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매매/소유권 · 임대차
온라인 구매와 비대면 소비가 확산되면서 상가에 대한 인기가 시들었다고는 합니다. 하지만 상권이 이미 안정적으로 들어선 곳은 여전히 높은 수익률을 보이고, 수억 원의 권리금이 형성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전문임대업체가 MD(Merchandising Development)를 통해 상권을 세밀하게 구성한 대형 테마시설이나 복합상업시설의 상가는 물론이고, 아파트 단지에 붙어 있는 작은 상가에도 업종 제한이 있습니다. 업종 제한은 동일 업종의 과다 경쟁을 방지하고 개별 점포의 매출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며 업종 간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기 위한 취지입니다.
따라서 업종별로 나눠서 분양을 하고 분양계약서에도 이를 명시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분양 후의 상가 관리규약에서도 특정 업종의 개수를 제한하는 내용을 명시하므로 업종 제한은 대체로 잘 지켜지는 편입니다. 굳이 계약서에 명시하지 않아도, 한두 번만 상가를 둘러보면 식당자리, 카페자리, 학원자리 등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다만 분양 계약서에 업종이 명시하지 않거나 상가 주인이 바뀌면서 업종 제한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으면 업종 제한이 문제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양계약서나 매매계약서에 업종지정을 표시하지 않아도 모든 업종의 영업이 가능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보면 사실상 업종 지정을 아무런 의미가 없고 상권은 유지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업종이 지정된 점포의 경우 당해 지정 업종 이외의 업종을 할 수 없게 되어 오히려 더 불이익을 입게 되서 불합리 하고요. 따라서 지정 업종이 없는 점포에서는 다른 점포의 지정 업종을 제외한 나머지 업종의 영업만을 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하고 그것이 업종 지정의 취지입니다.
업종 제한은 특히 약국에서 많이 문제가 됐습니다. 처방전 없이 약만 구매하는 경우는 드물고, 약국은 병원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내과, 소아과, 이비인후과와 같이 환자 수와 처방이 잦은 진료과의 경우 병원에 근접하고 접근성이 편한지가, 그 약국의 흥망성쇠를 좌우합니다. 그래서 하나의 상가에 여러 병원이 들어오고, 약국의 개수는 1~2개로 미리 정해져 있습니다. 물론 대학병원에 인접한 상가와 같이 특수한 경우에는 약국의 수는 훨씬 많습니다.
A는 수원의 상가(근린생활시설) 106호를 분양받고, 그곳에서 약사인 아내가 약국을 개설했습니다. A가 받은 분양계약서의 권장 업종란에는 '약국(독점)'이라고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 후, 음식점이던 112호에서 B가 약국을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상가의 5층에는 이비인후과, 4층에는 성형외과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B의 약국은 이비인후과 원장의 동서가 임대한 것이었습니다. 이에 A는 즉시 B에게 112호 점포에서 약국 영업을 중단할 때까지 매월 천만 원의 손해를 배상하라고 소송을 냈습니다. 비싸게 분양받아 어렵게 확보한 약국 독점권이 침해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1]
하급심은 A가 받은 분양계약서의 권장 업종란에 ‘약국(독점)’이라고 기재된 것만으로는 112호 점포에서 약국을 개설하여 영업하는 것을 금지할 권리가 있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즉, 106호와는 달리 112호 점포가 분양받을 때 권장 업종란이 공란이었기 때문에 A에게 약국 운영의 독점을 보장할 수 없다는 취지였습니다. 하지만 대법원 판단은 달랐습니다.[2]
대법원은, 업종을 정하여 분양한 후 점포를 양수하거나 임차한 자는 상가 점포 입점자들 간에 분양계약에서 약정한 업종 제한의 의무를 수인하기로 동의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112호는 승강기 바로 옆이라 처방전을 취급하는 약국을 개설하기 좋은 위치였지만 그 동안 계속 음식점으로만 운영되었고(심지어 음식점은 장사가 잘 되지도 않았습니다), 분양 후 3년까지도 약국으로 운영되지 않았으며 누구도 약국으로 운영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사실상 A의 약국 독점권을 인정한 것이지요.
다음 사례를 보겠습니다. 서울 광진구의 39층 대형 복합쇼핑몰에서 C 등은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데 분양 후부터 줄곧 전시장 및 홍보관, 웨딩잡화·혼수·안경 등으로 사용되던 1층의 목 좋은 자리가 비자, 쇼핑몰 측은 관리단 대표회의를 통해 해당 자리에 스타벅스를 유치하기 위해 ‘커피숍’으로 업종을 변경했습니다. C 등은 스타벅스가 입점하면 심각한 매출 감소와 고객 이탈을 초래할 것이라며 영업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습니다. 반면, 스타벅스를 입점한 D는 관리단 승인이 있기에 문제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C 등의 손을 들어주고 영업정지가처분을 인용했습니다.[3]
대법원은 스타벅스를 유치하려면 관리단의 승인만으로는 부족하다 했습니다 업종의 지정 또는 변경에 관한 사항은 당해 업종에 관한 구분소유권의 권리에 영향을 미치므로 기존 구분소유자인 C 등의 동의를 얻었어야 하는 것이지요.
다른 사례로, 분당의 한 주상복합 상가에서 미용실(00살롱)을 운영하던 E는 스포츠동에서 F가 휘트니스센터 내에서 미용실을 운영한다는 사실을 알고 영업 금지를 요구하는 소송을 냈습니다. F는 자신의 미용실이 휘트니스 회원 대상의 피부 관리와 토탈케어를 전문으로 하며, 헤어 부분은 소규모라 E의 영업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법원은 E의 손을 들어주며 F에게 미용업을 하지 못하도록 판결했습니다.[4] 상가 내 업종 제한은 묵시적으로 동의된 것이어서 준수해야 한다는 겁니다.
업종 제한은 같은 업종임을 전제로 합니다. 반드시 업종이 완전히 동일할 필요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편의점과 아이스크림 등 할인점은 품목이 겹치는 음식료품을 판매하고 인근 주민들을 주된 고객층으로 공유하기에 동종영업으로 볼 수 있습니다.[5]
판례는 업종 제한에 대해 상당히 엄격하게 판단하는 경향입니다. 하지만 선제적으로 기존 상가를 인수하더라도 기존 업종 제한 규정을 꼼꼼히 따져봐야 합니다. 분양계약서와 매매계약서에 업종 보장 문구가 있는지 확인하고, 상가 계약서에 이를 보장받는 특약을 포함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1] 한편, 해당 소송에서는 약사인 A의 처와 의사인 이비인후과 및 성형외과 원장과의 간통으로 인한 손해배상도 함께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논외로 합니다.
[2] 대법원 2009. 12. 24. 선고 2009다61179 판결
[3] 대법원 2006. 7. 4. 선고 2006마164, 2006마165 판결
[4] 서울고등법원 2017. 4. 20. 선고 2016나2057831 판결, 상고하지 않아 확정되었습니다.
[5] 대법원 2023. 12. 14. 선고 2023다270047 판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