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채무 · 행정
빚을 갚아야 할 회사가 자신의 유일한 재산인 부동산 신탁 수익권을 다른 회사들에게 넘겨버리자 채권자들이 이를 '사해행위'로 보고 취소해 달라고 소송을 제기한 사건입니다. 법원은 채무자 회사의 신탁 수익권 처분 행위가 채권자들을 해치는 사해행위임을 인정하고 부동산 신탁 수익권 평가액 범위 내에서 해당 매매계약을 취소하고 채권자들에게 가액을 배상하도록 명령했습니다. 다만 신탁재산을 관리하는 수탁회사는 사해행위의 전득자로 볼 수 없어 책임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원고 A, B, C는 주식회사 H에 각각 10억 원, 2억 원, 1억 원을 빌려주었습니다. 이후 주식회사 H는 원고들에게 대여금 및 이자, 지연손해금을 갚아야 하는 채무가 발생했습니다. 주식회사 H는 2018년 5월경 자신의 소유 부동산들을 피고 주식회사 G에게 신탁하고 G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쳐주어 해당 부동산에 대한 '후순위 신탁 수익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주식회사 H는 2018년 11월부터 12월 사이에 이 신탁 수익권과 관련된 부동산들을 피고 주식회사 D, E, F에게 매도하는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 매매계약으로 인해 주식회사 H는 해당 부동산에 대한 신탁 수익권을 소멸시켰고, 이로 인해 적극재산보다 소극재산이 더 많아지는 '채무초과' 상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원고들은 주식회사 H가 빚을 갚지 않기 위해 유일한 재산을 처분한 것이므로 해당 매매계약이 자신들을 해치는 '사해행위'에 해당한다며 소송을 제기하고, 취소 및 피고들로부터 채권액만큼의 가액 배상을 청구했습니다. 한편, 피고 주식회사 G은 해당 부동산들의 수탁자로서 이후 피고 D, E, F과도 다시 신탁계약을 맺어 소유권 이전등기를 마친 상태였습니다.
이 사건의 주요 쟁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채무자인 주식회사 H가 자신의 부동산 신탁 수익권을 피고 주식회사 D, E, F에게 매도한 행위가 채권자들을 해하는 '사해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입니다. 둘째, 여러 부동산에 대한 매매계약이 연속해서 이루어졌을 때 이를 하나의 사해행위로 볼 수 있는지 여부입니다. 셋째, 담보신탁된 부동산에 대한 위탁자의 후순위 수익권을 어떻게 평가하여 사해행위 취소의 범위를 정할 것인가입니다. 넷째, 사해행위 취소에 따른 원상회복 방법으로 금전 배상의 범위는 어떻게 되는지입니다. 마지막으로, 신탁재산의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수탁자인 피고 주식회사 G을 사해행위의 '전득자'로 보아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여부입니다.
법원은 채무자인 주식회사 H가 채무초과 상태에서 거의 유일한 재산인 부동산 신탁 수익권을 피고 D, E, F에게 처분하여 채무초과 상태를 야기하거나 악화시킨 행위는 원고들의 채권을 해치는 '사해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2018년 11월 28일부터 12월 28일 사이에 이루어진 여러 매매계약을 시간적 근접성, 처분 상대방의 동일성(실질적 대표자 U), 동기 등을 고려하여 하나의 사해행위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담보신탁 수익권의 가치 평가는 신탁부동산의 시가에서 신탁보수 등 비용과 우선수익자의 채무액을 공제하는 방식으로 산정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이에 따라 법원은 주식회사 H와 피고 D, E, F 사이의 매매계약을 원고들의 채권액 범위 내에서 취소하고, 피고들에게 가액 배상을 명령했습니다. 피고 D와 H 사이의 매매계약(별지목록 제1, 2, 5, 8, 9항 부동산)은 원고들의 피보전채권 합계액 1,250,065,162원의 한도 내에서 각 부동산 신탁 수익권 평가액을 안분하여 취소했습니다. 예를 들어 제1항 부동산 매매계약은 328,221,508원의 범위 내에서 취소되었습니다. 피고 E, F과 H 사이의 매매계약(별지목록 제3, 4, 6, 7항 부동산)은 각 신탁 수익권의 평가가액 범위 내에서 취소되었습니다. 원상회복으로는 피고 D, E, F이 공동하여 원고 A에게 706,580,625원(단, 피고 F은 696,544,317원 한도), 원고 B에게 364,218,981원, 원고 C에게 179,265,556원 및 각 이에 대한 판결 확정일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5%의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도록 판결했습니다. 그러나 피고 G에 대한 청구는 기각했는데, 피고 G은 신탁등기로 부동산의 소유권만 취득했을 뿐 신탁계약에 따른 수익권을 취득한 것이 아니므로 사해행위의 전득자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채무자 주식회사 H가 채무초과 상태에서 부동산 신탁 수익권을 처분한 행위가 사해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여 해당 매매계약을 취소하고, 수익자인 피고 D, E, F에게 원고들의 채권액 범위 내에서 가액 배상을 명했습니다. 다만 신탁재산의 수탁자는 사해행위의 전득자로 볼 수 없다고 보아 책임이 없다고 보았습니다.
