처럼 수치를 입력하고 그래프를 조작하여 허위 성적서를 작성하라'고 지시했습니다. E는 이 지시에 따라 엔진 정지 시간을 은폐하고 가동 중인 것처럼 허위로 데이터를 기재한 168시간 연속운전 시험성적서를 작성하여 한수원에 제출했습니다.
결국 한수원은 이 허위 성적서에 속아 2019년 12월부터 2020년 12월까지 총 4회에 걸쳐 66억여 원의 잔금을 F사에 송금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사업관리 담당 과장 I은 재시험 없이 잔금을 받을 수 있도록 사업 일정을 관리하고, 영업 담당 과장 H은 각 원자력본부에 대금 지급 요청을 하는 등 조직적으로 범행에 가담했습니다.
J 발전기 168시간 연속운전 시험 실패 사실을 한수원에 알리지 않고 허위 시험성적서를 제출하여 대금을 편취한 행위가 사기죄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주요 쟁점이었습니다. 특히, 피고인 A의 공모 여부 및 사기 고의 인정 여부가 핵심적으로 다루어졌고, 각 피고인의 공모 가담 정도 및 책임 범위가 판단되었습니다.
또한, 연속운전 시험 중 엔진 정지가 발생했을 때 그 원인이나 재가동 여부에 관계없이 성능 시험이 실패한 것으로 보아야 하는지 여부도 중요한 법리적 판단 대상이었습니다.
재판부는 피고인 A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 A이 다른 피고인들과 사기 범행을 공모했거나 사기의 고의가 있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반면, 피고인 B(영업부문 부사장), 피고인 C(글로벌본부 본부장), 피고인 D(고속발전팀장)에게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죄를 적용하여 각 징역 3년에 처하고, 다만 이 판결 확정일부터 5년간 위 형의 집행을 유예했습니다.
피고인 E(고속발전팀 차장)에게는 같은 죄명으로 징역 1년 6개월에 처하고, 다만 이 판결 확정일부터 2년간 위 형의 집행을 유예했습니다. 피고인 E의 경우 자수 감경이 적용되었습니다.
재판부는 비상 발전기의 성능 시험 결과를 조작하여 대금을 편취한 F사 임직원 B, C, D, E에게 사기 혐의를 인정하여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특히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과 직결되는 장비의 성능을 허위로 보고한 행위에 대해 공공 안전을 위협하는 중대한 범죄임을 명확히 했습니다.
다만, 최고 책임자인 대표이사 A는 공모나 사기의 고의가 증명되지 않아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이는 형사 재판에서 범죄 사실을 엄격한 증거에 의해 증명해야 한다는 무죄 추정의 원칙을 재확인한 결과입니다. 이 판결은 기업 경영진이 실무자들의 보고와 의사 결정 과정에서 투명성과 책임감을 가지고 임해야 한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3조 제1항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 이 법률은 형법에 규정된 사기, 횡령, 배임 등의 범죄를 저질러 편취하거나 취득한 재물 또는 재산상 이익의 가액이 5억 원 이상일 때 가중처벌하도록 합니다. 본 사건의 경우 편취액이 66억여 원에 달하여 이 법률이 적용되었습니다.
공동정범의 성립 요건 (형법 제30조): 2인 이상이 공동으로 범죄를 범하는 것을 말하며, 공동가공의 의사와 기능적 행위지배를 통한 범죄 실행 사실이 필요합니다. 공동가공의 의사는 반드시 사전에 치밀한 범행 계획의 공모에까지 이를 필요는 없으며, 공범자 각자가 상호 이해하에 구성요건과 관련된 행위를 분담한다면 공모 관계가 성립합니다. 본 사건에서 피고인 B, C, D, E는 엔진 정지 사실 은폐와 허위 성적서 제출을 통해 잔금을 받기로 하는 '의사의 결합'이 순차적 또는 암묵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보아 공동정범으로 인정되었습니다.
자수 감경 (형법 제52조 제1항, 제55조 제1항 제3호): 죄를 범한 후 수사기관에 자진하여 자신의 범죄 사실을 신고하면 형을 감경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피고인 E에게는 이 법조항이 적용되어 형이 감경되었습니다.
정상참작 감경 및 집행유예 (형법 제53조, 제55조 제1항 제3호, 제62조 제1항): 피고인의 연령, 성행, 지능과 환경, 피해자와의 관계,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 등 여러 유리하거나 불리한 사정들을 고려하여 형을 감경하거나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있습니다. 본 사건 피고인 B, C, D, E에게는 손해 발생 위험이 크게 현실화되지 않았고, F사가 3차 시험에 성공하여 피해 회복 조치를 제안하는 등 유리한 정상들이 참작되어 집행유예가 선고되었습니다.
무죄추정의 원칙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 형사 재판에서 범죄 사실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의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엄격한 증거에 의해야 합니다. 검사의 증명이 이러한 확신을 가지게 하는 정도에 미치지 못할 경우,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하여 무죄를 선고해야 합니다. 피고인 A의 경우,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증거들의 신빙성이 낮거나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되어 이 원칙에 따라 무죄가 선고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