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레벨4 자율주행차 제도를 마련하며 제도적 기반을 갖추었으나 시장 활성화는 여전히 미미한 상태입니다. 미국과 중국이 각각 민간과 정부 주도의 거대한 투자 및 실증으로 이 분야를 주도하는 가운데 우리나라는 충분한 투자와 시장 수요의 부족으로 성장 속도가 더디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국내 자율주행 스타트업 오토노머스에이투지가 약 820억원 규모의 투자를 받았음에도 미국 주요 자율주행 업체 초기 투자 규모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은 자본력 한계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자율주행차 분야가 당면한 가장 큰 걸림돌은 기술 기반 구축을 위한 충분한 데이터 확보와 실증 기회 부족입니다. 국내 자율주행차 상시 운행 차량 수가 200대에 못 미치는 반면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중국 주요 도시에서는 수천 대가 운행되어 데이터 축적과 기술 고도화가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유민상 상무가 지적하듯이 자율주행차 활성화를 위해서는 정부가 기술 실증과 소비 수요를 동시에 촉진할 수 있는 정책적 지원이 절실합니다.
미국은 ‘네거티브 규제’ 체계에서 금지하지 않는 한 모든 신기술과 사업이 입법 허용된다는 원칙 아래 기업 주도의 혁신과 투자가 활발하게 이루어집니다. 반면 중국은 특정 도시를 지정해 국가가 직접 자율주행 기술 실증과 상용화를 지원하며 수조 원에 달하는 대규모 정부 투자를 통해 시장 주도권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각국이 차별화된 정책과 거대자본으로 자율주행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과 달리, 한국은 법 제도만 갖추고 민간투자와 실증 지원은 아직 부족한 실정입니다.
자율주행 승용차가 폭넓게 보급되기까지 아직 극복해야 할 기술적·경제적 장벽이 크므로 초기 상용화는 운송사업자와 정부가 주도하는 대중교통 분야가 적합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이미 고가의 전기버스와 수소버스가 도입되고 보급되는 현실은 대중교통 시장이 기술변화를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정부가 법제화한 레벨4 자율주행차 인증제도 또한 대중교통 및 물류 운송용에 방점을 두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회의 급격한 고령화와 인력난 문제는 자율주행 대중교통 도입을 촉진하는 중요한 배경입니다. 고령 운전자의 증가와 운전자 부족 문제를 보완하며 사회 안전망으로서 자율주행 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은 자명합니다. 완벽한 기술 완성도를 기대하기 어렵더라도 사회적 합의를 통한 단계적 운행 허용과 보험 체계 구축이 시급합니다.
정부는 '네거티브 규제' 방식 확대를 국정 과제로 삼아 법률의 규제 대상과 범위를 축소하는 한편 산업 친화적이고 국민 안전을 고려한 새로운 해석을 통해 현행 제도를 적극적으로 운용하고 있습니다. 법률의 공백에서 오는 규제는 점차 해소되면서 자율주행차 산업의 운영 효율성 향상과 실증 기회 확대에 긍정적 변화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국민 안전과 산업 발전의 균형을 맞추는 법률적 논의와 시장 환경 조성이 앞으로 중요한 과제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