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배상 · 의료
신생아 A와 그 부모가 J병원의 유도분만, 흡입분만 과정에서의 주의의무 위반, 치료 지연, 설명의무 위반으로 인해 A가 저산소성 뇌손상을 입었다며 병원 운영자를 상대로 13억여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의료진의 과실을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보아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습니다.
산모 C는 2019년 2월 26일 임신 39주 3일 차에 J병원에 입원하여 유도분만을 진행했습니다. 분만 2기 중 태아 심박동이 감소하며 태아 곤란증이 의심되었고, 의료진은 흡입분만을 시도한 후 응급 제왕절개술을 시행하여 원고 A를 출산했습니다. 출생 직후 A는 활동성이 약하고 호흡 곤란 증세를 보여 산소 공급 및 앰부 배깅 등의 조치를 받았으나, 상태 악화로 당일 K병원으로 전원되었습니다. K병원에서 A는 저산소성 허혈성 뇌병증 진단을 받았고, 이로 인해 중증도의 발달 지연과 노동능력 75% 상실이라는 영구적인 신체 장애를 겪게 되었습니다. 원고 측은 J병원 의료진이 아두골반불균형 상태에서 부적절하게 유도분만을 시행하고 무리한 흡입분만을 하였으며, 신생아의 이상 증상 발생 후 상급병원 전원이 지연되어 치료 기회를 놓쳤고, 유도분만 및 흡입분만의 위험성에 대한 설명의무를 다하지 않아 A에게 뇌손상이 발생했다며 J병원 운영자 E를 상대로 1,363,643,116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신생아 A의 저산소성 뇌손상이 병원의 유도분만 및 흡입분만 시행 과정에서의 부적절한 의료 조치, 치료 지연, 또는 설명의무 위반으로 인해 발생했는지 여부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며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하도록 판결했습니다.
법원은 피고 병원 의료진의 유도분만 선택이 의학상 시인될 수 없을 정도로 불합리하다고 보기 어렵고, 무리한 흡입분만으로 인한 과실이나 신생아 이상 증상 발생 후 치료 지연 또한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제왕절개술이 필요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질식분만을 보조하는 유도분만이나 흡입분만의 위험성에 대해 별도로 설명할 의무가 없다고 보아 원고의 모든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본 판례는 의료 행위의 재량권, 주의의무의 범위, 그리고 설명의무의 한계에 대한 법리를 적용했습니다.
의료 행위의 재량권 및 주의의무: 대법원은 분만 담당 의사가 질식분만을 할 것인지 제왕절개분만을 할 것인지는 의학상 시인될 수 없을 정도로 불합리하지 않은 한 원칙적으로 의사의 재량에 속한다고 봅니다 (대법원 1999. 10. 22. 선고 98다31363 판결, 2005. 10. 28. 선고 2004다13045 판결, 2007. 11. 29. 선고 2005다60352 판결 등 참조). 그러나 의사는 만기 태아 심박동 감소 등 태아 곤란증을 의심할 만한 상황이 생기면 즉시 산소 공급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태아 상태를 관찰하며, 호전되지 않을 경우 응급 제왕절개술 등 조치를 취해야 할 주의의무를 부담합니다 (대법원 2005. 10. 28. 선고 2004다13045 판결 참조). 이 사건에서 법원은 유도분만 선택이 의료진의 재량 범위 내에 있었고 태아 곤란증 발생 시 적절한 응급 조치 및 전원 결정이 이루어졌다고 판단했습니다.
설명의무 위반: 의사는 환자에게 수술 등 침습적 의료 행위를 할 경우 환자나 법정대리인에게 질병 증상, 치료 방법, 예상 위험 등을 설명하여 의료 행위를 선택할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이를 위반하면 위자료 등의 손해배상 책임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대법원 2010. 6. 24. 선고 2007다62505 판결 등 참조). 하지만 질식분만이 가장 자연스럽고 원칙적인 분만 방법인 경우, 의사가 산모에게 질식분만 시 발생할 수 있는 위험 등을 설명하지 않았다고 하여 설명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흡입분만과 같이 질식분만의 보조 수단 또한 제왕절개수술이 필요할 정도의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개연성이 있다고 볼 자료가 없는 한, 그 위험성을 별도로 설명할 의무는 없다고 봅니다 (대법원 2011. 3. 10. 선고 2010다72410 판결 참조). 본 판례는 이 법리에 따라 유도분만이나 흡입분만의 위험성에 대한 별도 설명의무 위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의료 소송에서 의료진의 과실을 입증하는 것은 난이도가 높은데 이 사건에서도 진료 기록 감정 결과, 전문심리위원의 의견 등 전문적인 의학적 판단이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되었습니다. 분만 방법 선택은 의학상 시인될 수 없을 정도로 불합리한 경우가 아니라면 의료진의 재량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태아 곤란증 등 이상 징후 발생 시 의료진의 대처가 적절했는지 여부는 산소포화도, 심박동 등 생체 징후 변화와 의료 기록을 통해 판단됩니다. 분만 직후 의료진의 신속한 응급조치와 경과 관찰 후 전원 조치까지의 시간이 의학적으로 부적절하지 않았다고 본 판례입니다. 의료 기록에 흡입분만 관련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점이 문제가 되었으나 의료 기록 불기재 또는 부실 기재 자체가 곧바로 의료 과실로 추정되지는 않으며 구체적인 주의의무 위반 사실을 입증하기 어렵다면 과실이 인정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설명의무는 중대한 결과가 예상되는 침습적 의료 행위 시 중요하게 적용되지만, 질식분만이 원칙적인 분만 방법이거나 그 보조 수단으로 사용되는 경우, 제왕절개술이 필요할 정도의 중대한 위험 개연성이 없다면 해당 보조 수단의 위험성까지 별도로 설명할 의무는 없다고 판단될 수 있습니다. 신생아 뇌손상의 원인이 출산 과정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주산기 전 요인일 가능성도 의학적으로 고려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