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배상 · 의료
망인 E는 소세포폐암으로 F병원에서 뇌 전이 진단 후 뇌종양 제거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 후 망인은 뇌실염에 감염되어 추가 수술 및 치료를 받았으나, 결국 전이성 뇌종양 및 뇌실염에 의한 뇌간기능부전으로 사망했습니다. 망인의 가족들은 병원 의료진이 감염 예방 조치를 소홀히 하고, 수술 후 감염 진단 및 치료를 지연했으며, 부적절한 수술 기법을 사용하고, 감염 가능성에 대한 설명 의무를 위반했다고 주장하며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법원은 병원 의료진이 표준적인 감염 예방 조치를 취했고, 염증 수치 상승에 대한 경과 관찰 및 조치에 과실이 없었으며, 수술 기법에 문제가 없었고, 설명 의무도 이행했다고 판단하여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습니다.
망인 E는 2017년 7월 피고병원에서 소세포폐암 진단을 받은 후 치료를 이어갔고, 2018년 7월에는 폐암의 소뇌 전이로 방사선 치료를 받았습니다. 2019년 6월 암 재발이 확인되어 항암치료를 받던 중 폐렴이 발생하여 항생제 치료를 받기도 했습니다. 같은 해 11월 10일 심한 어지럼증을 호소했고, 검사 결과 소뇌종양의 진행이 확인되어 11월 27일 제1차 수술(개두술 및 뇌종양 제거술)을 받았습니다. 수술 전 의료진은 망인과 보호자에게 수술 방법, 합병증 등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고 동의를 얻었습니다.
제1차 수술 후 망인은 중환자실을 거쳐 일반 병실로 옮겨졌고, 11월 29일 항생제 투여가 중단되었습니다. 이후 12월 2일 혈액 검사에서 염증 관련 수치(CRP 57.3, ESR 79)가 상승했으나 항생제는 투여되지 않았습니다. 12월 5일 망인이 가슴 통증을 호소하며 흉부 방사선 검사에서 폐렴 의증 소견이 나왔고, 염증 수치(CRP 337, ESR 120)가 더욱 상승하자 12월 6일 호흡기내과로 전과되었습니다.
12월 7일 망인이 심한 두통과 함께 신경학적 이상 증상을 보이자, 의료진은 뇌 CT 및 뇌척수액 검사를 시행한 결과 뇌실염을 의심하고 항생제 투여와 함께 제2차 수술(뇌척수액 체외배액술)을 진행했습니다. 12월 8일에는 지주막하출혈이 확인되어 제3차 수술(상처부위 혈종 제거술)을 받았습니다. 12월 9일 뇌척수액 등에서 폐렴막대균이 검출되었고, 이에 맞는 항생제 치료가 시작되었습니다. 12월 12일 뇌 MRI 검사에서 광범위한 수막뇌염과 뇌실염이 확인되었습니다. 12월 20일 제4차 수술(뇌실외배액관 교체 및 기관절개술)을 받았으나, 망인은 2020년 1월 5일 전이성 뇌종양 및 뇌실염으로 인한 뇌간기능부전으로 사망했습니다. 이에 망인의 배우자와 자녀들이 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피고병원 의료진이 제1차 뇌종양 제거 수술 전후 감염 예방 조치를 미흡하게 했는지 여부, 수술 후 염증 수치 상승에 대한 적절한 경과 관찰 및 조치를 지연한 과실이 있는지 여부, 뇌실외배액관 교체 시 부적절한 수술 기법을 사용했는지 여부, 제1차 수술 후 감염 발생 가능성에 대한 설명 의무를 위반했는지 여부, 그리고 이러한 과실들이 망인의 사망과 인과관계가 인정되는지 여부가 주요 쟁점입니다.
법원은 의료진의 과실 여부를 판단하는 데 있어 △수술 전후 감염 예방 조치의 적절성, △수술 후 경과 관찰 및 염증 수치 상승에 대한 대처의 적절성, △뇌실외배액관 교체 수술 기법의 적절성, △수술 후 발생 가능한 합병증에 대한 설명 의무 이행 여부를 종합적으로 검토했습니다.
먼저, 피고병원 의료진은 제1차 수술 전후 3일간 항생제를 투여하고 피부 소독을 하는 등 표준적인 감염 예방 조치를 취했으며, 수술 부위에서 감염 의심 징후가 관찰되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특히 망인의 뇌실염 원인균인 폐렴막대균은 수술 부위 감염의 일반적인 원인균이 아니며, 망인의 폐암 및 면역력 저하 상태를 고려할 때 체내 내재균이 혈액을 통해 전파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다음으로, 수술 후 염증 관련 수치(CRP, ESR)가 상승했음에도 의료진이 항생제를 투여하거나 뇌 관련 검사를 즉시 시행하지 않은 것에 대해, 법원은 해당 수치 상승이 암의 진행, 수술 후 조직 괴사 등 여러 원인으로 발생할 수 있고, 망인의 경우 폐렴 의증 소견이 먼저 나타났으므로 의료진이 폐렴에 대한 조치를 우선한 것이 잘못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망인이 심한 두통 등 신경학적 이상 증상을 보였을 때 비로소 뇌 CT, 뇌척수액 검사를 시행하고 항생제를 투여한 것은 적절한 조치였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제4차 수술 시 뇌실외배액관을 기존과 같은 궤적으로 삽입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며, 오히려 다른 궤적으로 삽입했음이 인정되어 이 부분 과실 주장도 배척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의료진은 수술동의서에 붉은색 펜으로 감염 발생 가능성을 명시하며 설명했고, 망인의 보호자로부터 동의를 받았으므로 설명 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법원은 피고병원 의료진에게 의료상 과실이나 설명 의무 위반이 없다고 결론 내렸고, 결과적으로 피고가 원고들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고 판결했습니다.
