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
이 사건은 은행원이 외국인의 계좌를 개설해주고 통장과 체크카드를 직접 본인에게 전달하지 않아, 해당 계좌들이 보이스피싱 범죄에 이용된 혐의로 기소된 사건입니다. 원심에서는 피고인에게 유죄를 선고하였으나, 항소심 법원은 피고인이 계좌가 범죄에 이용될 것을 미리 알았거나 용인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J은행에서 은행원으로 일하던 피고인 A는 2018년 7월경 중국인 H, I로부터 계좌 개설 부탁을 받았습니다. 당시 J은행은 외국인 영업실적을 높이기 위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피고인은 이 실적을 올리기 위해 H, I가 이미 출국한 사실을 확인하지 않은 채 그들의 명의로 계좌를 개설했고, 개설된 통장과 체크카드를 H, I 본인이 아닌 성명불상자에게 전달했습니다. 이 계좌들은 이후 보이스피싱 범죄에 이용된 것으로 드러나, 피고인은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검찰은 피고인이 금융기관 종사자로서 대포통장 및 보이스피싱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정해진 절차를 지키지 않았으므로 범죄에 이용될 것을 알았다고 주장했습니다.
피고인인 은행원이 외국인 명의의 계좌가 보이스피싱 등 범죄에 이용될 것을 미리 알면서 접근매체(통장, 체크카드)를 전달했는지, 즉 범죄에 대한 '미필적 고의'가 있었는지가 주요 쟁점이었습니다.
항소심 법원은 피고인이 계좌 개설 과정에서 일부 부주의한 점은 있으나, 해당 계좌가 범죄에 이용될 것을 인식했거나 그 위험을 용인했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검사가 제기한 양형부당(형량이 가볍다는 주장) 항소도 피고인의 무죄 선고로 인해 기각되었습니다.
항소심 법원은 피고인이 범죄에 이용될 것을 알면서 접근매체를 전달했다는 점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보아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이는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따른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합니다.
이 사건은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여부가 쟁점이었습니다. 전자금융거래법은 접근매체를 사용 및 관리함에 있어서 범죄에 이용할 목적이나 범죄에 이용될 것을 알면서 접근매체를 보관, 전달, 유통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행위자의 '고의', 특히 '미필적 고의'의 입증 여부입니다.
'미필적 고의'는 범죄 사실이 발생할 가능성을 인지하고, 그러한 위험을 용인하는 내심의 의사가 있을 때 인정됩니다. 법원은 행위자의 진술보다는 외부에 나타난 행위의 형태와 상황 등 구체적인 사정을 기초로 하여 일반인의 관점에서 행위자의 심리 상태를 추정합니다. 하지만 검사는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하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증거를 제시해야 하며, 이러한 증거가 부족할 경우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가더라도 무죄로 판단해야 한다는 원칙(대법원 2004도74 판결 참조)이 적용되었습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피고인이 외국인 계좌 개설 문의를 받고 출장을 간 과정이나 당시 은행 내부 규정을 고려했을 때, 범죄를 의심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었으며, 신분증표 진위확인 등이 필수적인 절차가 아니었던 점 등을 종합하여 피고인에게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입니다.
금융기관 종사자들은 계좌 개설 시 관련 법규와 내부 지침을 철저히 준수해야 합니다. 특히 외국인 고객의 경우 신분 확인, 출입국 사실 조회, 국내 주소 확인, 그리고 접근매체(통장, 카드)의 직접 본인 교부 등 모든 절차를 더욱 신중하게 진행해야 합니다. 실적 달성이나 편의를 위해 절차를 생략하거나 타인에게 접근매체를 전달하는 행위는 범죄 연루 가능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비록 이 사건에서는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지 않아 무죄가 선고되었지만, 절차상 부주의는 언제든 심각한 법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