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재개발 · 기타 형사사건
건축사 자격은 있으나 건축사사무소 개설신고를 하지 않은 두 피고인이 한 회사와 리노베이션 설계 및 감리 용역 계약을 체결하고, 사무소 개설신고 전 현장 조사, 설계 제안서, 법규 검토서 등 설계 관련 문서를 작성하여 제공한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원심은 벌금형을 선고했으나 항소심은 피고인들의 행위가 건축사법상 ‘설계’에 해당하며 건축사법 위반의 고의도 인정된다고 판단하면서도, 범행 경위와 피고인 중 한 명의 건축사 자격 취득 및 사무소 개설신고가 어느 정도 예정되어 있었던 점 등을 고려하여 형의 선고를 유예했습니다.
F 주식회사가 사옥 리모델링을 위해 피고인들이 운영하는 E 홈페이지를 통해 피고인들과 접촉했습니다. 2020년 12월 10일 피고인들과 F 주식회사는 리노베이션 설계 및 감리 용역 계약을 체결하고 F 주식회사는 피고인들에게 계약금 1천만 원을 지급했습니다. 피고인들은 이 계약 전후로 현장을 방문하여 건축물과 공간 환경을 조사했고, 건축사사무소 개설신고를 하기 전인 2020년 11월 30일부터 2021년 1월경까지 F 사옥 디자인 제안서, 법규 및 제반사항 검토서, 평면도 및 단면도 등 설계 관련 문서를 작성하여 F 주식회사에 제출했습니다. 피고인 B은 2020년 12월 30일 건축사 자격을 취득하고 2021년 1월 18일 건축사 자격 등록을 마쳤으며 2021년 3월 10일에야 건축사사무소 개설신고를 했습니다. 이에 피고인들이 건축사사무소 개설신고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건축사법에 위반되는 설계 및 건축사업 업무를 수행했다는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건축사사무소 개설신고를 하기 전 건축물 현장 조사, 설계 제안서 및 법규 검토서 작성 등의 행위가 건축사법상 ‘설계’ 또는 ‘건축사업’에 해당하는지 여부와, 이러한 행위에 대해 건축사법 위반의 고의가 있었는지 여부가 주요 쟁점이었습니다.
항소심 법원은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피고인들에 대한 형의 선고를 유예했습니다. 이는 피고인들의 행위가 건축사법상 ‘설계’에 해당하며 건축사법 위반의 고의도 인정되지만, 범행 경위, 피고인 B의 건축사 자격 취득 및 사무소 개설신고가 예정되어 있던 점, 전과가 없는 점 등 여러 양형 조건을 참작하여 원심의 벌금형이 다소 무겁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건축사 자격을 가지고 있더라도 건축사사무소 개설신고를 마치기 전에는 건축물의 조사, 기획, 설계 제안서 작성 등 설계에 포함되는 업무를 유상으로 수행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확히 한 판결입니다. 다만, 피고인들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여 형의 선고유예라는 비교적 가벼운 처분을 내렸습니다.
건축사법 제4조 제1항에 따르면 건축물의 건축 등을 위한 설계는 건축사법 제23조 제1항 또는 제9항 단서에 따라 신고를 한 건축사 또는 같은 조 제4항에 따라 건축사사무소에 소속된 건축사만이 할 수 있습니다. 즉, 건축사 자격이 있더라도 건축사사무소 개설신고를 하지 않으면 설계 업무를 할 수 없습니다. 또한 건축사법 제23조 제1항은 건축사가 건축사업을 하려면 시·도지사에게 건축사사무소 개설신고를 해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건축사법 제2조 제3호에서 정의하는 ‘설계’는 건축물의 건축, 대수선, 용도변경, 리모델링 등을 위한 건축물 및 공간환경을 조사하고 건축 등을 기획하는 행위, 설계도서(도면, 구조계획서 등 공사에 필요한 서류)를 작성하는 행위 등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개념입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피고인들이 건축사사무소 개설신고 전에 현장을 방문하여 조사하고, 설계계획, 설계개요, 법규검토, 예상비용, 배치도, 단면도 등이 기재된 제안서와 검토서를 작성하여 제공한 행위가 위 건축사법상의 ‘건축물 등을 조사하고 건축 등을 기획하는 행위’ 또는 ‘공사에 필요한 서류를 작성한 것’에 해당하여 ‘설계’에 해당한다고 보았습니다. 건축사법 제39조의3 제2호 및 제7호는 위와 같은 규정을 위반하여 건축물의 설계 또는 공사감리를 하거나 건축사사무소 개설신고를 하지 아니하고 건축사업을 한 사람에게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본 사건에서는 피고인들이 건축사사무소 개설신고를 하지 않고 유상으로 설계에 해당하는 업무를 수행했으므로, 건축사법 위반의 고의가 인정되어 유죄가 선고되었습니다.
건축사 자격을 취득했더라도 반드시 건축사사무소 개설신고를 마친 후에만 건축물 조사, 기획, 설계도서 작성, 리모델링 설계 등의 업무를 유상으로 수행해야 합니다. 단순히 계약을 위한 준비 행위로 보이는 초기 단계의 현장 방문, 디자인 제안서 작성, 법규 검토서 제공 등도 보수를 받고 이루어졌다면 건축사법상 ‘설계’ 행위에 포함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특히, 계약서에 명시된 설계 기간이 건축사사무소 개설신고 이전으로 설정되어 있거나, 인허가 업무와 별개로 설계 용역비를 지급받는 경우, 초기 단계의 업무라도 건축사법 위반으로 간주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건축사법은 건축물과 공간 환경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고 건축문화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으므로, 관련 법규를 철저히 준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