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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의 중요한 의사결정은 총회에서 이루어집니다. 매년 1회 예산안의 의결 등 중요사항을 보고하기 위해 정기총회가 열립니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조합 임원의 선임을 위한 임시총회에서 중요사항을 결정합니다. 물론 불시 현안은 대의원회의 결의로 총회 결의를 갈음할 수는 있으나, 대체로 정관 변경, 임원의 선임과 해임, 예산 외에 조합원에게 부담이 되는 계약은 반드시 총회에 상정하여 조합원들이 직접 결정해야 합니다.
총회에서의 의결은 조합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조합원의 과반수 찬성으로 이루집니다(도시정비법 제45조 제3항). 다만, 정관을 변경하거나 사업시행계획서, 관리처분계획의 수립 등 중요사항은 조합원 과반수의 찬성을 요하며, 정비사업비가 10% 이상 증가하거나, 정관에서 조합원의 제명·탈퇴 및 교체 등 자격을 제한하거나 정비구역의 위치 및 면적 변경을 포함하는 안건은 조합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합니다(도시정비법 제40조 제3항 및 제45조 제3항).
전 재산이 달릴 수도 있는 중대한 결정이지만, 조합 총회에 직접 참석하여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조합원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조합은 조합원들을 독려하여 서면결의서를 받거나 총회에 참석하도록 유도해 총회 결의를 위한 정족수를 충족시키는 것이 주요 업무입니다.
하지만, 정비사업의 조합원 수는 적게는 수백 명에서 많게는 수천 명에 이를 정도로 많습니다. 그러나 각종 현안에 크게 관심이 없는 조합원을 출석시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조합은 외부 용역 업체(Outsourcing, 소위 ‘OS 요원’)를 고용해 조합원으로부터 서면결의서를 징구합니다.
용역업체를 고용하며 경품까지 제공해 위법성 논란이 된 사례도 있었지만, 법원은 대체로 OS 요원이 단순히 서면결의서를 받아 전달한 행위 자체는 선거의 자유와 공정을 침해하지 않았다고 봅니다. OS 요원이 없으면 조합의 주요 현안을 처리할 수 없는 현실을 고려해 효력을 인정하는 겁니다. 그래서 많은 조합이 주요 안건을 통과시키기 위해 용역업체를 고용하여 조합원으로부터 서면결의서를 받아 정족수를 채우는 데 상당한 비용을 지출하고 있고, 결국 조합의 사업비 증가로 이어진다는 볼멘소리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합 총회가 사실상 조합이 원하는 방향의 서면결의로 대체된다면, 의견 제시 및 토론이 이루어지는 총회의 기본 취지에도 반합니다. 그래서 도시정비법은 기본적으로 조합원 10%의 총회 직접 출석을 요구합니다. 여기서의 직접 출석은 서면결의로 갈음하지 못하며, 본인이 직접 참석하거나 대리인을 보내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창립총회, 시공자 선정 취소를 위한 총회, 사업시행계획서 작성 및 변경, 관리처분계획 수립 및 변경을 의결하는 총회의 경우에는 조합원 20%의 직접 출석이 필요하고, 시공자 선정 총회의 경우 조합원 과반수의 직접 출석을 요구합니다(도시정비법 제45조 제7항).
그러나 유례가 없던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당국의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른 5인 이상 집합 금지 명령으로 조합 총회를 위한 직접 출석 요건을 충족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결혼식이나 장례식에서도 하객을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모든 교회와 성당에서도 대면 예배가 금지되거나 비대면으로 전환되면서 조합 총회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법에도 2021년 11월경 전자총회 제도가 급하게 도입되었습니다. 전자총회에서는 재난 등의 사유로 시장·군수가 조합원의 직접 출석이 어렵다고 인정하는 경우, 전자적 방법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정족수를 산정할 때 이를 직접 출석으로 간주했습니다(도시정비법 제45조 제8항). 하지만 이 제도는 재난 상황에서만 예외적으로 허용되었고, 시장·군수 등도 소극적으로 대응했기에 현실적인 활용이 어려웠습니다. 조합은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른 집합금지를 위반하지 않기 위하여 아파트 주차장, 야외 공영주차장, 심지어 선착장까지 활용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총회를 개최하려 했지만, 직접 출석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총회 자체를 열 수 없는 혼란이 발생했습니다.
일례로 부산의 한 재개발 조합(2,302명 조합원)은 2021년 1월 30일, 시공사와의 계약을 해지하기 위한 총회를 ‘유튜브 생중계’라는 신박한 방식을 통해 진행했습니다. 조합은 유튜브를 통해 라이브 방송을 송출하고 비대면으로 질의를 받아 절반 이상의 동의를 얻어 시공사 계약을 해지했지만, 반대 조합원이 유튜브 총회의 효력을 문제 삼아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습니다. 재판부는 유튜브가 일방적인 송출 방식이며, 반대 의견을 제시할 방법은 채팅뿐이고 접근성도 제한적이라 직접 출석과 동등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해 총회의 효력을 부인했습니다(부산지방법원 2021. 5. 3.자 2021카합10195 결정).
조합은 유튜브를 통해 의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실시간 채팅이 오갔으므로 의견 제시 및 토론이 이루어졌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전자적 방식의 심의와 토론을 허용한다고 볼 만한 충분한 자료가 제출되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특히 채팅에 참여한 조합원의 수가 극히 적었고, 총회 속기록과 유튜브 캡처 화면에서도 안건에 대한 실질적인 의견 제시나 토론이 이루어진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사회자는 미리 배부한 책자의 내용을 읽으며 '질문이 있으면 질문을 부탁드리고, 질문이 없으시면 질문이 없다고 답변을 부탁드린다'고 안내했고, 유튜브 채팅창에서 일부 조합원이 질문이 없다고 답하자 곧바로 심의를 마쳤습니다, 직접 출석을 원하는 조합원들이 총회 장소에의 출입 자체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는 점도 조합에게 불리하게 작용했습니다.
유튜브 총회의 효력이 부인된 것은 생중계 형식 자체보다는 조합원의 실질적인 의견 제시와 토론의 기회가 제공되지 않았다는 점이 결정적인 이유였습니다. 그러한 기회가 보장되었다면, 결론이 달라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다.
결국, 2024년 12월에 도시정비법에 온라인 총회가 드디어 일반적, 전면적으로 도입되었습니다(도시정비법 제44조의2). 온라인 총회는 접속 기록이 보관되고 참석 여부를 확인할 수 있으면 직접 출석으로 간주됩니다. 이러한 온라인 총회는 2025년 12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며, 최근 정부는 규제샌드박스를 통해 법 시행 전에도 한시적으로 동의서 징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실제로 조합(집행부)이 이러한 온라인 총회를 선호할지 여부입니다. 기존의 OS 요원을 통한 서면결의서 징구 및 최소한의 직접 출석을 통한 총회는 밀실 총회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조합 의사결정을 효율적으로 진행하는 측면이 있었습니다.
반면, 온라인 총회가 도입되면 접근성이 향상되어 의사결정이 더뎌지거나 조합원 간 갈등이 심화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조합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장년층의 디지털 접근성이 떨어져 이들의 의견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거라는 우려의 시선도 있습니다. 시행 전까지 충분한 계도와 준비를 통해 온라인 총회가 성공적으로 정착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