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기
회생 절차 신청 직전 물품을 대량으로 납품받았으나 대금을 지급하지 못해 사기 혐의로 기소된 회사 운영자가, 대금을 갚을 의사가 없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고 항소심에서도 무죄가 유지된 사건입니다.
피고인 A가 운영하던 회사 C는 피해 회사와 오랜 기간 스테인레스 코일 거래를 해왔으며, 2017년 말 경영이 악화되어 회생 절차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피고인 A는 2017년 12월 5일부터 12월 14일까지 피해 회사로부터 약 5천4백만 원 상당의 스테인레스 코일을 납품받았으나, 이후 회생 절차에 들어가면서 대금을 정상적으로 지급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피해 회사는 피고인 A가 처음부터 대금을 지급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음에도 물품을 납품받아 편취했다고 주장하며 사기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검사는 회생 신청 직전 물품 매입량이 평소보다 급격히 증가한 점, 피고인이 이미 회사 운영이 어렵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던 점 등을 근거로 피고인에게 사기의 의도가 있었다고 보아 기소했으나, 원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자 항소했습니다.
회생 절차 신청 직전 물품을 납품받고 대금을 지급하지 못한 행위에 사기죄의 핵심 요건인 '편취의 범의', 즉 처음부터 대금을 갚을 의사나 능력이 없었는지 여부가 주된 쟁점이었습니다.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의 무죄 판단을 유지하여 피고인 A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피고인 회사의 과거 정상적인 거래 내역, 상당한 매출 규모, 물품을 실제로 제조 및 판매한 사실, 기존 채무 변제 노력, 그리고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에 따라 피해 회사의 채권이 공익채권으로 보호받을 여지가 있었다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다른 거래처의 매입 물량에 이례적인 증가가 없었던 점 등을 들어 피고인에게 처음부터 대금을 갚지 않을 '편취의 범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이 사건은 사기죄의 핵심 요건인 '편취의 범의', 즉 대금을 갚을 의사나 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타인을 속여 재물을 편취하려는 의도가 있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단순히 채무를 이행하지 못했다고 해서 모두 사기죄가 되는 것은 아니며, 대법원은 피고인의 재산 상황, 채무 부담 정도, 변제 노력, 물품 사용처 등 여러 객관적인 사정을 종합하여 편취 범의를 판단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179조 제1항 제8호의2는 '회생절차개시신청 전 20일 이내에 채무자가 계속적이고 정상적인 영업활동으로 공급받은 물건에 대한 대금청구권'을 공익채권으로 규정합니다. 공익채권은 회생담보권이나 회생채권보다 우선하여 변제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 조항은 피고인이 대금을 지급할 의사가 전혀 없었다기보다는 회생 절차를 통해 채무를 변제하려 했다는 정황 중 하나로 고려되었습니다.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4항은 항소법원이 항소 이유가 없다고 인정될 때 항소를 기각하는 근거가 되는 조항으로, 이 사건에서는 검사의 항소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원심의 무죄 판결이 유지되었습니다. 이는 형사 재판에서 피고인의 유죄가 '합리적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어야 한다는 원칙이 다시 한번 확인된 사례입니다.
기업이 재정적 어려움으로 회생 절차를 고려하는 상황에서 물품을 계속 공급받아야 할 경우, 사기 혐의를 피하기 위해 몇 가지를 유념해야 합니다. 첫째, 채권자에게 회사의 재정 상황과 회생 계획에 대해 투명하게 설명하고 소통하려는 노력을 보일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납품받은 물품이 실제로 사업 활동에 필수적으로 사용되었고, 그 물품으로 인해 매출이 발생했음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단순히 재고를 늘리기 위해 물품을 대량으로 매입한 것으로 비춰질 경우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셋째, 특정 채권자에게만 이례적으로 매입 물량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거래처와의 매입 추이를 통해 정상적인 영업 활동의 일환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 사기 의도 없음을 증명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넷째,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상 회생 절차 개시 신청 전 일정 기간 내에 공급받은 물품 대금이 공익채권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향후 회생 절차를 통해 채무를 변제하려는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는 것도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