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권/채무 · 행정
D은 A 주식회사에 상당한 채무를 지고 있던 중, 과거부터 금전 관계가 있던 피고 C에게 6억 원의 지불각서를 작성해 주었습니다. 피고 C는 이 지불각서를 근거로 D의 신용카드 결제대금 채권을 압류 및 추심하였습니다. 이에 원고 A 주식회사는 D이 무자력 상태에서 피고에게 지불각서를 작성해준 것이 자신의 채권자들을 해하는 사해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지불각서 작성 행위의 취소 및 5,000만 원의 가액배상을 청구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이 사건 지불각서 작성 행위가 사해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습니다.
D은 2014년 3월 12일 원고 A 주식회사에 대한 양수금 채무 5,500만 원 및 지연손해금의 지급명령이 확정되었고, 2017년 12월 18일 기준 총 채권액은 5억 5,323만 7,466원에 달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D은 2015년 3월 31일 피고 C에게 과거 차용한 금전 6억 원을 2016년 12월 31일까지 변제하겠다는 내용의 지불각서를 작성해 주었습니다. 이후 피고 C는 이 지불각서를 근거로 6억 원 및 지연손해금의 지급명령을 받아 확정시키고, 이를 토대로 D이 신용카드 회사들에 대해 가지는 신용카드 결제대금 채권을 압류 및 추심했습니다. 이에 원고 A 주식회사는 D이 무자력 상태에서 피고 C에게 지불각서를 작성해준 행위가 D의 일반 채권자들을 해치는 '사해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이 지불각서 작성 행위의 취소와 피고 C에게 5,000만 원의 가액배상을 청구하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채무자가 채무초과 상태에서 기존 채무에 대한 지불각서를 작성해준 행위가 다른 채권자들을 해치는 '사해행위'에 해당하는지, 그리고 이 지불각서에 기초한 채권 압류 및 추심이 사해행위로 인해 발생한 것인지가 이 사건의 주요 쟁점이었습니다.
법원은 원고 A 주식회사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고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하도록 판결했습니다.
법원은 채권자취소권의 대상이 되는 것은 법률행위인 점을 고려하여, 원고의 청구를 이 사건 지불각서에 따른 약정의 취소를 구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법원은 채무자가 기존 채무에 관하여 특정 채권자에게 강제집행을 승낙하는 공정증서를 작성하여 사실상 우선변제를 받게 하는 경우 사해행위가 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를 언급했으나, 이 사건 지불각서의 내용은 D이 피고에게 기존 채무 원리금 6억 원을 변제하겠다는 취지에 불과하며, 이 약정 자체로 다른 채권자들의 공동담보가 감소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피고가 지급명령을 신청하고 채권을 압류 및 추심한 것은 채권자로서 행사할 수 있는 일반적인 권리 행사로 보았고, 이것만으로 약정이 사해행위가 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원고는 지불각서의 채무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거나 초과하여 약정되었다고 주장했으나, 이를 뒷받침할 증거가 부족했고, 오히려 피고가 D에게 2억 원을 대여했다는 공정증서 상의 채무 원리금이 6억 원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따라서 법원은 이 사건 지불각서에 따른 약정이 사해행위라고 볼 증거가 없다고 판단하여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이 사건은 채무자가 자신의 채권자 중 한 명에게 지불각서를 작성해 준 행위가 다른 채권자의 이익을 해치는 '사해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핵심이었습니다.
채권자취소권 (민법 제406조): 채무자가 채권자를 해할 것을 알고 재산권을 목적으로 한 법률행위(사해행위)를 한 경우, 채권자는 그 행위의 취소 및 원상회복을 법원에 청구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이 권리는 채무자의 재산이 줄어들어 채권자들이 채무를 변제받기 어렵게 된 경우에 행사할 수 있습니다.
사해행위의 판단 기준:
이행기가 도래한 기존 채무 변제 약정의 사해성: 대법원 판례는 이행기가 도래한 기존 채무에 대한 변제 약정이나 어음 발행 행위 자체는 일반적으로 사해행위로 보지 않는다는 입장입니다. 채무자가 특정 채권자에게 채무를 변제하겠다는 약정은 채무 본래의 의무를 이행하는 것으로, 그 자체로 다른 채권자들의 공동담보를 감소시키는 행위로 평가되기 어렵습니다.
강제집행 편의 제공의 사해성: 다만, 무자력 상태의 채무자가 기존 채무에 관하여 특정 채권자에게 강제집행을 승낙하는 취지가 기재된 공정증서를 작성해 주어, 그 채권자가 다른 일반 채권자보다 손쉽게 강제집행 절차로 나아갈 방편을 마련해 준 경우에는 사해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대법원 2010. 4. 29. 선고 2009다33884 판결 등). 이는 단순한 채무 변제 약정을 넘어 특정 채권자에게 부당한 우선변제 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D이 피고 C에게 작성해준 지불각서는 단순히 기존 채무를 변제하겠다는 약정에 해당하며, 피고 C가 이를 근거로 지급명령을 받아 채권을 압류 및 추심한 것은 일반적인 채권 행사에 불과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지불각서의 내용이 실제 채무와 다르다는 증거도 부족했으므로, 사해행위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본 것입니다.
채무자가 기존 채무에 대해 지불각서를 작성하거나 채무변제 약정을 하는 행위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다른 채권자들을 해하는 사해행위로 간주되기 어렵습니다. 이는 채무자가 빚을 갚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고, 해당 약정이 특정 채권자에게만 부당한 이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면 정당한 채무 변제 행위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지불각서가 실제 존재하지 않는 채무를 만들거나 실제 채무액을 현저히 초과하는 금액을 약정하는 경우라면 사해행위로 평가될 여지가 있습니다. 따라서 지불각서 내용이 실제 채무 관계와 부합하는지 꼼꼼히 확인해야 합니다. 또한, 단순히 지급명령을 통해 채권을 압류 및 추심하는 것은 채권자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반적인 권리 행사로 보므로, 이러한 행위 자체가 사해행위를 구성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사해행위가 인정되려면 채무자의 행위로 인해 채권자들의 공동담보가 실제로 감소하고, 채무자가 이러한 결과를 의도했음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