이 사건은 채무자가 채권자들을 해치는 행위(사해행위)를 했을 때 채권자가 그 행위를 취소하고 원상회복을 구할 수 있는 민법상 '채권자취소권'에 관한 법리가 적용되었습니다. 구체적인 법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채권자취소권의 행사를 위해서는 해당 채권이 사해행위 이전에 발생해야 합니다(피보전채권의 성립). 원고들의 대여금 채권은 주식회사 H의 부동산 처분 이전에 발생하였으므로 피보전채권으로 인정되었습니다. 둘째, 사해행위로 인해 채무자가 '채무초과' 상태가 되거나 이미 채무초과 상태가 악화되어야 합니다. 법원은 담보신탁계약상의 수익권도 채무자의 책임재산에 해당하며, 이 사건 매매계약으로 주식회사 H가 채무초과 상태에 이른 점을 인정했습니다. 이때 신탁 수익권의 가치는 신탁부동산 시가에서 신탁 관련 비용과 우선수익자의 채무액을 공제하여 평가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셋째, 채무자에게 '사해의사', 즉 자신의 행위로 인해 채권자를 해하게 됨을 아는 의사가 있어야 하며, 재산을 넘겨받은 수익자에게도 '악의', 즉 사해행위임을 아는 상태가 추정됩니다. 넷째, 사해행위 취소에 따른 '원상회복'은 원칙적으로 채권자의 채권액을 초과할 수 없으며, 이때 채권액에는 사해행위 이후 사실심 변론종결 시까지 발생한 이자나 지연손해금이 포함됩니다. 특히 담보신탁된 부동산의 처분행위가 사해행위인 경우, 원상회복은 단순히 소유권이전등기 말소가 아닌, 위탁자가 가지고 있던 담보신탁계약상 수익권의 평가금액 한도 내에서 가액 배상을 명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여러 명의 채권자가 여러 수익자를 상대로 사해행위 취소 소송을 제기한 경우, 각 수익자는 자신이 반환해야 할 가액 범위 내에서 각 채권자의 피보전채권 전액을 반환해야 하며, 채권액 합계액 범위 내에서 취소 금액을 안분하여 결정할 수 있습니다.
채무자가 빚을 갚지 않기 위해 부동산 담보신탁을 이용해 재산을 처분하는 상황을 마주했다면 다음 사항들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첫째, 채무자가 담보신탁한 부동산 자체는 아니더라도 해당 부동산에 대한 '후순위 신탁 수익권'은 채무자의 책임재산에 해당하므로 이 수익권의 처분도 사해행위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합니다. 둘째, 채무자가 여러 부동산을 여러 명의 수익자에게 연속적으로 처분하더라도, 시간적으로 근접하고 동기가 동일하다면 이러한 행위들을 '하나의 사해행위'로 보아 전체적인 사해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셋째, 사해행위 취소 시 원상회복은 단순히 부동산의 소유권등기 말소가 아니라, 채무자가 처분한 신탁 수익권의 평가액 범위 내에서 채권자의 채권액만큼 금전으로 배상받을 수 있습니다. 넷째, 채무초과 상태에서 주요 재산을 처분한 경우, 채무자와 해당 재산을 넘겨받은 수익자는 해당 행위가 채권자를 해칠 것을 알고 있었다고 '추정'되므로, 이를 반박할 명확한 증거가 없다면 사해의사가 인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마지막으로, 신탁된 재산의 소유권을 보유한 '수탁자'는 사해행위의 직접적인 수익자나 전득자로 인정되지 않을 수 있으므로, 청구 대상을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