이 사건은 의료 과실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이므로, 의료진의 주의 의무 위반 여부와 그로 인한 손해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가 핵심적으로 다루어졌습니다.
1. 의료 과실 및 주의 의무 의사는 환자의 생명, 신체, 건강을 관리하는 업무의 특성상 환자의 구체적인 증상이나 상황에 따라 위험을 방지하기 위하여 최선의 조치를 취해야 할 주의 의무가 있습니다. 이때 의사의 주의 의무는 의료행위 당시 임상의학 분야에서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고 또 시인되고 있는 의학 상식(의료 수준)을 기준으로 판단됩니다 (대법원 2010. 6. 24. 선고 2007다62505 판결 등 참조). 법원은 이 사건에서 피고병원 의료진이 제1차 수술 전후 3일간 항생제를 투여하고 피부 소독액을 사용하는 등 수술 중 감염을 막기 위한 표준적인 조치를 취했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수술 부위 감염의 주된 원인균은 그람양성균인 반면, 망인의 뇌실염 원인균은 그람음성균인 폐렴막대균으로, 이는 정상 피부의 약 5%에서만 발견되는 균이므로 수술 중 의료진의 과실로 인한 감염보다는 망인 체내에 내재되어 있던 폐렴막대균이 혈행성으로 전파되어 뇌실염이 발생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2. 의료 과실의 입증 책임 의료행위는 고도의 전문적 지식을 필요로 하므로, 일반인으로서는 의사의 의료행위 과정에 주의 의무 위반이 있는지나 주의 의무 위반과 손해 발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지를 밝히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따라서 의료 과실 이외의 다른 원인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간접 사실들을 증명함으로써 의료 과실과 인과관계를 추정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의사의 과실로 인한 결과 발생을 추정할 정도의 개연성이 담보되지 않는 사정을 가지고 막연하게 중대한 결과에서 의사의 과실과 인과관계를 추정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의사에게 무과실의 증명 책임을 지우는 것까지 허용되지는 않습니다 (대법원 2019. 2. 14. 선고 2017다203763 판결 등 참조). 법원은 이 사건에서 망인의 사망이라는 중대한 결과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원고들이 주장하는 의료 과실에 대한 객관적 증거가 부족하고, 망인의 폐암 및 면역력 저하, 폐렴 기왕력 등 다른 가능한 원인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의료진의 과실과 망인의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3. 설명 의무 의료진은 환자에게 의료행위의 목적, 방법, 예상되는 합병증의 내용, 정도 및 대처 방법 등에 관하여 설명하여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는 피고병원 의료진이 망인과 보호자에게 제1차 수술의 합병증 중 감염 발생 가능성에 관하여 붉은색 펜으로 수술동의서에 직접 기재해 가면서 설명하고 동의를 받았다는 사실이 인정되어 설명 의무 위반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의료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합병증이나 감염이 발생하더라도, 의료진의 과실 여부는 해당 의료기관이 일반적인 의료행위 수준과 가이드라인을 준수했는지, 그리고 합병증 발생 후 적절한 진단 및 조치를 취했는지에 따라 판단됩니다.
수술 후 염증 수치가 상승하더라도 이는 감염, 자가면역질환, 조직 괴사 등 여러 원인으로 발생할 수 있습니다. 환자의 기저 질환(예: 암), 수술의 종류, 다른 감염원(예: 폐렴) 등 다양한 요인을 고려하여 의료진이 종합적인 판단을 통해 진단 및 치료를 진행했다면, 무조건적인 과실로 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수술 후 감염의 원인균이 일반적인 수술 부위 감염균과 다르고, 환자의 체내에 이미 존재하던 균일 가능성이 높다면, 수술 중 의료진의 과실로 인한 감염으로 단정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수술 중 감염은 다양한 원인이 있고 현대 의학기술로 완전히 예방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습니다.
의료기관은 수술 전 환자나 보호자에게 수술의 위험성, 예상되는 합병증(감염 포함), 그리고 그 대처 방법에 대해 충분히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때 서면 동의서에 합병증 가능성이 명시되어 있고 설명을 들었다는 서명이 있다면, 설명 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의료 과실을 주장하려면 의료진의 구체적인 주의의무 위반 행위와 그로 인한 손해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입증해야 합니다. 단순히 중대한 결과가 발생했다는 사실만으로 의료 과실이 추정되거나 의사에게 무과실의 증명 책임이 지워지는 것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