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정
국가철도공단이 발주한 철도 궤도 부설공사 입찰에서 여러 건설사들이 사전에 공구를 배분하고 투찰 가격을 조율하는 방식으로 담합하여 공정거래법을 위반했습니다. 이에 국가철도공단은 담합으로 인해 실제보다 높은 가격으로 공사 계약이 체결되어 손해를 입었다며 피고 회사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법원은 피고들의 담합 행위를 인정하고, 이로 인해 원고에게 손해가 발생했음을 확인하여 피고들이 공동으로 약 122억 7천만 원 상당의 손해배상금과 지연이자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원고인 국가철도공단은 'O~P 간 2개 공구 궤도부설 기타공사' 입찰을 발주했습니다. 해당 입찰은 공동수급체 구성 및 1사 1공구 낙찰 방식이 적용되었습니다. 피고 회사들은 입찰 전 'Q(궤도1공구)'는 피고 E 컨소시엄이, 'R(궤도2공구)'는 피고 A 컨소시엄이 낙찰받기로 합의하고, 투찰 전날 피고 A 관계자가 피고 E 관계자에게 투찰할 가격을 알려주는 방식으로 가격을 조율했습니다. 그 결과 2012년 6월 29일 가격 개찰에서 피고 E 컨소시엄과 피고 A 컨소시엄이 각 공구의 낙찰자로 결정되었고, 원고는 이들과 총 303,334,900,000원에 공사 도급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후 검찰 수사를 통해 피고들의 담합 행위가 드러나 관련 임원들이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공정거래위원회도 2017년 11월 21일 피고들의 담합 행위가 위법하다고 의결했습니다(피고 A, B, D는 자진신고로 과징금 면제). 이에 원고는 피고들의 담합으로 인해 실제보다 높은 가격으로 계약을 체결하여 손해를 입었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하게 되었습니다.
피고들의 입찰 담합 행위로 인해 원고에게 손해가 발생했는지 여부 및 담합 행위와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 인정 여부, 원고의 손해배상청구권 소멸시효 완성 여부, 손해액 산정 방법의 적정성 및 피고들이 주장하는 손해액 산정 오류 여부, 피고 A 등이 공익신고자에 해당하므로 손해배상책임이 면제되거나 감경되어야 하는지 여부, 피고들의 책임이 제한되어야 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되었습니다.
법원은 피고들이 공동하여 원고에게 12,272,773,391원 및 이에 대하여 2012년 7월 16일부터 2021년 5월 27일까지 연 5%의,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12%의 각 비율로 계산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원고의 나머지 청구는 기각되었으며, 소송비용은 피고들이 부담하도록 했습니다.
법원은 피고들이 궤도1공구와 궤도2공구 입찰에서 낙찰자를 사전 배분하고 투찰 가격을 조율한 행위가 공정거래법 제19조 제1항 제8호를 위반한 부당 공동행위임을 인정했습니다. 이 담합 행위로 인해 원고는 공정한 경쟁이 있었을 때보다 높은 가격으로 공사 도급 계약을 체결하게 되어 손해를 입었으므로, 피고들은 공동 불법행위자로서 원고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담합이 없었을 경우의 가상 경쟁가격을 추정하는 전문 감정인의 감정 결과를 채택하여 손해액을 산정했으며, 피고들이 제기한 손해 발생 부존재 주장, 소멸시효 완성 주장, 손해액 산정 오류 주장, 공익신고자 보호법 적용 주장, 책임 제한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특히 공익신고자로 인정되어 과징금을 면제받았더라도, 담합 행위 자체로 인한 민사상 손해배상책임까지 면제되거나 감경될 수 없음을 명확히 했습니다.
본 사건은 주로 민법상의 불법행위 책임과 공정거래법상의 부당한 공동행위 규정에 따라 판단되었습니다. 먼저, 피고들의 담합 행위는 민법 제750조(불법행위의 내용)에 따른 고의적인 위법 행위로, 이로 인해 원고에게 손해를 가했으므로 민법상 공동 불법행위 책임을 부담합니다. 피고들의 입찰 담합 행위는 공정거래법 제19조 제1항 제8호에서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입찰 또는 경매에 있어 낙찰자, 경락자, 투찰가격 등을 결정하는 행위'에 해당하여 위법하다고 판단되었습니다. 또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와 관련하여 민법 제766조 제1항은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시효로 인하여 소멸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법원은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을 단순히 사실을 인지한 것이 아니라 불법행위의 요건 사실에 대해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인식하였을 때로 보아, 공정거래위원회의 의결 등 법적 평가가 확실해지는 시점을 중요한 고려 요소로 삼아 소멸시효 완성을 부정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공익신고자 보호법 제14조 제4항 및 제15조 제1항은 공익신고를 이유로 공익신고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규정하나, 법원은 피고들이 자진신고로 과징금 면제 혜택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원고가 입은 손해는 담합 행위 자체로 인해 발생한 것이지 공익신고로 인해 발생한 손해가 아니므로 이 규정이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을 면제하거나 감경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경쟁 입찰에서 사업자들이 사전에 낙찰자나 투찰 가격 등을 합의하는 담합 행위는 공정거래법상 명백한 위법 행위이며, 이로 인해 피해를 입은 발주처는 담합 주체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담합으로 인한 손해액은 담합이 없었을 경우의 가상 경쟁가격과 실제 낙찰 가격의 차액으로 산정되는데, 이 가상 경쟁가격은 통계적, 경제학적 분석 방법을 통해 추정되므로 전문 감정인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는 피해자가 손해의 발생, 위법한 가해 행위, 가해 행위와 손해 발생 간의 인과관계를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인식했을 때부터 진행됩니다. 이 사건에서는 언론 보도나 형사 재판 사실만으로 소멸시효가 시작되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우며, 공정거래위원회의 의결 등 법적 판단의 귀결이 확실해지는 시점이 더 중요하게 고려될 수 있습니다. 공익신고자 보호법은 공익신고를 이유로 공익신고자에게 불이익 조치를 하거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규정하지만, 공익신고자가 저지른 위법 행위 자체로 인해 발생한 타인의 손해배상책임까지 면제하거나 감경하는 것은 아닙니다. 즉, 자진신고로 과징금 등 행정적 제재를 면제받았더라도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은 별개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담합 행위와 같은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영득 행위의 경우, 피해자의 부주의 등을 이유로 가해자의 책임을 제한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불법 행위의 본질적 목적이 피해자가 입은 손해를 전보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해자가 공사 과정에서 적자를 보았다거나 이득이 없다는 등의 사정만으로는 책임을 감경하기 어렵습니다.
